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으로 돌아가다
어제 tv 영화소개 프로그램에서 커플이 아니면 강제 격리되고 일정기간 합숙하면서 짝을 만들 기회를 줬음에도 여성의 선택을 받아 커플이 못되면 끝내 동물로 강제 변신 당하는 영화 소개를 봤다.
황당한 설정이지만 마냥 웃고 넘길 수 없는 현실이 연상되는 영화였다.
언제부턴가 모태솔로부터 시작해서 연애나 결혼이 능력의 하나로 치부되기 시작했다. 지극히 개인의 영역이라고 여겨지던 연애를 리얼다큐라는 신조어로 포장하여 상품화하였고, 연애를 위한 짝짓기 프로그램이 채널마다 홍수를 이루는 걸 보면 연애와 커플의 의미가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오죽하면 혼밥이 작은 도전이 되어 혼밥 성공기를 심심치 않게 SNS등에서 볼 수 있을까?
스핑크스가 출제한 퀴즈의 답을 보면 인간은 아이의 네발로 시작해서 노인의 지팡이 네발로 생을 마무리한다.
솔로냐 커플이냐도 처음엔 당연히 솔로로 시작하여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여 자녀가 생기고, 손자, 손녀까지 생겨서 주변 사람 수로써 피크를 찍는다.
자녀가 성장하여 독립하기 시작하면서 혹은 누군가 사망하면서 점점 주변 사람들이 줄어들게 된다.
그리고 결국에 처음처럼 혼자가 되어 생을 마무리한다.
그러니 혼자 뭔가 하는 것은 무능력도 아니고 오히려 인생이 한참 분주하고 사람에게 둘러싸여 있을 때 잠시 잊혔던 그래서 퇴화됐던 '혼자 하는 능력'이 복원되는 과정일 뿐이다.
그래서 조류라고 분류되고 날개가 있으나 날지 못하는 조류들의 마음과 비슷하게 혼자 뭔가 하는 것이 그저 두렵긴 하지만, 할 수 없는 일은 아니며, 잠시 안했던 일을 다시 하는 것 뿐이다.
한창 사회생활이 분주할 땐 돈 버는 게 매우 중요했고, 세상 시간은 모두 내 주머니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돈 버느라 시간을 다 썼었다. 시간이 없다,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
그런데 사회적 죽음, 퇴직을 하게 되면, 그 시간이 갑자기 너무 많아서 탈이 난다.
즉, 너무 많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한창 바쁠 때의 돈벌이보다 더 어렵고 부담스러워진다.
즉, 혼자 시간 보내는 일을 준비해야 한다.
아직은 호젓한 카페 소파에서도 채 20분도 못 버티는 실력이지만, 다음엔 30분, 한 시간 그리고 한나절로 점점 실력과 내공을 늘려갈 수 있으리라.
그 내공은 사람들의 시선과 눈총을 견디는 뻔뻔함이여서는 곤란하다.
밥벌이보다 더 집중할 수 있는 나만의 할 일이자 취미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한편으로는 이젠 지난 시간보다 남은 시간이 적은 소중한 시간이므로 더 가치 있게 써야 한다.
재미를 느끼는 대상을 찾아야 한다.
언제부턴가 하루종일을 지내면서도 진심으로 즐거워서 웃는 경우가 한 번도 없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아이들의 시도 때도 없는 웃음이 나이 들수록 줄어든다는 건 불멸의 진리.
심지어는 아이들이 그저 즐거워 웃으면 부모들은 아무 일도 아닌데 웃지 말라고 주의까지 주곤 하니 나이 들수록 웃음이 줄어드는 건 일종의 사회화 부작용인 것 같다.
재미를 느끼고 몰입의 정의처럼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대상을 찾아야 한다.
그 대상 후보 중 하나인 글쓰기는 쓰는 순간은 즐겁기도 하고 몰입되기도 하지만, 약간은 노력과 인내가 필요한 희열이라 그야말로 아이들의 놀잇감 같은 대상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