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있다.
그래도 스스로 삼가고 고민하며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고 자위한다.
인간 망각의 순기능으로 걱정이 많아서 실기(失期)하여 손해를 본 기억을 쉽게 잊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우리 문화는 외부로 보이는 것에 지나치게 민감하다.
그래서 역사나 과거의 기억 혹은 비극적인 사고등의 흔적을 누가 볼 새라 감추고 없애고 때로는 은폐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중 하나가 세상 모든 사람이 맞이하게 될 나이 듦, 노후, 노년기에 대해서 사람들은 각자의 다양한 이유를 들어서 외면하려 한다.
기껏 관심을 보여도 모두 어둡고 우울한 예측뿐이다.
늙으면 외롭고, 가난하고, 병들고 등등... 어느 것 하나 노숙한 열심히 산 인생의 후반전으로서의 인정, 배려, 편안함, 그리고 노년의 여유 등은 찾아보기 힘들다.
어릴 때, 부모님은 그리 건강을 타고나진 않으셨다.
아버지는 이미 40대에 큰 위암 수술을 겪으셨고, 어머니도 일찌감치, 당뇨와 합병증 그리고 삶이 주는 피곤함으로 말년까지 요즘 사람들이 건강을 위해 먹는 건강기능식품처럼 병원에서 주는 치료약을 달고 사셨다.
그런 부모님을 보면서 난 열심히 병원을 다녀서 병을 미리 발견하리라 다짐했었다.
효과가 없진 않아서, 병을 조기 발견하고 치료도 꾸준히 하고는 있지만, 50을 바라보는 나이에 내린 결론은
결국 나이듬처럼 병도 나의 의지와 노력과는 별개로 발병하고 나를 괴롭히며 어쩔 수 없이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나이듬과의 동행도 비슷하다.
나이 들어서 부족한 돈은 연금이라도 들어볼 수 있지만, 나이 들어서 갈 곳 없고, 할 일 없고, 만날 사람이 줄어드는 것을 돈처럼 미리미리 대비하여 쌓아놓을 수 있을까?
타고난 붙임성 없는 성격은 둘째 치더라도 당장 현실을 살아내기도 힘든데 먼 미래의 적적함과 외로움까지 미리미리 대비하는 것은 내겐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나 이런 것들은 돈처럼 쌓기도 어렵지만, 쌓아 논다고 약간의 가치하락만 감수하면 영원히 내 통장에 숫자로 남겨질 돈과는 다르다.
결국 때마다 하던 정기 건강검진이 건강 확인이 아니고 병증의 발견의 시간이 되었고, 그 병증을 순순히 인정하고 치료와 동행하기로 선택한 것처럼,
이런 나이 듦에 따른 현상들도 순순히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물론 독감 예방 주사를 맞으면서 완전한 독감 예방을 기대하기보다는 감염 확률이나 증상 완화를 기대하는 것처럼 미래를 위한 준비는 꾸준히 해나가면서
하지만, 결국 다가올 나이듬이 주는 여러 증상도 무덤덤하게 받아들일 마음과 순응의 준비도 더불어 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