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안부는 안녕보다 어려운 말이다.
- 괜찮아요?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도중 동료 선생님에게서 문자가 왔다. 아마도 내가 학생을 크게 혼내는 모습을 복도에서 지켜봤나 보다. 학생들과 웃고 떠들고 장난도 잘 치지만, 혼을 낼 때만큼은 무섭게 해왔었기에 정작 나는 아무렇지 않았지만, 교무실에 들어갔을 때 너무 마음 쓰지 말라고 걱정해 줬던 선생님도 계셨던 걸 보니 평소 교무실에서 조용히 지내는 내 모습만 지켜보았던 다른 선생님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나 보다.
그동안 사적인 대화를 별로 나눠본 적이 없던 동료 선생님에게 연락이 왔다는 사실도 낯설었지만, 더 낯설었던 건 타지에서 누군가가 나의 안부를 물어봐 주는 일이었다. 아무 연고도 없는 대전에서 산 지 어느새 4년째가 되던 해, 고향이 아닌 곳에서 별다른 친분도 없는 누군가가 내 기분을 살피고 마음을 걱정해 줬던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한때는 아끼던, 그러나 잃어버린 지 오래된 물건을 다시 마주했을 때처럼 그 문자를 한참 지켜보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답장을 보냈다. 그리고 ‘괜찮아요?’라는 네 글자의 안부 문자는 동료 선생님과 나, 우리를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연인으로 묶어 준 시작점이 되었다. 어쩌다 그때의 인연을 이야기하게 될 때면 나는 당시 그녀가 물었던 그 짧은 안부에 내 온 마음을 기댔었던 것 같다고 말하곤 한다.
안부(安否).
안부는 안녕과 다르다. ‘편안할 안’과 ‘편안할 녕’으로 이루어진 안녕은 혼자서도 빌어 줄 수 있지만, 안부에는 ‘편안할 안’과 ‘아닐 부’가 함께 있어 상대에게 물어야 한다. 멀리서가 아니라 가까이 다가가야 하며 때로는 상대를 잘 살피기도 해야 한다. 그런 이유로 내게 안부는 안녕보다 어려운 말이다. 안부 하나로 사랑에 빠진 적도 있었으면서, 여전히 정말 편안한 상대가 아니면 사람을 대할 때 쉽게 긴장하는 나는 누군가에게 안부를 쉽게 물어보지 못한다.
- 살아있어? 대충 살아도 잘 굴러가는 하루가 되기를.
이번 크리스마스에도 친구에게서 안부의 연락이 먼저 왔다.
- 오늘도 역시 네가 더 다정하구나.
매번 한 걸음씩 늦는 나의 다정함이었다.
수업에서는 능청스러운 너스레를 잘만 떨면서 교실을 벗어나면 누구보다 소극적인 사람이 되는 나로서는 안부를 먼저 묻는 이의 용기가 늘 부러울 따름이다. 나의 안부를 묻는 연락이 한 번씩 올 때마다 나를 생각해 준 마음에 늘 감사해하면서도 안부를 묻는 것에는 머뭇거리기만 하는 내가 답답하고, 상대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몇 년 전에도 비슷한 글을 썼었지만 그사이 크게 달라지지 않은 나는 결국 올해에도 펜을 들었다. 마주하며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만큼 편지를 쓰는 일은 결국 안녕을 비는 행위와 별 다를 바가 없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내가 잘할 수 있는 선에서라도 안부를 묻고 싶었다.
편안한지, 그렇지 않은지.
아무래도 앞으로도 이 두 물음 앞에서 나는 자꾸만 미끄러질 것 같다.
하지만 올해는 예전처럼, 안부를 물어볼 만큼 용기를 내지 못하여 발생할 인연의 결과도 받아들이겠다는 생각으로 안부를 묻지 않고 넘어가기에는 편지를 보내지 않은 이들이 자꾸만 떠오른다. 그 어느 때보다 몸도 마음도 힘들었던 올해, 머뭇거리기만 하는 나를 견뎌주거나 쌓인 먼지를 덜어주듯 한 번씩 나의 창을 두드려준 사람들이 많았다. 한 해의 끝과 시작이 함께하는 요즘, 이 시기를 핑계 삼아 내가 할 수 있는 선을 조금 넘어 볼 수 있지 않을까? 잘할 수 있는 선이 아닐지라도 조금 더 용기를 내 볼 수 있지 않을까?
핑계 대기 딱 좋은 이 시기가 끝나기 전에 물어야겠다. 편안한지, 그렇지 않은지. 편안하다면 당신이 편안해서 좋고, 그렇지 않다면 그런 당신을 생각하는 사람이 여기 있다는 것을 알려줘서 좋은 그런 안부를.
글, 사진 : 임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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