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잡담(雜談)

내가 떠나보낸 것도, 떠나온 것도 아닌데

by Phd choi 최우수

첫 이직한 회사는 대기업계열 IT회사였다. 한 십 년 전만 해도 이름만 들으면 웬만한 국민들은 다 알만한.

하지만, 내가 퇴직 후 불과 일이 년 후에 회사가 문을 닫았을 만큼 이미 쇠락하고 있었으니, 멀쩡한 사람이 들어가도 버티기 어려운 곳이었다고 자위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래도 거긴 팀 내 동료가 있긴 있었다.

그 후부터 몸담았던 조직은 모두 작은 조직이었다.

나 포함하여 서너 명 심지어는 나 빼고 사원급 한 명이 있었던 회사도 있었다.


졸지에 팀장이자 팀원이 된 나는, 낡은 시스템 속에서 낯선 실무 하느라 정말 힘들었다.

일례로 직장 생활하면서 전자 결재가 아닌 결재란에 수기 서명을 받고 다닌 첫 경험이었다.


요즘 우아한 형제들 인사담당자가 쓴 우아한 형제들의 인사, 조직문화 관련 책을 읽고 있다.

책 내용 중 소통과 교류를 위해서 잡담을 권장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우형(우아한 형제들)의 일 문화를 벤치마킹 하기 위해서 방문한 타 기업 담당자들은 다들 잡담으로 인해 일이 방해받지 않느냐는 질문을 한다고 하는데, 우형은 작은 잡담도 원활하게 하지 못하는데 더 크고 중요한 일 얘기를 어떻게 할 수 있겠냐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16년 동안 다니던 회사를 떠나고 나서, 난 위에 말한 대로 조직에 적응을 못해서 혹은 달랑 두서너 명 있는 작은 조직인 탓 등의 이유로 동료들 간의 잡담을 안 하고 못하며 거의 잊고 산 것 같다.

물론 잡담이 없어진 이유는 위에 열거한 남 탓, 환경 탓도 있지만 내 탓이 가장 크다.

갑작스럽게 맞은 강요된 이직과 그 강요의 끝에 찾아온 좌절과 실패, 상처 등으로 인해 어느새 난 잡담을 잊고 살았다.

잡담 같은 건 배부르고 한가한 사람들의 전유물 혹은 기존 조직의 기득권자들이나 누릴 수 있는 호사로 생각했었다. 혹은 점점 올라가는 자리의 높이만큼 리더는 외롭다고 생각하면서.

그래서 가뜩이나 능수능란 수준의 잡답의 능력도 없는 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잡담이 힘든 환경까지 더해져, 어느새 내 직장 생활에서 잡담의 재미와 효과가 없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지금 기억을 더듬어 보면 나도 일렬로 배치된 책상 한 귀퉁이에 앉아서 사람들과 일 외적인 소재를 가지고 수다도 떨었었고, 가끔은 자리도 비우고 차도 마시고 했던 것 같다.

지금은 리더라는 이유로 구성원들과 같은 줄에 앉지 못하고 약간 떨어진 파티션 안에 앉아 있어서 그저 소리로만 그들의 잡담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뿐이다.


나이가 들어서든, 직책이 높아져서 이든 결국 예전보다 사람들과의 관계와 잡담의 양과 질이 모두 악화됐다.

조직 속 일과 업무는 숨쉴 틈 없이 밀려오기에, 단단할수록 더 필요한 완충, 유화 기능의 필요성은 더 높아져 가는데 현실은 오히려 점점 결핍되어 가는 느낌이다.


그래서 같은 일을 해도 예전보다 쉬이 피곤하다.

예전엔 내 자리 옆에 벼락이 떨어져도 모를 것 같다는 평을 들었던 만큼 주변 환경과 변화에 무덤덤 했던 내가 요즘은 마치 태풍 속 비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느낌이다.


예전 수다, 잡담, 사람들과의 시간 속에서 완충되고 상쇄되었던 스트레스, 압박과 우울한 감정들이 완충 없이 맞닥뜨리게 되는 반면에 견뎌낼 수 있는 정신적, 육체적 힘은 반대로 점점 약해져 간다.


이래저래 雜談이 그리운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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