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극 있는 삶이 그립다
대학 졸업하고 20년이 넘어서 고민 끝에 대학원을 다녔고, 경영학 박사가 되었다.
40대 중반에 박사 학위를 받아서 학교로 진출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야말로 실용적인 직장 생활 이후의 생계 수단과 남은 시간을 후회 없이 보낼 노후 대책 그리고 약간의 지적 호기심이 主동기였다.
3년 동안 주말마다 많은 수업과 과제 그리고 학위 논문으로 이어지는 다사다난한 시간을 보냈다.
돌아보면 많은 지식을 쌓았겠지만 당장 기억나고 써먹을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더 정확히 말하면 써먹을 수 있는데, 나의 학습 수준과 활용 의지 부족으로 못 써먹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럼 3년 시간과 수천만 원의 비용은 다 낭비였고 인생에서 점점 희소가치가 높아지는 3년의 시간을 허송 세월 한 것인가?
결코 아니다, 그 3년 내내 나를 주말을 헌납하며 몰입하게 한 것은 자극이었다.
대학원에 수학하고 있는 구성원들 중 나보다 나이가 적은 사람은 전체 인원 중 20%도 안 됐을 거다.
그리고 겉으로 보이는 여러 가지 조건과 그간의 성취로 미뤄 보건대 나보다 못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분들과 같은 자리에서 같은 강의를 들으면서 내가 가졌던 것은 자극이었다. 혹은 부러움이라 표현해도 좋다.
지금은 어떤가? 밥벌이의 수단이라고 치장된 자잘하고 한번 지나가면 다시는 써먹을 기회도 없고 그래서 굳이 내 삶에 잔잔한 파장을 줘서, 후일에 기억되어 글감으로라도 사용될 리 없는, 가치 없는 일들에 매몰되어 있다.
이런 일상의 치명적 약점은, 어느새 몸 곳곳에 달라붙어 체중계 저울 바늘을 올리는 기능 외에는 쓸모가 없는 군살과 같은 군더더기 같은 존재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밥벌이의 존엄함을 무모하게 외면하고 '자극'에만 매달릴 수는 없다.
어제 지인의 요청으로 갑자기 요즘 핫이슈인 '챗GPT(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에 대해서 대화를 했다. 순간, 머릿속이 정리되지 않은 채, 그저 단편적인 얘기만 하고 말았다.
그리고 갑자기 내가 눈앞에 해야 할 그리고 할 수 있는 것을 놓치고 또 남 탓, 환경 탓만 하고 있음을 느꼈다.
문제는 정기적으로 써치 하는 인터넷 서점에 살 책이 없는 것이 아니고, 내가 책을 고를 의지와 안목이 없는 것처럼, 챗GPT처럼 세상이 변하고 있고, 이를 경영학 박사로서-학위를 딴 이유를 살리기 위해- 머릿속이든 자료든 정리하고 있어야 함에도 난 이를 외면하고 있었다.
결국, 대안은 내자신에게서 찾을 수 밖에 없다.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는 시간과 노력으로 나에게 지속적인 자극을 주어야 한다.
그리고 내비게이션으로 목적지를 찾아갈 때, 주기적인 re-load도 있고 경로도 추천, 최소시간, 최소비용, 유료도로와 같이 여러 옵션이 있어도 결국 목적지를 찾아가듯이 나도 나의 성장, 미래를 위해 자극을 줄 수 있는 곳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그 자극을 포기하면 곧바로 그 포기의 후유증이 오지않고 시차를 두고 오게 된다.
마치 자동차의 엑셀에서 발을 떼도 당분간은 관성 주행이 가능한 것처럼.
하지만, 관성주행은 분명히 동력이 상실된 상태이며, 그 방향성은 '주행'으로 향해 있지 않고 '정지'를 향해 있으므로 진정한 주행이라 할 수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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