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은 태권도는 아님(스포일러)
요즘은 공교육(학교)보다 사교육의 비중과 사람들의 관심이 더 높아진 지 오래다. 예전 고3 수험생의 진로 지도는 몇몇 유명 입시학원이 유명세를 타긴 했지만, 전적으로 일반 고등학교의 고3 담임선생들의 말을 따르는 게 순리일 만큼 사교육보다는 공교육에 대한 비중과 신뢰가 더 높았다.
나 때는-참고로 저자는 90년대 초반 학번이다- 학원은 상위 1% 이상의 최상위로 가고 싶은 학생들이나, 혹은 그 반대로 학교 정규 수업과 본인의 학습으로 왠지 부족한 학생들이 다니는 곳으로 인식됐었다.
즉, 학원 다니는 게 그리 흔하지 않았다. 나도 역시 그리 부유하지 않은 집안 형편과 위에 말한 트렌드로 중, 고등학교 시절엔 학원을 다녀본 적이 없고, 다만 중학교 이전엔 그 시대 유행하던 주산이나 피아노, 태권도 학원을 그리 길지 않게 다녀본 적이 있었다.
그 시절 우리 집 가풍은 학원 관련해선 '경험주의'여서, 깊이보다는 넓게 고루 경험해보자는 생각이 강했고, 학원을 다녀도 한 군데를 그리 오래 다니지 않았었다.
그런 짧은 학원 경험임에도 유일하게 7년 넘게 다녔던 학원이 태권도장이었다. 상대적으로 오래 다닌 태권도장의 흔적은 군대 복무 시절까지 이어져서, 가끔은 훈련 등에서 7년 태권도장 정진의 덕을 보곤 했었다.
하지만, 태권도장의 진정한 흔적은 공인 3단, 발차기보다는 오히려 그 시절 나를 지도해주던 사범님-코치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의 정기적인 훈육의 기억과 흔적이다. 그 훈육의 방법은 다름 아닌, 수기를 읽어주는 것이었다.
아마도 태권도 협회 등에서 정기적으로 발행한 간행물 속에 어려움을 딛고 자신의 태권도와 꿈을 성취한 사람들의 수기였다. 대부분 내용 전개는 어려움 속에서 내가 어떤 마인드와 노력을 통해서 오늘날의 성취를 이뤘는가로 이뤄졌다.
훈육 방법은 태권도장 바닥에 오와 열을 맞춰 정좌하고 앉아있고, 사범님은 그 사이를 학교 선생님 마냥 오가며 그 수기를 읽어 줬었다. 그때 들었던 수기 중 기억나는 것은 거의 없지만, 스토리텔링의 힘인지 난 그때 그 수기를 통해서 느꼈던 감정이나 타인의 의지가 현재의 내 마인드 셋에 은연중 남아있다.
그리고 그 수기를 통한 감정과 결심이 시간으로 인해 기억은 안 날 지언정 그동안 내 인생의 많은 결정에 영향을 주고 그 결정의 결과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즉, 내 의지에 의해서 혹은 부지불식 간에 내 판단의 기준과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에 그때의 수기를 통해서 얻었던 흔적들이 각인되어 있는 것이다. 마치 물고기의 비늘에 바다의 흔적이 남아있듯이.
이렇게 미래의 결과와 쓰임새를 알 수 없는 사건과 경험의 힘은 때론 매우 중요하고 강력하여 한 사람의 인생에 큰 영향을 주곤 한다. 파울로 코엘료가 " 때로는 잘못탄 기차가 올바른 방향으로 우리를 이끌고 간다."라고 말한 것처럼, 현재의 결정과 판단의 결과가 어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오히려 스스로 '망했다'라고 생각한 결정과 조건이 전혀 다른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러기에 현재의 결정에 신중함과 더불어 한 템포 쉬어가는 여유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시간이 흘러 결국 나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지금, 현재의 나에겐 도움이 된다는 것만으로도 그런 받아들임의 의미와 효용은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