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를 하려면 내 몸무게가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고 과체중이나 비만임을 인정해야 시작된다.
인정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고, 오히려 현상은 대부분 악화되는 방향으로 더욱 굳어만 간다.
근원적 질문으로 인정하지 않음을 인정하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는 또 얼마나 많은가?
나이가 반백이 넘어가면 지금 발견했든, 원래부터 있었는데 내가 몰랐든, 알고 있었든 몸에 뭔가 하나쯤 병증은 있게 마련이다.
누군가는 평생 관찰해야 하고, 약을 먹기도 해야 하며 혹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발병의 불안감을 안고 살아야 한다.
천성적으로 그렇게 철두철미한 성격은 아니지만, 어떤 현상과 결과의 원인을 자주 따지곤 했다.
병이 나도 왜 내가 병이 걸렸지? 하는 답 없는 질문을 하는 식이다.
건강이든 돈에 관련된 것이든 모든 부모 된 자들의 숙명인 자식관련 된 것이든, 인정해야 할 일들이 늘어만 간다.
그중 대부분은 원인을 따지기 애매한 그래서 납득이 쉽지 않고 더불어서 인정과 대응이 지연된다.
암환자들의 심리 반응은 첫 단계가 "부정"(내가 암에 걸릴 리 없어.)이라 하지 않은가?
예전엔 쓸데없고 근거 없이 "확" 결정하고 저지르는 일이 종종 있었고 결과는 득보다는 실이 많았었다.
그래서 요즘엔 최종 버튼을 누르기 전에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습관을 들이고 있다. 가끔은 과해서 문제지만
하지만, 그런 마지막 숙고의 시간 속에도 "인정"하지 않으면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다.
대부분 인정하지 않은 일들이 내가 원치 않은 것들이기에 인정은 사실 고통과 인내의 시작을 의미한다.
하지만, 인정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고, 그저 내가 대응에 사용할 수 있는 시간만 줄어들 뿐이다.
그리고 인정거리는 내가 하지 않아도 이미 시간과 인정 대상의 위대한 힘으로 내가 모르게 인정 단계로 스스로 알아서 넘어가고 있다.
마치 병증이 자연 치유되기보다는 악화되는 것처럼
인정이 위대한 것은 인정하는 순간 막힌 변기가 뚫려 힘차게 물이 내려가는 것처럼 문제의 해결이 시작되는 경우다. 물론 그 문제의 해결은 원상회복이나 문제의 발생 이전보다 더 나아짐을 담보하진 않는다.
그저 문제의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나아갈 뿐이고, 그 다음 단계가 항상 징검다리의 다음 돌계단 같지 믿음직스럽고 만족스럽지 않을 수도 있음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