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환자실에 내려간 엄마
23년 2월 16일 새벽 3시
나는 엄마가 헐떡이며 입술을 달싹이며 내뱉은 모든 문장을 눈으로 낚아챘다.
엄마의 모든 바이탈 수치는 흔들리고, 엄마의 산소포화도는 점점 떨어지고 있었다.
-엄마, 엄마 죽는다...빨리...불러, 상빈이 -
흐트러질대로 흐트러진 호흡, 나는 결코 엄마가 저 모든 문장을 또박또박 뱉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엄마가 조각조각 뱉은 소리를 나는 빠르게 문장으로 재 조립 했다.
" 엄마 제발 정신 좀 차려줘, 제발, 제발, 제발 "
엄마는 그렇게 손짓으로 나를 불러 한번 안아주었다.
성인이 된 이후 처음이다.
아주 어린시절 말고 엄마가 이렇게 안아준 적이 없었다.
그리고 엄마의 의식이 그대로 점차 저 아래 깊이를 모르는 어둠으로 쑤욱 하고 빨려들어가는 것 같았다.
밤 11시부터 엄마의 맥박은 130~150을 널을 뛰고, 그 맥박이 곧 그릉 거리던 가래소리로, 그 가래소리는 간호사 선생님의 석션 처치 이후 고통의 몸부림으로 변하고, 그 고통의 몸부림은 점점 낮아지는 산소포화도로,
이내 그 모든 시그널들은 스테이션 바로 옆 처치실로 옮겨지기 충분했다.
처치실에 와서도 진정되지 않는 엄마의 맥박, 낮은 산소포화도에 백의의 천사들은 이곳으로, 저곳으로 전화를 걸기도 하고 엄마의 산소 기압을 점점점점 더 높이기도 하고, 급하게 피를 뽑기도 하며 분주히 움직인다.
마침내 그들이 스테이션을 모조리 비웠을때, 엄마는 저렇게 이야기 했다.
곧 결혼하겠다고 했던 나의 남자친구, 서류상에는 존재하지도 않는 아빠를 다급하게 찾았다.
엄마가 뇌경색 이후로 섬망증세를 보이며 내 말을 듣지 않을때 내가 남자친구와 헤어졌다고 이야기 한게
엄마에게는 큰 충격이었을까?
우리 딸 사랑해도 아니고 우리 딸 미안해도 아닌 아닌 남자친구의 이름이 먼저 나온 것은
가히 적잖은 충격이었다.
이미 새벽 1시부터 엉엉, 어린아이처럼 크게 소리내서 울기 시작한 나는 장장 아침 6시까지 간호사 처치실 문 밖에서 소리를 내어 울부짖었다.
응급실 주치의가 다급하게 뛰어와 엄마에게 이산화탄소를 강제 배출시킬때 내 울음소리를 듣고
엄마를 석션해준 간호사는 손을 덜덜 떨며 엄마의 피를 쏟았으며, 주치의는 처치실의 문을 닫으라고 다른 어린 간호사 선생님에게 부탁을 하는 소리까지도 선명히 다 듣고 말았다.
밤 12시 가량 부터 엄마의 산소포화도가 떨어진다고 몇번이고 조심스레 얘기했던 순간들이라던지,
엄마가 이번에 이 병원 응급실을 벌써 두번째 찾았는데 그때마다 엄마가 작년 9월에도 이산화탄소가 배출이 안되어 돌아가실뻔한 내막이라던지를 줄줄 설명하던 때가 생각났다.
그리고 원래 기존에 다니던 병원에서 혹시라도 폐렴에 걸려 기도삽관이라도 하게되면, 다시 못 깨어날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된다고 했던 그 병원의 응급실 선생님들의 말씀도 생각났다.
이내 엄마가 중환자실로 내려간다고 했을때, 주치의는 나에게 빠르게 설명했다.
엄마의 상태가 좋지않아 기도삽관을 해야할수도 있다고.
그 의사의 얼굴은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온통 눈물로 앞을 가린 시야에 무엇이 보일까.
하물며 그가 누군가와 통화하면서 멘탈이 무너졌다, 라고 뱉은 것도 들어버렸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