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달: 보고서의 달인
조직 생활 중 보고서만큼 애증의 대상이 없다. 애증의 대상에서 애(愛)는 흔히 '보달'(보고서의 달인)들에게 해당되는 단어일 테고, 증(憎)은 보고서가 어려운, 보고서를 잘 못쓰는 사람들에게 떠오르는 단어일 것이다. 저자는 솔직히 대기업 재직 시절에 보달이 부러운 사람 중 한 명이었고, 심지어는 보고서 스트레스로 인해 이직과 부서 이동 등을 심각하게 고민했던 전력이 있었다. 지금 와 보고서가 왜 그리 어려운가? 보달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생각해 본 결과는 이렇다.
보달들의 보고서를 보면 물론 구성이나 배치, 논리 전개 등이 훌륭한 건 사실이지만, 보고받는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이 보기에 컨설팅사들의 현란한 이미지나 그래픽 등은 거의 없다. 그런데 그런 외견상 무미건조 해 보이는 보고서의 특징 중 하나가 결국 보고서는 보고 받는 사람이 소수로 한정돼 있다는 거다. 보고서를 이해하고 평가하는 사람도 보고 받는 상사일 가능성이 높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식 종류가 다르듯이, 보고서도 보고 받는 사람들의 호불호가 뚜렷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어떤 리더는 서술형을 좋아하고, 다른 리더는 표로 정리되는 것을 선호하는 것처럼 말이다. 결국 보달들은 그 선호를 예민하게 파악하고 최대한 보고서의 내용을 그 선호에 맞춰 작성한다. 물론 보달의 자존심으로 그 보고서 와중에 개인의 취향과 의견을 알듯 모를 듯 반영하기도 하지만. 그 개인 취향조차도 리더의 취향에 반하지 않는 선으로 한정된다. 과거 내가 아는 슈퍼급 보달은 개인 의견이 들어가지 않는다면 나는 대서방(代書房)에 불과하다는 자기 기준을 강변하기도 했었다.
보달은 보고서 주변의 연결 이슈들과 후속 작업까지 감안하고 예측하며 보고서를 쓴다. 지금 쓰고 있는 보고서는 큰 그림의 일부 블록이지만, 블록 하나라도 큰 그림에 맞지 않는다면 큰 그림은 완성되지 않기에, 혹은 그 보고서는 배척되기에, 보고서 앞뒤와 좌우에 연결되는 이슈들을 확인하고 감안하는 것은 보고서 자체의 가치를 올리는 데 매우 중요하다. 이는 보고서의 목적인 리더의 판단과 의사결정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이러한 관점과 접근은 작성자의 안목과 인사이트를 올리는데도 도움이 되는데, 가령 보고서에 연결되는 이슈를 확인하고 예측하기 위해서는 보고서에 담지 않더라도 다양한 자료와 의견들을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집에서는 필요 없다. 이 말은 조직 내에서 작성하는 보고서는 철저하게 상사의 취향, 조직, 프로젝트의 필요에 맞춰져야 한다. 개인 취향은 집에서만 개인 영역에서 맘껏 적용하자. 결국 보고서의 수요자는 리더와 의사결정자이고 작성 목적은 조직의 성과 창출을 위한 의사결정의 도구로서 기능하기 위해서이지, 개인의 재능을 뽐내기 위함은 부차적인 이유임을 명심해야 한다.
보고서뿐만 아니라 조직 내 업무 수행 시에도 개인의 성향, 의견, 자존심보다는 조직의 목표 달성과 성과창출, 리더의 의사결정에 도움이 되는 것을 우선순위에 올려놓는 것이 보달이 되는 지름길이다. 결국 이러한 접근이 나의 의견이 더 크게 반영될 수 있는 디딤돌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