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쓰는 '마흔 즈음에...'

마흔 살이 부르는 '서른 즈음에...'

by Phd choi 최우수

(사진: 김광석 4집 앨범, 1994)


가수나 배우에게 부러운 점이 있다면, 그들도 나처럼 나이는 똑같이 먹을 텐데 그들은 수십 년 전 자신의 목소리로 부른 노래와 모습이 담긴 영화, 드라마 등이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남아 있다는 점이다.

(개인 입장에선 훌륭한 기록이 되므로)

아침, 저녁 출퇴근 시 차 안에서 음악을 듣는다.


물론 요즘 최신 차트에 올라가 있는 노래를 듣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10대와 20대에 많이 들었던 음악을 주로 듣게 된다.

나는 90년대 학번이다. 그 시절엔 서태지도 있었지만 김광석 같은 포크풍의 가수들도 TV에는 자주 안 나왔지만 얼굴 없는 가수로서 인기를 얻고 있었다.


매일같이 습관처럼 듣게 되는 음악 플레이리스트에 김광석 가수의 노래는 한두 곡 씩 올라가 있다.

오늘 아침에 '서른 즈음에'라는 노래가 자동으로 흘러나왔다.

이 노래를 처음 들은 건 아마도 20대였으리라, 곡 발표는 1994년이다.


오늘 아침엔 문득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다,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내뿜은 담배연기처럼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어 가는 내 가슴속엔 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마흔 즈음에는 왜 없지?'와 '오십즈음에는...?'라는 생각을 했다.


이 노래를 처음 들었던 20대 초반에는 서른 즈음이 참~~ 멀게만 느껴졌고, 위인전 읽는 느낌으로 들었었는데 그새 나이가 들어 서른 즈음은 진즉에 넘었고, 마흔 즈음도 이제 얼마 안 남았을 만큼 세월이 흘렀다.


그래서 셀프로 마흔 즈음에 어울리는 가사를 떠올려봤다.


그런데 이상하게 서른 즈음의 가사를 완전히 대체할 만한 가사가 떠오르지 않았다.

나이도 먹었고, 그전보다 가진 것도 많아졌고, 주변 사람들도 변화가 큰데, 이것저것 생각해 봐도 결국 '서른 즈음에' 가사에 수렴되는 것이다.

물론 몇몇 목적어는 변했겠지만, 결국 아무리 채워도 허(虛)하고 손에 꽉 쥐고 있는 것 같은데, 아무것도 없는 이런 허무함은 여전하고.

지나간 시간, 결정, 사람들은 그때 그렇게 지나온 이유는 새카맣게 잊은 채, 온통 그립고 아쉬울 뿐이다.


결국 삶이란 비슷한 듯 하면서도 다른 것 같다.


그럼 앞으로의 시간도 지난 시간처럼 살면 평균의 삶은 될까?

그건 아닐 것 같다.

서른 즈음에 가사는 주옥같지만, 함정은 모두 과거 얘기라는 거다. 미래의 얘기는 없다.

결국 미래는 지금 하던 데로 살면 안 될 것 같다.

최소한 나아지긴 위해선 그러면 안 될 것 같다.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잘 먹고 잘살기 위해 다들 최선을 다해 살며, 그 와중에 가뭄에 자기 논에 먼저 물을 대듯 지속적으로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환경을 바꾸려 한다. 그러므로 나도 변화되는 환경과 조건에 적응하고 능동적으로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둘째는, 나도 변한다. 어릴 때 안 먹던, 무와 콩자반, 생고추등을 지금은 무난히 먹는 것처럼 사람은 변한다. 심지어 지난 과거의 기억조차 현재의 상황으로 인해 해석이 달라지며, 그 시간이 다르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래서 운전 중에 듣는 서른 즈음에 가사가 와닿고 가끔 위안을 삼을 수는 있지만, 그저 힐링의 수단일 뿐

'마흔 즈음에...'와 '오십 즈음에...'를 대신할 순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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