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달팽이 한마리가...
병원만 다녀오면 몸도 처지고 마음도 우울하다.
병원에 대한 우울한 이미지가 내 인생에서 너무 빨리 생겨서 인 듯하다.
어릴 적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는 위암으로 대수술을 받았고, 갖은 고생 끝에 위암을 겨우겨우 떨쳐내긴 했으나 짧은 60 평생을 사시는 동안 질긴 투병과 건강에 대한 불안의 그림자를 안고 살았고 결국 폐암으로 돌아가셨다.
어릴 적 평범한 병원도 아닌 이름도 생소한 국립의료원에 아버지는 장기 입원하셨었고, 가끔 주말에 엄마, 형과 함께 문병 갔던 기억이 난다.
우울했던 기억 중 그 당시엔 다인병실의 TV가 유료였는데, 코인노래방처럼 동전을 넣어야지 계속 볼 수 있었고, 병실에 환자 보호자들 중 누가 쌓아놨는지 알 수 없지만, TV 앞에 동전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그때부터 병원은 내게 우울한 곳이었다.
어린 마음에 병색이 완연한 얼굴로 누워있는 아버지와 낯선 병실에서 난 잠시도 편안히 앉질 못하고 쭈볏쭈볏 서성였던 기억이 난다.
끝내 아버지가 폐암으로 돌아가실 때도 병원은 내게 또한 우울한 기억을 남겨줬다.
많이 배운 의사와 병원에서 하는 처치들이 항상 맞고 옳은 것만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엄마는 아버지의 병시중에서 자신의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듯이 모든 것을 걸었고, 그럴수록 병원은 내 기억 속에 집처럼 변해갔다.
집처럼 짐들이 많아졌고, 각종 침구류와 옷가지, 그릇, 심지어는 음식까지 거의 집을 옮겨 놓은 것 같았다.
그리고 마지막 엄마가 돌아가실 때와 말년에도 내게 병원은 힘든 기억뿐이다.
엄마를 마지막 떠나보낸 병원 경험도 힘들었지만, 말년에 몇 번의 입원과 병원신세를 지면서 병원은 내게 씻을 수 없는 평생의 트라우마를 줬다.
그렇게 진절머리 나는 병원인데, 끝내 엄마는 너무나 응급한 상황과 토요일 오후의 많은 차들로 본인이 다니던 익숙한 병원이 아닌 낯선 병원에서 마지막 병원 생활을 마감해야 했다.
그래서 오늘도 병원에 다녀오면, 왠지 몸과 마음이 모두 우울하다.
원래 병원에 오가는 사람치곤 웃는 사람 하나 없고, 여유 있는 표정 짓는 사람 하나 없다.
요즘은 거기에 더해 지방에서 서울 큰 병원을 찾아온 사람들의 분주함과 하루종일 병원 주차장에 빈자리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붐빈다.
대형병원에 진료를 받으러 가려면, 마치 국제선 공항에 도착하듯이 주차장을 헤맬 시간까지 감안해서 일찌감치 출발해야 한다.
몇 달 전 예약해서 어렵게 만난 의사들도 하나같이 눈 한번 맞추고 따뜻함은 고사하고 정상적인 대화조차 나누기 힘들다.
그리고 병원을 오가는 나보다 나이 많은 환자들을 보고 있노라면 두렵다.
그 미래가 좀 더 다가와서 생기는 공포기도 하지만, 불가항력이라는 생각이 주는 공포가 더 크다.
어릴 때 아버지의 투병을 보면서 병의 공포에 대해서 또래보다 빠른 경각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장래 희망 마냥 난 미리미리 검진도 받고 병원을 자주 다니면서 병을 발견하리라 생각했다.
오래 살고 싶다는 욕망보다는 아프고 싶지 않다는 맘이 더 컸던 것 같다.
하지만, 웬걸, 지금은 나의 의지와 계획과는 전혀 무관하게 병이 생기고 그 병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병원 다녀오는 날은 우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