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슬로우 욕구 5단계 갖다 붙이기
년생 앞자리가 7이다.
모든 어린 시절과 성장기를 기억하는 건 아니지만, 흔히 어려운 시기를 말하는 보릿고개 세대는 아니다. 그리고 보릿고개 시절의 어려움을 듣고 간접 체험은 했지만, 나의 경험으로 와닿진 않는다.
8,90년대 국가 주도의 스포츠 육성책이 활발할 때, 올림픽은 국제 종합 스포츠 경기라기보다는 전 국가와 국민적인 투쟁의 場으로 느껴졌었다. 그 일면을 보여주는 것이 출정식과 같이 전투적인 용어들과 심지어 응원가도 만들어져서 연일 방송에서 틀어졌었다.
얼마나 많이 틀어줬으면 지금도 기억나는 가사가 있다.
'빛내자 빛을 내자, 대한의 건아들' 그 역사와 전통은 고고히 이어져 2002년의 월드컵시 윤도현을 필두로 많은 가수들이 부른 응원곡들도 그 궤를 같이 한다.
그리고 그 시절 메달리스트들은 하나같이 다 메달을 따기 전까지의 다양한 스토리들로 장식되었는데, 그 스토리들은 대부분 역경, 고난, 가난이었다.
소위 잘 나가는 강남 출신으로 금메달을 딴 경우는 내 기억으로는 없었다.
결국 힘들어서 배고파서 선택한 운동이었고, 어떻게든 성공해야 먹고살 수 있었으므로 생계 수단 수준의 노력과 희생을 했다가 主이미지였던 것 같다.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로 봤을 때, 이러한 먹고사는 문제 해결을 위한 욕구는 1단계 생리적 욕구와 2단계 안전의 욕구 정도 될 것 같다.
요즘도 스포츠 뉴스를 보면, 특히나 국가대항전 경기에서 기존 성적보다 낮은 성적을 낼 경우 곧바로 헝그리 정신으로 연결하여 비난을 퍼붓곤 한다.
한마디로 배불러서 열심히 안 한다는 거다.
그렇다면, 최근에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탈아시아급 실력을 보여서 결국 야구 종주국 미국을 꺾고 우승까지 거머쥔 일본 야구 대표팀의 선전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설마 일본이 배고파서 이러한 성적과 실력향상을 가져왔다고 생각하는가?
2022년 카타르월드컵에서 국민들이 가장 관심 있었던 것은 대표팀의 16강 진출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중꺾마'와 같은 먹고사는 문제와는 다른 도전과 실패에 대한 과정과 그 스토리에 더 관심이 많았다.
결국 이젠 더 이상 매슬로우 욕구단계의 하급 욕구로는 조직 구성원들에게 동기부여 할 수 없다.
3단계인 관계의 욕구로도 부족하다. (大사직의 시대와 Gig경제의 시대임을 상기해 보자)
최소 4단계인 인정과 존경은 되어야 구성원들의 동기를 끌어낼 수 있다.
최소한이라고 칭한 이유는 이미 4단계도 MZ세대들에겐 식상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칭찬과 격려, 인정은 이미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일례로 유치원 졸업식을 가보라, 예전엔 Big3에게만 주던 상(최우수, 우수, 장려상)이 요즘은 갖은 명목과 상이름을 붙여서 모든 아이들에게 償 하나씩은 주고 있다.
그러면 결국 남은 건 5단계 자아실현을 위한 동기부여 밖에 없다.
자아실현의 정의와 기준은 개인별로 다 다르다. 같은 시간에 태어난 쌍둥이조차도 똑같은 것 같으면서도 다를진대, 하물며 조직 구성원들은 백인백색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렇게 제각각인 자아실현을 위한 동기부여를 촉진하기 위해선 그들과 일대일 코칭 수준의 관심, 소통 그리고 지속적인 추적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자아실현을 위해선 코치 역할의 리더들이 섬세하고 예민해져야 한다.
목표달성이나 성과관리에선 一喜一悲(일희일비)를 경계하지만, 인간은 오히려 일희일비가 지극히 정상이고 이를 인정하고 적당히 컨트롤하고 이용함이 더 필요하다.(悲보다는 喜를 더 잘 이용하자!)
이들은 법카(법인카드)로 해결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