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뉴얼은 죄가 없다
최근 사회적인 참사가 발생하여 관련한 분석 기사가 한참 줄을 이었다.
기사 중 하나가 90년대 초중반, 김영삼 정부 시절, 유독 대형 안전사고가 집중됐던 시기를 조명한 기사가 있었다. 그 참사 중 가장 근접하게 목격한 참사는 성수대교 붕괴사고였다. 마침 학교가 근처라 먼발치에서 항상 한강을 가로지르던 다리가 뚝 끊긴 걸 보며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그즈음에 전 사회에 매뉴얼 수립의 붐이 일었다. 지금의 대형 참사는 매뉴얼이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안전 점검이나 업무를 진행했기 때문이라는 자성의 결과였다. 매뉴얼만 있으면 모든 사고가 예방되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의 원인으로서의 매뉴얼의 부재는 나름 합리적이었고, 매뉴얼을 만들자는 주장도 근거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을 한 가지 간과하고 있었으니,
매뉴얼은 만들어서 모셔둔다고 해서 매뉴얼의 대상이 저절로 매뉴얼처럼 실행되거나 현상이 바뀌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즉, 실천이 중요하다.
역시 옛날 얘기로 2000년 대 초반, 전 세계적으로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게임도 혼자 컴퓨터의 프로그램과 경쟁하던 시대를 지나, 전 세계 익명의 누군가와 실력을 겨룰 수 있는 온라인 게임이 대세가 되었고, 대표적인 게임이 '스타크래프트'였다.
스타크래프트와 같은 개인의 창의적인 게임 플레이가 가능한 게임에서 한국인이 두각을 나타내는 이유를 어느 심리학자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해진 룰보다는 새로운 방식을 개척하는 것을 선호하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놨었다.
즉, 매뉴얼을 잘 안 지킨다는 것이다.
물론 게임의 매뉴얼을 창의적으로 해석하여 자기 나름의 게임 방식을 창조한 것은 게임의 영역에서는 매우 큰 장점이고 훌륭한 결과물을 만들어 냈지만, 안전 매뉴얼과 같은 영역에서는 만들어 놓은 매뉴얼을 무시하고 편법과 관행에 따르게 되면 대형 사고와 같은 심각한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
금번 이태원 참사 대응 관련한 공무원들의 반응을 보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금번 같이 주최자가 없는 축제는 대응 매뉴얼이 없고 규제할 제도가 없어서 예방과 대응이 어려웠다는 궤변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간의 사회적 희생과 비용의 교훈으로 매뉴얼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회적 인지 수준에는 이르렀으니, 매뉴얼 작성 작업은 진행될 것이다.
하지만, 매뉴얼은 만들어서 관공서의 캐비닛에 고이 보관한다고, 마법사의 마법처럼 저절로 현장과 행동을 바꾸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