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다 좋지만 그래도 더좋은 바다는...
사람과 사물 모두 뭔가 새로이 인식하고 알게 될 때, 첫인상은 매우 중요하다.
조류들이 처음 알을 깨고 나왔을 때, 처음 본 존재를 어미로 아는 것처럼.
사람도 가끔 뉴스에 나오듯이 수십 년 동안 아이가 바뀐 채, 모르고 사는 경우가 있는 걸 보면, 비슷한 것 같다.
어릴 때 바다를 처음 본 건 내 기억의 한계로는 초등학교 2, 3학년 정도였던 것 같다.(80년대 초반)
(우리 집이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평균 이하의 경제력 탓도 있지만, 지금같이 교통이 좋아서 아무 때나 휙 강원도 바다를 보고 오는 시절도 아니었다.)
지금도 앨범을 뒤져보면 나올 거 같은데, 강원도 동해의 낙산해수욕장이었고, 그때는 아직은 자본주의가 바닷가를 덮치지 않은 시절이었던 지라, 개인들이 자신들의 텐트를 치고 해수욕을 할 수 있었다.
그때 어깨 넓은 아저씨들이 자릿세를 받았었는데, 어린 나한테까지 그 어둠의 세계가 미치지 않아서 기억이 없는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지금도 여전히 7말 8초(7월 말 8월 초)에 많은 사람들이 휴가를 떠나듯이 그때도 그랬다.
7말 8초가 사람이 많이 붐벼서 안 좋은 것도 있지만, 날씨도 복불복에 한몫한다.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집 밖을 나갈 때는 날씨가 모든 것을 좌우한다.
아무것도 없는 들판에서도 날씨라도 좋으면 하늘 보며, 해바라기라도 하면서 버틸 수 있다.
하지만, 첫 바다 구경에는 날씨가 받쳐주지 않았다. 심지어 태풍까지 왔었다. 그 증거사진이 네 가족이 우의를 입고 누군가 찍어준 가족사진에 남아있다.
어제, 오늘 거의 몇 달 만에 비다운 비가 왔고, 하늘도 당연히 어두운 색깔이다.
내가 처음으로 본 바다가 잿빛 하늘에 비바람이 함께한 바다여서 인지, 난 해가 쨍쨍한 바다보다 흐린 바다가 더 좋다. 사실 바닷가가 아니어도 너무 화창한, 구름 한 점 없는 날씨는 내 인생에서 가장 화창했던 20대 때도 싫어했다.
그 얘길 듣고 나 몰래 사람들은 내 성격이 어쩌고 저쩌고 퍼즐을 맞췄으리라, 그래서 내가 MBTI를 절대 안한다.
오늘도 요즘 유행하는 차크닉이라도 하고 싶다. 흐린 바닷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