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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정근 Oct 01. 2019

쓸모


1.

쓸모

①쓸 만한 가치.

②쓰이게 될 분야나 부분.


쓸모없다

①쓸 만한 가치가 없다.


(네이버 국어사전)



2.

쓸모에 대해 종종 생각한다.

요즘의 쓸모란 주로 돈에 기대어 있다. 대개 사람의 쓸모는 그가 얼마나 많은 자본을 생산할 수 있는지, 또 얼마나 소비할 수 있는지로 측정된다.

눈알이 핑핑 돌아가는 세상에서 잠시만 한눈팔고 까닥하다간 쓸모없는 사람이 되기 십상이다.

쓸모없는 짓 하지 말고, 쓸모없는 사람 되지 마라.

너의 쓸모를 졸업장과 직업과 돈과 차와 아파트로 증명해 보여라.



3.

아름답고 쓸모없기를

(김민정 시인의 시집 제목)



4.

자본주의적 쓸모가 간판이 된다고 하지만,

세상에 나란 존재가 없어지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보면,

별다른 일도 일어날 리 없고 아무런 티도 나지 않을 것이다.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은 상처 받고 슬퍼할지도 모르겠지만,

곧 잊히고 남은 사람들은 잘 살아가겠지.

무수한 선례에서 보듯이 막상 나란 존재는 그리 대단하지 않다.

콩나물시루에 빼곡한 콩나물 대가리와도 같은 존재.

나란 인간의 쓸모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5.

나의 쓸모

(가수 요조의 노래)


세상에는 이렇게 부를 노래가 많은데 내가 굳이 또 이렇게 음표들을 엮고 있어요 사실 내가 별로 이 세상에 필요가 없는데도 이렇게 있는 데에는 어느 밤에 엄마 아빠가 뜨겁게 안아버렸기 때문이에요 어감이 좋은 동네에서 살아가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이 세상의 이름이 무서웠거든요 모두 행복해지면 좋겠다고 말하면서 그 방법은 다들 다르더군요 결과적으로 나는 또 멍청이가 된 것 같은데 어떡하죠



6.

쓸모는 돈 나올 만한 구멍을 효과적으로 뚫는 송곳이 아니다.

이것은 톱니가 여럿 달린 톱니바퀴와도 같아서,

서로의 쓸모를 더 많이 발견할 때, 함께 더 깊게 맞물려 돌아간다.

사랑하는 이가 아침에 눈을 떠 처음보는 이가 나여서 좋고,

전화기 너머 울려오는 소리가 그저 그의 목소리여서 좋다.

때론 피곤에 지친 헝클어진 그의 머릿결에서 그날의 고됨을 읽을 수 있어서 좋다.

상대를 바라보는 시선의 온도에서 숨겨진 소중한 쓸모가 드러난다.

자본주의의 쓸모없음을 사랑하며 서로의 감춰진 쓸모를 찾는 세상은

더 많은 톱니를 가지고 더 단단해진다.

사랑이란 상대방의 쓸모가 많아지는 현상이고,

좋은 세상은 서로 맞물린 쓸모가 많다.



7.

그러니 나는 더 많이 맞물리고 싶다.

오늘 만난 조카들의 눈망울과도,

지구 반대편에서 이유 없는 고통에 허덕이는 이름 모를 누군가와도,

길가에 하릴없이 굴러다니는 쓰레기 봉투와도,

플라스틱을 삼키고 배가 아픈 태평양의 돌고래와도,

이 순간에도 죽어가고 있을 수십억 마리의 닭과 소와 돼지와도 맞물려 있다고 믿는다.

세상 어떤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함께 살아간다.

나는 그들과 서로 쓸모가 있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그가 살아가는 이 세상을 소중하게 여긴다는 말이고,

이 세상을 가치있게 만들고 싶다면 세상과 맞닿는 접점은 늘어난다.

누구와도 접속할 수 있는 쓸모가 온몸과 온 마음에 돋아났으면 좋겠다.

조금이라도 더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고,

일말의 책임도 무겁게 지고 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나의 책임을 회피하는 순간 온세상이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나는 미약하지 않다고, 크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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