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걱정

아름다움에 무뎌지고 글을 쓰지 못하는 건 너무도 슬픈 일이다.

by 임성현

내게는 먹고 사는 것 이외에 두 가지의 걱정이 있다. 아름다움에 무뎌지거나 글을 쓰지 못하는, 그런 상태의 내가 되는 두려움이다.

모든 걸 용서할 수 있을 듯한 감정이 들게 하는, 해가 든 한낮의 하얀 거실.

떠난 존재가 다시 돌아와 주기를 바라게 만드는, 붉으며 파란 해 질 무렵의 하늘.

삶에는 이런 감각적인 아름다움만 있는 것이 아니다.

처음 보는 아이가 나를 향해 흔드는 작은 손.

낯선 타지에서 홀로 여행 온 이에게 건네는 한마디.

지독한 혐오와 차가운 이기심이 만연한 현실에서 사람만이 줄 수 있는 아름다움까지, 삶에는 아름다운 순간이 너무도 많다.

이런 아름다움을 마주할 때면 내가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도 저런 풍경이나 작은 손, 말 한마디와 같은 세상에 무해한 존재가 될 수 있을 거라는 기분. 그 때문일까? 아름다움을 마주할 때마다 설렘과 동시에 슬픔의 감정이 함께 든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아름다움을 발견할 때면 내가 모르는 아름다움이 이렇게 어딘가에 더 흩뿌려져 있을까 봐 조급하고, 낯선 곳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할 때면 이 장소와 시간의 조화가 만들어 내는 아름다움을 다시 만날 일이 없음을 알아 서글퍼하곤 한다.

하지만 나를 가장 슬프게 만드는 건 이런 아름다움을 마주하지 못하는 내가 되는 순간이다. 나이가 들수록 미각이 약화 되어 점점 간이 세지는 어르신들의 음식처럼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내 감각이 조금씩 둔해져 나를 스치는 아름다움을 놓치지는 않을지, 아니면 아름다움을 찾는 즐거움을 더 이상 소중히 여기지 않을지, 이런 상상은 나를 슬프게 하며 정말로 그런 순간이 찾아올까 하는 걱정을 하곤 한다. 특히 올해는 일에 치여 살아 아름다운 순간들을 마주할 기회도 많지 않았을뿐더러, 오래 쉬어 감을 잃어버린 운동선수처럼 놓치지 말아야 할 순간들을 흘려보냈다.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린 시간이었다.


아름다움에 무뎌지는 두려움은 글을 쓰지 못하는 두려움을 일으킨다. 내게 글을 쓰는 행위는 아름다움의 순간을 남겨두는 일과도 같다. 다만 눈과 사진으로 아름다움을 담는 행위와 달리 글로 담는 아름다움은 시각적인 감각으로만 기인하지 않는다. 삶과 사랑이 주는 자극이나 타인과의 관계, 혹은 스스로에 대한 사색 등 일어난 일에 대한 나의 반응에서 기인한다. 작용과 반작용처럼 반응이 준 작용에 대해 나는 글을 써서 반작용을 만들어 내 반응에 반응함으로써 그 반응이 만든 울림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이 나로 하여금 글을 쓰게 만든다. 그렇기에 글을 쓰지 않았다는 것은 내게 반응할 만한 아름다운 일이 일어나지 않았었다는 것이며, 글을 쓰지 않는다는 것은 아름다움에 반응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일이다. 앞으로 글을 조금씩 적게 쓴다면 이는 곧 내가 아름다움에 조금씩 덜 반응한다는 일이다. 이렇게 아름다움에 대한 두려움은 글을 쓰는 일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한편 글쓰기는 고독한 내가 외로운 나를 구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블로그에 글을 올린 지 어느새 십 년이 넘었다. 읽는 사람이 거의 없는 나의 글들. 오늘도 내 블로그의 방문자는 13명에 지나지 않는다. 방문자 중에 과연 몇 명이나 내 글을 읽었을지가 궁금해질 때도 있지만 그렇게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작가도 아닌 내게 글을 쓰는 행위란 남이 아닌 나를 위한 일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이와 헤어지며 쓰기 시작한 나의 글쓰기는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살기 시작한 시기와 겹친다. 홀로, 뿌리내리지 못한 곳에서 부유하는 삶은 심한 뱃멀미를 하듯 한 번씩 안에 쌓인 외로움을 게워 내게 했고, 멀미를 할 때면 먼 곳을 바라봐야 하듯 글쓰기는 나를 멀리 두고 바라보게 해주었다.


작은 존재도 그저 신기하기만 한 어린아이가 커 갈수록 세상에 흥미를 잃어가는 것처럼, 아름다움에 무뎌지고 글을 자주 쓰지 못하는 나를 마주하는 건 너무도 슬픈 일이다. 정말로 그런 삶을 살게 된다면 그땐 내게 어떤 즐거움이 남아 있고, 나는 나를 어떻게 달래고 있을까? 무슨 삶을 살고 있든, 어느 곳에서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든 아름다움에 잘 반응하고 그 순간들을 글로 옮겨 놓았으면 한다. '어쩌지, 어쩌지.'하면서도 그 둘을 놓지 않고 계속해서 전전긍긍하며 살았으면 한다.







글, 사진 : 임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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