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음모의 진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회상 장면이나 혹은 주인공이 듣거나 보지 못하는 장면을 주인공과 오버랩시켜 극의 전개를 위해 보여주곤 한다.
시청자는 그런 장면을 보면서 스토리와 인물을 이해하고 극 중 설정이나 배경도 이해하게 된다.
지금껏 사회생활을 하면서 조직 내에서 나를 둘러싼 많은 에피소드, 말,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사소한 가십성 얘기들부터 심지어는 나와 주변 사람들의 운명을 결정 지을 정도로 중요한 일들이었으나 위에 말한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나만 모르게 내 주변을 안개처럼 휩싸고 있다가 흘러간 일들이 더 많았을 것이다.
많지 않은 내 이직 경험 중 서슴없이 최악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 그러했다.
어쩌면 안개처럼 나를 둘러싼 구조, 음모들이 많았기에 내게 최악의 조직과 시간으로 기억되는 지도 모르겠다.
그곳을 떠난 지도 어언 2년이 다 되어가면서, 마치 공개 제한 기간이 설정되어 있는 비밀문서처럼 서서히 그때 당시 내 주변을 둘러쌓던 음모, 구조, 사람들이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물론 이것도 나름 합리적인 추론이지만)
그 본색 안에는 그들에게 내가 어떤 존재였고, 나의 일거수일투족이 어떻게 인식되었으며, 그들의 갖은 위선과 연기, 가식이 있었는 지가 적나라하게 포함되어있다. 또한 내가 잠시 머물기 전부터 철옹성처럼 구축되어 있던 그들만의 세상과 권력 구조, 나눠먹기 룰등도 해당된다.
가령 블라인드에 근거없는 치명적 소문을 퍼트려 사회적 살인을 시도하고, 그 억울함을 밝히기 위해 난생 처음 경찰서 조사까지 받게한 행위를 한 사람이 사내 변호사였고, 방금 내가 행한 업무적 행위가 이젠 퇴직한 전임 담당자에게 실시간으로 보고됨은 물론이고, 그 둘 혹은 그 이상의 사람들의 단체 대화방에서 나라는 사람에 대한 인격 살인이 이뤄진다든지.
매일 신문지상을 뒤덮는 강력범죄 사건들의 기사를 보면 범행의 동기를 꼭 언급하게 된다.
요즘 증가하고 있는 '묻지 마'식 범죄도 만원 지하철 안에서 본의 아니게 주변 사람의 발을 밟는 정도의 부작위가 아니라면 묻지 마라는 말은 사실 원한 관계 등이 없다는 것뿐이지 완전한 묻지 마 범죄라는 건 없다.
하다못해, 자신의 감정, 폭력 본능을 해소하기 위한 희생양이 필요해서라도 동기는 있게 마련이다.
하물며, 어디서 듣지도 보지도 못한, 듣보잡이 자신의 자리를 위협했을 때는 동기보다 더 큰 엄청난 파괴 동기가 작동했으리라.(이 대목에서 난 이직의 의지는 있었지만, 위협을 받는 것으로 인식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인식하거나 특정하지 않았다.)
새로운 조직을 몇 차례 경험했고, 그때마다 나 스스로도 혹은 주변 사람들도 새로운 조직에 녹아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칭찬의 포인트가 되는 경우보다는 새로운 사람에 대한 비난의 포인트로 매우 자주 유용하게 사용된다.
지금보다 눈치나 조해력(組解力:조직의 언어와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눈치와 이해 능력으로 작자의 신조어)이 부족할 때는 이 또한 내 노력의 대상이고 잘 안될 때는 내 탓이라 생각하거나, 그런 게 어딨어 라는 식으로 애써 무시하곤 했었다.
하지만, 결국 내가 새로운 조직에서 조직화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거의 나 자신을 버리고 부정해야 가능한 일이거나, 운 좋게 나와 비슷하여 마치 잃어버린 퍼즐 조각을 찾아서 맞춘 정도의 행운과 우연이 결합되어야 했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심사위원석처럼 무대 반대편 저 높은 곳의 단상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며 '어디 한번 해보라' 혹은 '내 깟게 뭘 할 수 있겠어?' 혹은 이미 굳은 탈락 의지를 가지고 탈락 버튼에 손을 올리고 있는 표정과 시선으로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바라보는 시선을 극복해야 하는 것과 같다.
최악의 그곳에서 지렁이의 꿈틀거림 수준의 저항을 한 결과, 처참하게 조직적, 사회적 매장을 당하고 반쯤 쫓겨나듯이 떠나고 나니, 그들의 철옹성이 얼마나 단단하고 치밀했으며 잔인했는 지가 몸서리 쳐지게 느끼고 있다. (그 때의 경험 한자락: 임원이 새벽에 카톡을 보낸 이유 https://brunch.co.kr/@alwaystart/81)
더 나를 움츠리게 하는 것은, 지금 이곳이라고 다를까? 하는 의구심이다.
이곳도 나의 일거수일투족은 저들의 단체대화방과 메신저 속에서 찢기고 짓밟힐 것을 생각하면 내 자리의 파티션을 넘어 한 발짝도 사람들에게 내딛기가 겁난다.
그러함에도 오늘 아침에 알람 소리와 습관에 쫓겨 지금 내 파티션 안에 앉아 있는 것은 전쟁 영화 속 가망 없는 환자에게 마지막 선물처럼 놔주는 모르핀의 진통, 진정, 마취 효능의 덕일 것이다.
그 모르핀은 인생의 습관, 생계의 무서움, 나 자신에 대한 게으름 등으로 구성된다.
https://app.holix.com/profile/info/447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