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는 것을 더 잘하는 게 낫다
장면. 1... 2000년대 초반이니 거의 20년 전이다. 그 당시 난 지리산에 있는 그룹 연수원에서 신입사원 200여 명과 함께 입문교육을 진행하고 있었다. A부터 H까지 팀이 나눠져 있었고, 나 같은 입사 3년 차 수준의 선배들이 지도 선배라는 배지를 달고 그들과 한 달 동안 동고동락했었다. 지금은 군대 문화의 잔재처럼 거의 청산되었을 룰이지만 그때는 밤도 아직 긴 늦겨울, 초봄에 아침 6시에 운동장 조회가 있었다. 군인들같이 일사불란한 점호 행사는 아니어도 남녀 200여 명이 그 시간에 운동장에 모이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는 않지만, 그 당시 내 기준으로는 입문교육 초반이 지나면 충분히 적응할 수 있으리란 기대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기대는 교육 한 달 내내 조금씩 틀렸음이 증명되었다. 입문교육 마지막 날까지 가장 기강이 살아있을 그들은 전원이 한 번도 정시에 모이질 못했다.
난 이 장면의 원인을 그 당시 신입사원들의 탓으로만 돌릴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때 제때 모이지 못했던 사람이 고정적이지도 않았고-약간은 습관적인 사람도 있었다.-그때나 지금이나 든 생각은 이젠 더 이상 이런 방식이 안 먹히는 세대인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니, 이건 사람탓반 제도(문화) 탓 반인 거 같다.
장면. 2 회사에 신입 직원이 들어왔다. '일본 전산 이야기'라는 책에서 목소리 큰 사람을 뽑는 이유의 타당성을 몸소 증명한 사람이다. 사실 이 친구를 만나기 전까지 난 실상황에서 목소리 큰 사람을 채용하는 이유를 찾지 못했었다. 목소리가 작다는 것은 뭔가 자신감이 없거나 혹은 과도하게 주변을 의식하는 것이다. 그리고 본인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과 신념 등도 주변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징표다. 이는 업무 시에도 매우 중요하다.
가끔 상사와 대화할 때 상사 입모양이나 표정을 보고 보고의 내용과 뉘앙스를 바꾸는 사람들이 있다. - 나도 과장 시절 대단히 시크했던 상사와의 대화 중 그랬다.- 물론 사람마다 일시적으로 그럴 수도 있지만, 그것이 반복되고 그 사람의 특징으로 자리 잡았다면 목소리 크기와 우수 인재와의 연관성을 설명하는 증거라고 생각된다.
다시 그로 돌아가면 그는 입사 첫날부터 인사를 눈과 목으로만 했다. 사무실에서는 소리 내지 않고 자기만 하는 인사는 다른 사람들은 자기 일하기 바빠서 인지하지 못하기에 인사로서 의미가 없다. 그래서 당연히 상사로서 소리 내어 인사하라고 피드백을 몇 차례 줬다. 하지만, 그녀는 약 19개월 만에 부서를 옮길 때까지 소리 내어 인사하지 않았다. 즉, 위에서 말한 성향이 변하지 않았기에, 그 결과물인 입으로 하는 인사는 불가능했던 것이다.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가 쓴 '굿 라이프'라는 책을 보면 행복을 저해하는 이벤트의 트라우마들로 인한 그 사람의 기억과 마음의 상처는 시간이 지나도 그전처럼 회복되지 않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적었다. 외부 요인에 의한 흔적도 끝내 지우지 못하는 게 인간의 마음, 뇌인데 하물며, 자기 스스로 수만 시간 동안 갈고닦아서(?) 생긴 성향이나 버릇이 조직이나 주변인의 몇 마디 말로 바뀔까? 혹은 본인이 노력하면 바꿀 수 있을까? 바꾸려고 하는 시도는 성공할 수 있을까?
사회과학의 특성상 절대 불가능한 일은 없다. 그만큼 사람도 사회도 다양하니까, 하지만 확률 기준으로 볼 때 사람이 바뀌는 걸 기대하고 그 사람과의 미래를 꿈꾸는 것보다는 바뀌기 어렵다는 걸 인정하고, 그 사람의 장점에 기대하거나 변화를 포기하는 것이 더 확률 높은 선택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