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감각의 소유

나에게 주어진 감각을 온전히 소유하며 살았던 날들

by 임성현

자주 가는 서점에서 진행하는 필름 카메라 사진전 모집 포스터를 보았다. 필름 카메라를 제대로 사용해 본 적이 없었지만 평소 핸드폰으로 풍경 사진을 자주 찍어 왔던 터라 그 경험을 믿고 호기롭게 사진전에 참여했다. 하지만 핸드폰과 필름 카메라는 사진 촬영에 대한 접근 방식부터 사뭇 달랐다.

핸드폰으로는 피사체를 큰 화면으로 보고 찍은 결과물을 바로 확인할 수 있었지만, 손가락 한 마디도 안 되는 필름 카메라의 좁은 창으로는 풍경이 어떻게 담길지 예상할 수 없었다. 또 여유롭게 여행을 다니며 아름다운 풍경을 사진으로 남기던 날들과 달리 다가오는 마감 날짜와 줄지 않는 필름 컷 수에 초조해하며 적절한 풍경을 찾으러 다니는 날들이 이어졌다. 덕분에 처음으로 사진을 찍기 위한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한편 사진을 찍으러 다니던 날들 사이사이에 온라인 글쓰기 모임에 올릴 글을 위해 일주일에 한 편씩 글도 써야 했다. 오랫동안 글을 써왔고 글쓰기도 모임도 이미 몇 번 해봐서 별 고민 없이 모임을 신청했었지만 글을 주기적으로 쓰는 편이 아니었던 내게 일주일이라는 마감 기한은 꽤 빠른 속도였다. 마감 시간을 얼마 안 남긴 채 힘겹게 글을 올리기가 일쑤였고 어떤 때는 일단 올려놓고 다음 날까지 퇴고를 계속하기도 했다. 더구나 쓰고 싶은 내용이 떠올라야만 글을 써오던 습관 때문에 일주일 내내 글감이 떠오르지 않을 때면 습작 노트를 뒤져 쓰다만 글을 찾아보거나, 생각만 해 놓고 글로 쓰지 않은 소재들을 기억 속에서 끄집어 겨우 한 편의 글로 완성하기도 했다.

그렇게 찍거나 쓰고 싶은 순간을 맞이하기 위해 두 달이라는 시간 동안 모든 감각을 열어두며 지냈다. 보고 듣고 느끼는 대상들에서 의미 있는 순간을 붙잡기 위해 애썼고, 혹시라도 놓친 건 없는지 지나간 날들을 복기하기도 했었다. 물론 담고 싶은 순간은 드물게 찾아왔고 열어둔 감각으로 피로만 들어오는 날들이 더 많았었다.


인화된 사진 중에는 빛이 부족하거나 과하게 들어온 것이 있었고 심지어 손가락이 나온 사진도 있었다. 또 수평과 초점이 맞지 않은 사진들도 있어 큰아버지와 달리 사진작가가 되기에는 글러 먹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였다. 긴 분량도, 복잡한 소설도 아닌 짧은 수필임에도 주기적으로 의미 있는 순간을 붙잡고 이를 글로 풀어내는 감각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여실히 깨달은 시간이었다. 직업인으로서 시인이 되려면 시를 습관적으로 쓸 줄 알아야 한다고 했던 어느 시인의 말을 떠올리며 나는 전업 작가도 되기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액자에 담길 한 장의 사진과 엽서로 만들어질 세 장의 사진을 고르며 처음 겪어 보는 종류의 설렘을 느낄 수 있었다. 또 드물게 글을 올리던 블로그에 주기적으로 글을 담아내며 부지런하게 글을 쓰는 사람의 행세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열어둔 감각에 의미 있는 순간을 채워 두 달의 시간을 촘촘히 보낼 수 있어서, 그 시간을 사진과 글로 남겨둘 수 있어서 행복했다. 찰나의 의미를 붙잡는 건 힘을 많이 쏟는 일이었지만 붙잡고 나면 오랫동안 남을 아름다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에게 주어진 감각을 온전히 소유하며 살았던 날들. 앞으로도 감각을 뜰채 삼아 일상 안의 의미 있는 순간을 잘 건져내어 오래 남을 아름다움으로 담아내고 싶다.








글, 사진 : 임성현

네이버 블로그 : 노을이 다 지기 전에

Insta : @always.n.alldays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