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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정근 Oct 01. 2019

피로 물든 옷

라나 플라자 붕괴 사고


2013년 4월 24일, 방글라데시의 수도 다카 인근에서 한 건물이 붕괴했다. 사망자는 최종 1,129명으로 집계되었고, 부상자는 2,500명이 넘었다. 이 건물은 불법으로 증축된 의류 공장이었고,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공장에서 일하고 있던 10대와 20대의 어린 여성 노동자들이었다.


모르는 사이에 어떤 큰 사건이 있었고, 알게 된 순간에는 뒤통수를 세게 맞았다. 당황과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라나 플라자 붕괴사고로 불리는 위 사고는 의류 산업이 다른 인간을 얼마나 끔찍하게 쥐어짜고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방글라데시의 노동자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하루 종일 일하며 값싼 패스트 패션 의류들을 대량으로 생산해내고 있다(2018년 방글라데시 의류 노동자 월급은 4만 원이 채 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일자리가 간절하게 필요하지만, 값싼 돈과 인생을 바꾸는 것은 원하지는 않는다.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며 싸워온 노동자들은 과도한 노동과 해로운 화학물질로 인한 건강 악화와 정부와 관리자들의 탄압으로 인해 스러지며 죽어가고 있다. 

다카의 공장주와 방글라데시 정부를 조종하는 것은 초국적 SPA 브랜드들이다. 패스트 패션 공장들은 방글라데시를 비롯한 제3세계 국가에 자리해 있으면서 효율적인 생산과 빠른 회전을 추구한다. 이들은 공장들에게는 최대한 싼 가격으로 제품을 공급하라는 압력을 넣으면서 소비자들에게는 뒤처지지 말고 순식간에 변해가는 유행을 따라가라고 자극한다.

빠르고 값싸게 옷을 만드는데 환경을 신경 쓸 리도 없다. 면화 산업에는 엄청난 양의 물과 농약과 화학비료가 필요하다. 옷감을 정련하고 표백, 염색하는 과정에서는 수산화나트륨, 포름알데히드 같은 화학물질들이 다량 사용되고 이윤을 위해서 당연하게도 이들 물질들은 정화 과정 없이 그냥 배출된다. 가령 구글 위성사진에서 보이는 어떤 중국 도시의 강물은 매우 파랗다. 그곳에서는 와싱된 청바지를 만든다. 인도 가죽 생산지의 노동자들의 팔뚝과 하천은 언제나 양쪽 모두 새카맣다. 물론 오염에 따른 비용은 우리가 옷을 구매할 때 결제하는 돈에는 포함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분명히 누군가에게 지불되고 있다.

패션 산업의 실체를 고발하는 '더 트루 코스트'라는 다큐멘터리에는 다카의 의류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20대 여성이 등장한다. 그는 울면서 말한다.

"우리들의 피로 만들어진 옷은 아무도 입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내가 입는 옷은 어디서 오는가? 이것들이 누군가의 고통과 파괴에 기반한 것이라면. 세계화된 자본은 나를 착취의 현장에서 분리해놓았지만, 분명히 착취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속적이고 악랄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이후에 나는 옷을 구매하고 관리하는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첫째, 가능하면 옷을 사지 않는다. 절대 충동구매하지 않고 구입할 때는 반드시 정해진 계획에 따른다. 옷의 수명이 다했을 때 새 것으로 교체를 할 뿐이지, 옷의 가짓수를 늘리지 않는다.

둘째, 옷을 구매할 때는 반드시 유행을 타지 않는 클래식한 디자인, 여러 스타일로 다양하게 코디가 가능한 디자인을 고른다. 유행을 타서 한 철 입고 버릴 것 같은 옷들은 쳐다보지 않는다.

셋째, 옷의 재질과 마감이 훌륭한 옷을 고른다. 빨리 닳지 않고 오래 입을 수 있는 재질로 되어 있는 옷을 고른다.

넷째, 가능하면 윤리적인 생산 과정을 거친 제품을 구매한다. 예를 들어 유기농 면 제품이 있다면 가격이 더 비싸더라도 구매한다. 같은 연장선 상에서 털이든 가죽이든 뼈든 간에 동물성 재료가 들어간 제품은 절대 사지 않는다.

다섯째, 옷을 구매하기 전에 중고 제품을 찾아본다. 최근에는 중고 구제 옷들을 살 수 있는 매장들이 몇 군데 있다. 새 옷 매장에 가기 전에 먼저 중고 매장에서 적절한 옷이 있는지 알아본다.

여섯째, 이미 구매한 옷들을 잘 관리한다. 입을 때도 쉽게 오염되지 않도록 하고 적절한 시점에 세탁하고 철에 따라 잘 보관하며, 가능하면 수선해서 오래 입도록 한다. 이미 구매한 동물성 제품들도 최대한 오래 사용하도록 한다.

이런 원칙들을 100% 철저하게 지킨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최대한 따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엊그제 본 어느 칼럼에서는 책임 responsibility이란 말은 response + ability라고 했다. 책임은 반응하는 능력이다. 무언가를 목격하고 인지했을 때 이어지는 일련의 우리의 반응 sequences들이 결과 consequences를 만든다. 지나치지 않고 반응하는 힘이 쌓이면 더 훌륭한 결과를 만들 거라고 믿는다. 쇼핑몰에 걸려 있는 이 산더미 같은 옷들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더 이상 피로 물든 옷들로 옷장을 채우고 싶지는 않다.


덧. '더 트루 코스트'는 넷플릭스에서 예전에 서비스되었을 때 봤었는데, 현재는 서비스가 종료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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