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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인식 Jun 20. 2024

집필 과정에서의 버전 관리

「글을 긷자」 손수 역사를 쓰면서 작품의 완성으로 수렴해 가는 길

종이에 펜으로 글을 시작하다가 이게 아니라며 종이를 대충 구겨 던져 버리는 것은,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거나 영화나 드라마에서 한 번쯤 묘사되었을 수 있습니다. PC가 없던 옛날이라면 그렇게 쓰레기통이나 방 한쪽 구석이 버려진 문장들로 가득했겠지만, 요즘엔 필요 없는 것을 지우고 가볍게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컴퓨팅 단말기에서 ‘Delete’ 키나 ‘← (백스페이스)’ 키만 누르면 됩니다. 디지털 데이터를 만지고 생산하는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일상인 요즘, 디지털화된 것이 지워지는 게 너무 쉬움을 알기에 더욱 손에 잡히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어 하는 마음이 생기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엇 하나 쉽게 버리지 못하는 제 성격을 굳이 탓할 필요는 없겠지만, 저는 최종 선택된 것이 나오기 전의 짧은 문장도 삭제하는 대신 남겨두는 편입니다.


아래는 지금의 부제가 나오기 전의 문장들입니다:  

탈고를 위한 여정

기나긴 여정에 빵조각을 떨어뜨리는 일

탈고를 위한 기나긴 여정에 빵조각을 떨어뜨리는 일


버전 관리를 위한 지점이 생성되기 전이라면, 최종 선택된 것 외에 위와 같은 것들은 삭제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버전 관리 지점이 생성된 후에 최종 선택된 것이 남았다면, 나중에 언제라도 이전 버전을 통해 선택되지 않은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A: (아이씨, ) 누가 퇴근 10분 전에 일을 줘요?
B: 고객사 요청인 걸 어떡합니까? 오늘 나간 이벤트인데, 유의사항에 중요한 문구 수정이 필요해요.
A: 알았어요, 금방 하겠네. 어떤 이벤트예요?

업무 중 발생할 수 있는 위와 같은 상황에 우리는 ‘화’나 ‘짜증’과 같은 감정으로 인생이란 타임라인에 일종의 ‘키프레임’을 새기는 거라고 가정해 봅니다.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꺼낸 건, ‘버전 관리를 한다는 것’이 앞에서 말씀드린 ‘키프레임을 새기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살면서 느낀 여러 감정에 대해 가까운 사람에게 이야기하면서,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이전 버전의 나를 열어 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정리도 잠깐 해 봅니다.


집필 과정에 버전 관리를 적용한다는 것은,
역사를 쓰면서 작품의 완성으로 수렴해 가는 것입니다.


최신보다는 최선을 선택

기록해 둔 지 오래된 메모를 한 번씩 열어보면, 이걸 쓴 게 과연 내가 맞나 싶을 정도로 낯설게 느껴지는 경험을 하곤 합니다. 무슨 생각을 하다가 나왔는지 모를 그런 문장들은, 그대로 묻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여러 번 만져지면서 시 한 편으로 혹은 짧은 이야기나 멋진 노래 가사로 변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떠오르는 대로 쓰고 다시 만지지 않은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두 번 세 번 손을 댄 것은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최종본만 남게 됩니다.


노트 앱에서 지원하는 ‘지난 이력 보기’ 같은 기능을 이용하면 기록물의 이전 상태가 어땠는지 확인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되돌아갈 수 있는 시점을 정하는 것은 서비스 제공자가 만든 정책을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 기기에서 노트를 항상 최신의 상태로 유지합니다’와 같은 안내문구를 접해도, 기기간 데이터의 충돌 해소가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미심쩍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버전 관리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면 그런 약간의 불편함과 작은 의심을 없앨 수 있습니다. 최신 보다 최선의 상태로 기록물의 상태를 관리할 수 있습니다.


버전 관리가 필요한 이유

버전 관리는 생산성을 높이고 여러 가능성을 키우는 일입니다. 버전 관리 환경을 조성한다고 해서 PC를 사용하면서 오랫동안 익숙하게 쓰던 폴더와 파일 개념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하나의 장비에 국한되지 않고 여러 장비에 기록물을 안전하게 분산저장할 수 있으며, 기록 관리에 많은 자율성이 부여됩니다. 영상에 키프레임을 생성하듯 기록물의 각 상태별로 메시지를 남길 수 있어서, 필요한 내용을 다시 찾을 때 유용합니다.


Git을 이용한 버전 관리를 한다고 해서, 그게 GitHub라는 서비스에 의존적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공동 작업을 위해서는 GitHub나 GitLab과 같은 서비스는 필수적입니다.  


그러니,

삭제하지 말고 남겨봅시다, 창고에 쌓여 있는 박스들처럼 큰 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아닌데.

기록하고 커밋하고 푸시하고 잊어버립시다, 그래야 새로운 문장들이 샘솟을 테니까.





연재 안내

브런치북 「글을 Git[긷]자」는 웹 서비스를 위한 UI/UX 개발자인 저자가, 다년간의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Git과 GitHub 그리고 Visual Studio Code라는 무료 범용 텍스트 에디터를 이용한 글쓰기 방식을 제안하기 위해 기획되었습니다.


https://github.com/enchic/gitzza-pla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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