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스트레인지: 편도체는 포크를 거부했다

[또 다른 해석] 무의식(Unconscious) - 5부

by 공인식

이 글은 세 편짜리 시리즈의 첫 번째다. 처리 불가능한 것 앞에서 편도체가 선택하는 세 가지 경로 — 포크의 거부, 포크의 외부 투사, 포크의 내파 — 를 각각 다른 영화로 읽는다. 첫 번째는 〈닥터 스트레인지(2016)〉다. 스티븐 스트레인지가 거친 것은 단순한 영웅의 성장이 아니다. 처리 불가능한 상실 앞에서 그의 편도체가 선택한 것은 포크의 거부였다. 사고 이전의 앵커 노드 구조, Ancient One의 강제 알고리즘 해체, 케실리어스가 택한 우회 경로, 전의식 레이어로서의 미러 디멘션, 홍콩에서의 기억 재공고화, 그리고 도르마무에게 타임스탬프를 강제 부여한 루프. 이 장면들이 각각 무의식의 작동 방식을 시각화하고 있다.




AI 정보


이 글은 비전공자의 창의적 해석입니다. 본문에 포함된 심리학·신경과학적 개념은 공개 학술 자료를 참고했으나, 해당 분야의 전문적 진술이 아니며 의학적 조언이나 진단을 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닥터 스트레인지 Doctor Strange, 2016〉

감독 | 스콧 데릭슨 (Scott Derrickson)

각본 | 스콧 데릭슨 (Scott Derrickson) · C. 로버트 카길 (C. Robert Cargill) · 존 스페이츠 (Jon Spaihts)

출연 | 베네딕트 컴버배치 (Benedict Cumberbatch), 틸다 스윈턴 (Tilda Swinton), 매즈 미켈슨 (Mads Mikkelsen), 레이철 맥아담스 (Rachel McAdams), 베네딕트 웡 (Benedict Wong)

장르 | 슈퍼히어로 · 액션

상영시간 | 115분

개봉 | 미국 2016.11.04 · 한국 2016.10.26




이 글은 세 편짜리 시리즈의 첫 번째다.


세 편의 영화를 다룬다. 〈닥터 스트레인지〉,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그리고 데이비드 린치의 〈멀홀랜드 드라이브〉. 장르도 다르고, 세계관도 다르고, 시대도 다르다. 그런데 이 세 편은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처리 불가능한 것 앞에서, 편도체는 무엇을 선택하는가.


첫 번째 영화의 답은: 포크를 거부한다. 두 번째 영화의 답은: 포크를 외부로 투사한다. 세 번째 영화의 답은: 포크가 내부에서 실행되다가 본체를 무너뜨린다.


이 글에서는 그 첫 번째를 다룬다. 〈닥터 스트레인지(Doctor Strange, 2016)〉.


스포일러가 있다.


형식이 먼저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건물들이 접히고, 도시가 뒤집히고, 차원이 겹치는 시각적 장면들이다. 마케팅에서도 이 이미지들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런데 이 장면들을 시각 효과로만 읽으면 절반을 놓치는 것이다.


도시가 접히는 장면이 그리는 것은 무엇인가. 현실이 여러 겹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 그 겹들이 동시에 작동한다는 것. 어느 레이어가 '진짜'인지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


뇌가 현실을 처리하는 방식이 이렇다. 감각 입력이 들어오면 뇌는 그것을 여러 레이어에서 동시에 처리한다. 위협인지 기회인지 배경인지 — 이 분류가 병렬로 일어난다. 그 처리의 핵심에 편도체가 있다. 편도체는 들어오는 모든 것에 감정 태그를 붙이고, 그 태그에 따라 반응의 우선순위를 결정한다. 그 처리가 굳어진 것이 컨센서스 알고리즘이다. "세계는 이렇게 생겼다"는 학습된 패턴.


스트레인지가 처음 차원을 경험하는 장면에서 도시가 접히고 뒤집힐 때 — 그것은 스트레인지의 컨센서스 알고리즘이 강제로 해체되는 순간의 시각적 표현이다. 외과 의사로서 평생 학습해 온 인과 논리와 물리 법칙에 대한 신뢰가 일순간 무효화되는 것. 그 해체가 아름답게 보이는 이유는, 기존 패턴을 놓아주는 순간이 고통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해방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형식이 내용을 닮았다. 이 영화의 시각 언어 자체가 이 영화가 말하려는 것이다.


Scene 0 — 사고 이전: 앵커 노드의 구조

스티븐 스트레인지(베네딕트 컴버배치 분)가 외과 의사로 등장하는 초반부를 다시 보면, 그가 단순히 능력 있는 의사가 아니라는 것이 보인다.


수술실에서 음악을 틀어달라고 하고, 어떤 곡인지 맞히는 게임을 한다. 정확히 맞힌다. 손목시계를 모은다. 부유하고, 정확하고, 완벽하다. 그리고 그것을 안다. 자신이 최고라는 것을 알고, 그 앎이 불편하지 않다.


이것이 그의 앵커 노드의 형태다.


앵커 노드는 단순한 자존심이 아니다. 그의 컨센서스 알고리즘 전체의 기반이다. '나는 최고다', '내 손이 사람을 살린다', '나는 통제할 수 있다' — 이 세 명제가 그의 모든 결정의 기준점이다. 어떤 케이스를 수술할지, 어떤 위험을 감수할지, 어떤 사람을 가까이할지.


크리스틴 팔머(레이철 맥아담스 분)와의 관계도 이 맥락에서 읽힌다. 그는 그녀에게 마음이 있지만 완전히 내주지 않는다. 진짜로 취약해지는 것은 — 자신의 앵커 노드가 흔들리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완전한 연결은 완전한 통제 불가능을 의미한다. 그 불가능이 앵커 노드와 충돌한다.


이 구조가 중요한 것은, 뒤에 일어날 모든 것의 기반이기 때문이다. 앵커 노드가 단단할수록, 그것이 무너졌을 때의 보류 큐도 그만큼 크다.


Scene 1 — 사고: 앵커 노드의 파괴

빗길. 과속. 스마트폰. 그리고 추락.


스트레인지가 사고에서 깨어났을 때, 그가 잃은 것은 손의 기능만이 아니다. 손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은 — 그의 앵커 노드 전체가 실행 불가 상태가 됐다는 것이다. 최고 외과 의사였던 그는 더 이상 최고 외과 의사가 아니다. 그런데 그의 컨센서스 알고리즘은 여전히 그 앵커 노드를 기반으로 세계를 처리하려 한다.


이 불일치가 보류 큐를 만든다.


재활 치료를 받는 장면들이 짧게 지나가지만, 그 안에 많은 것이 있다. 스트레인지는 최첨단 시술을 계속 시도한다. 다시 손을 쓸 수 있게 되길 원하는 것이 아니라 — 예전과 정확히 같은 수준으로 돌아가길 원한다. 95%도 안 된다. 100%가 아니면 의미가 없다.


왜인가.


'최고'가 앵커 노드인 사람에게 '거의 최고'는 앵커 노드가 아니다. 컨센서스 알고리즘이 그것을 수용하지 않는다. 처리되지 않은 트랜잭션들이 보류 큐에 계속 쌓인다. 나는 최고여야 한다. 내 손이 작동해야 한다. 나는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이 트랜잭션들이 컨센서스를 통과하지 못한 채 실행 압력을 가한다.


그 압력의 방출 경로가 카마르-타지를 향하는 것이다. 과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치유의 사례를 찾아 모든 재산을 쓰고, 네팔까지 간다. 논리적으로 보이지만 — 보류 큐가 실행 기질을 찾아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있다. 스트레인지는 이 시점에서 포크를 생성하지 않았다.


포크는 처리 불가능한 것 앞에서 — 그 현실을 받아들이는 대신 다른 현실을 만들어 그 안에서 실행하려는 시도다. 케실리어스가 한 것, 완다가 한 것, 그리고 린치의 다이앤이 한 것이 그것이다. 스트레인지는 하지 않았다. 현실을 다르게 만들려 하지 않고, 현실 안에서 해결을 찾아 움직였다. 그것이 카마르-타지다.


Scene 2 — Ancient One이 스트레인지를 밀어낼 때

Ancient One(틸다 스윈턴 분)이 처음 스트레인지를 만나는 장면에서 그녀가 하는 것은 설명이 아니다.


손을 댄다. 그리고 밀어낸다.


스트레인지의 의식이 몸에서 분리된다. 분자 단위로 쪼개진다. 수십 개의 차원을 동시에 통과한다. 그리고 돌아온다. 순식간에. 그는 바닥에 쓰러진 채로 떨고 있다.


Ancient One이 말한다. "당신은 지금 당신이 아는 세계의 끝을 봤어요."


이 장면에서 일어난 것을 다시 읽으면 — 스트레인지의 기존 컨센서스 알고리즘이 강제로 과부하된 것이다. 외과 의사로서 쌓아온 인과 논리, 물리 법칙에 대한 믿음, 자아의 경계 — 전부 한꺼번에 해체됐다.


이것이 왜 필요했는가.


스트레인지가 카마르-타지에 도착했을 때, 그의 알고리즘은 손상된 채로도 여전히 작동하고 있었다. 그 알고리즘의 핵심은 '나는 검증된 방법론으로 세계를 이해한다'는 것이었다. 설득은 그 알고리즘을 통과해야 한다. 그런데 알고리즘이 막고 있는 것을 설득으로 통과시키는 것은 — 거의 불가능하다. 알고리즘이 새로운 입력을 기존 패턴으로 분류해 버리기 때문이다.


Ancient One은 설득하지 않았다. 알고리즘을 먼저 무력화했다.


강제 과부하. 기존 컨센서스 알고리즘이 처리할 수 없는 입력을 한꺼번에 넣은 것이다. 뇌가 새로운 것을 학습할 때 기존 연결이 재조정되어야 새 패턴이 자리를 잡는다[1]. 스트레인지가 이후 빠르게 마법을 익히는 것은 재능의 문제가 아니다. 기존 컨센서스 알고리즘이 그 장면에서 충분히 부서졌기 때문이다. 재작성이 가능해진 상태가 됐다.


흥미로운 것은 Ancient One이 이것을 하기 전에 스트레인지에게 물어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 알고리즘이 작동 중일 때는 알고리즘을 해체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 그래서 먼저 해체했다.


이것이 치유가 일어나는 방식의 첫 번째 예시다. 기존 구조가 충분히 흔들려야 새 구조가 들어올 수 있다. 그리고 그 흔들림은 종종 외부에서, 동의 없이 온다.


Scene 3 — 카마르-타지에서의 학습: 앵커 노드의 전환

스트레인지가 카마르-타지에서 마법을 배우는 과정을 천재성으로 읽으면 단순해진다. 이것은 앵커 노드의 전환이다.


스트레인지의 기존 앵커 노드를 구성하는 것들 — 빠른 학습 능력, 패턴 인식, 세부에 대한 집착, 지식에 대한 갈망 — 이 그대로 새 영역으로 이식된다. 앵커 노드가 바뀐 것이 아니라, 앵커 노드가 새로운 도메인을 찾은 것이다. 외과 의사가 마스터 오브 더 미스틱 아츠로 전환되는 것은 변신이 아니라 재배치다. 같은 회로가 다른 출력을 내는 것.


그런데 여기서 분열이 생긴다. 스트레인지는 마법을 배우면서도 여전히 손을 고치려 한다. 새 앵커 노드와 이전 앵커 노드가 병렬로 작동하고 있다. 이 둘이 분리된 상태로 유지되는 동안, 그는 완전히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다.


이 분열이 해소되는 것이 Ancient One의 죽음 이후다.


Ancient One이 죽어가면서 스트레인지에게 말한다. "당신은 훌륭한 외과 의사였어요. 하지만 이제 당신은 더 많은 것이 될 수 있어요."


이 말이 앵커 노드 전환의 공식 선언이다. 이전 것을 버리라는 말이 아니다. 이전 것이 새것의 기반이 됐다는 말이다. 외과 의사의 정밀함,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 불가능해 보이는 것에 도전하는 것 — 이것들이 마법사의 기반이 됐다. 앵커 노드가 확장된 것이다. 대체된 것이 아니라.


이것이 케실리어스와의 첫 번째 차이다. 케실리어스는 앵커 노드를 확장하지 않았다. 가족을 잃은 것이 앵커 노드를 파괴했고, 그 파괴된 자리를 도르마무로 채우려 했다. 스트레인지는 — 더디게, 저항하면서도 — 앵커 노드가 재구성되는 것을 허용했다.


Scene 4 — Kaecilius가 선택한 것

케실리어스(매즈 미켈슨 분)는 이 영화의 빌런이지만, 단순한 악인이 아니다.


그에게는 잃은 것이 있다. 가족. 그 상실이 처리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다. 그는 Ancient One에게서 마법을 배우면서도 그 안에서 답을 찾지 못한다.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잃은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 받아들이는 대신, 그 전제 자체를 제거하려 한다.


도르마무를 찾아간다. 다크 디멘션에는 시간이 없다. 죽음이 없다. 지구가 다크 디멘션에 흡수되면, 잃은 것들을 잃지 않아도 되는 세계가 된다.


보류 큐의 트랜잭션이 직접 처리되지 않을 때 우회 경로를 찾는다. 케실리어스가 한 것이 정확히 그것이다. 미완료 트랜잭션 — 상실, 죽음, 되돌릴 수 없음 — 을 처리하는 대신, 그 트랜잭션이 발생하지 않는 시스템으로 전환하려 했다.


그런데 도르마무가 케실리어스를 찾아온 것이 아니다. 그가 먼저 도르마무를 찾았다. 보류 큐가 외부 증폭기를 찾아간 것이다. 도르마무는 케실리어스의 욕망을 만들지 않았다. 그것을 활용했을 뿐이다.


이것이 이 시리즈 전체에서 반복되는 패턴이다. 외부의 힘은 내부의 보류 큐를 만들지 않는다. 내부의 보류 큐가 외부의 힘을 찾아간다. 다음 편에서 완다가 Darkhold를 찾는 것도 정확히 같은 구조다.


케실리어스와 스트레인지를 나란히 놓으면 하나의 대비가 선명해진다.


두 사람 모두 잃은 것이 있다. 케실리어스는 가족. 스트레인지는 손, 그리고 그 손이 표상하는 정체성 전체. 두 사람 모두 그 앞에서 보류 큐가 생겼다. 처리하지 못한 것이 쌓였다. 차이는 그것을 향해 취한 방향이다.


케실리어스는 상실이 발생하지 않는 시스템을 찾았다. 잃어버린 것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 되는 세계. 이것은 Committed를 거부하는 것이다. 일어난 것이 일어나지 않은 것이 되기를 원하는 것.


결말에서 케실리어스는 Mindless Ones — 의식 없는 존재들 — 이 된다. 죽지 않는다. 하지만 살아있지도 않다. 타임스탬프 없이 존재한다는 것의 실제 모습이다. 과거가 없고, 서사가 없고, 끝나는 것도 없다. 영원하지만 공허하다.


Scene 5 — 미러 디멘션 안에서

미러 디멘션(Mirror Dimension)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Ancient One이 케실리어스와 싸우는 장면이다.


미러 디멘션은 현실과 겹쳐있다. 건물이 있고 도시가 있다. 그런데 그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 현실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현실처럼 보이지만 현실이 아닌 레이어. 마스터들이 훈련에 쓰고, 전투에 끌어들이는 공간이다.


전의식(preconscious)이 이렇게 생겼다.


무의식도 아니고 의식도 아닌 중간 레이어. 거기 있는 것들은 의식에 올라올 수 있다. 조건이 맞으면.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은 거기 있다. 현실 레이어와 겹쳐있지만 현실에 직접 영향을 주지 않는 채로.


마스터들이 미러 디멘션을 훈련에 사용하는 것이 흥미롭다. 현실에 영향을 주지 않고 연습할 수 있는 공간. 새로운 것을 학습할 때도 이런 공간이 필요하다. 기존 컨센서스 알고리즘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새 패턴을 시험해 볼 수 있는 레이어.


스트레인지가 빠르게 성장하는 것도 이 맥락에서 읽힌다. 전의식 레이어에서 먼저 작동 방식을 학습하고, 그것이 충분히 강화됐을 때 현실 레이어로 넘어온다.


케실리어스가 미러 디멘션을 이용하는 방식은 다르다. 현실 레이어를 건드리지 않은 채로 전의식 레이어에서 구조를 바꿔놓으려 한다. 의식이 알아채기 전에. 미러 디멘션 안에서 생텀을 무너뜨리는 것이 — 현실의 방어막을 전의식에서 먼저 해체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전략에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 전의식 레이어의 변화는 결국 현실 레이어로 올라온다. 억압한다고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미러 디멘션 안에서 무너뜨린 것은 결국 밖에서도 무너진다.


Scene 6 — 홍콩 결전: 시간을 거슬러

이 영화에서 가장 조용하게 지나가지만, 가장 정교한 장면이다.


홍콩 생텀이 무너진다. 웡(베네딕트 웡 분)이 죽는다. 도르마무가 지구를 삼키기 시작한다. 스트레인지는 Eye of Agamotto를 꺼낸다. 그리고 시간을 거슬러 돌린다.


웡이 살아난다. 생텀이 복원된다. 그런데 케실리어스와 신도들은 시간이 역행하는 동안에도 그것을 인식한다. 그들이 먼저 빠져나오려 한다. 스트레인지는 그것을 막으면서 동시에 시간을 계속 역행시킨다.


이 장면이 기억 재공고화(memory reconsolidation)의 구조와 닮아있다[2].


이미 일어난 것은 블록에 기록된다. Committed 상태가 된다. 그런데 특정 조건에서 — 충분히 강한 자극, 혹은 충분한 안전감, 혹은 새로운 맥락 — 그 기록이 다시 열린다. 불안정한 상태가 된다. 그 순간이 재편집의 창이다. 닫히기 전에 새로운 감정 태그가 붙으면, 같은 사건이 다른 방식으로 재기록된다.


스트레인지가 시간을 거슬러 홍콩을 복원한 것은 이미 일어난 것을 없었던 것으로 만든 것이 아니다. 그 시퀀스가 다시 열린 상태에서, 결과를 다르게 만든 것이다. 원장이 삭제된 것이 아니라 재기록된 것이다.


여기서 케실리어스의 반응이 중요하다. 시간이 역행하는 것을 인식하고 저항한다. 재공고화의 창이 열렸을 때 기존 기록을 유지하려는 저항이다. 처리되지 않은 보류 큐는 재편집의 기회가 와도 그것을 막으려 한다. 재편집은 — Committed를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일어난 것이 일어난 것임을 인정하는 것.


케실리어스가 저항한 것은 그 인정이었다. 스트레인지가 그 저항을 무력화한 것은 — 재편집의 창을 충분히 오래 열어두었기 때문이다.


Scene 7 — "나는 거래하러 왔다"

다크 디멘션. 스트레인지가 들어간다. 도르마무(베네딕트 컴버배치 목소리)가 나타난다.


"Dormammu. I've come to bargain."


죽는다. 다시 나타난다. 같은 말을 한다. 또 죽는다.


이 루프가 왜 가능한가. 다크 디멘션은 시간이 없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시간 없는 공간에 스트레인지가 시간을 가져왔다. 루프가 만들어졌다. 도르마무는 처음에 이것이 환상인 줄 안다. 환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패닉이 온다.


왜 패닉인가.


타임스탬프 없이 존재하던 것에게 타임스탬프가 강제 부여된 것이다. 이번이 있고 저번이 생겼다. 반복이 생겼다. 시간이 없이 존재해 온 것에게 그것은 고통이다.


보류 큐 안에 있는 트랜잭션들도 타임스탬프가 없다. 30년 전의 것이어도 현재시제로 실행을 시도한다. Committed가 일어나는 순간 — 타임스탬프가 붙는다. 과거가 된다. 실행 시도가 멈춘다.


스트레인지가 루프로 한 것이 정확히 그것이다. 타임스탬프 없는 존재를 향해 강제로 시간을 부여했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스트레인지에 대해 중요한 것이 하나 더 있다.


스트레인지는 루프 안에서 수없이 죽는다. 처음 몇 번은 공포였을 것이다. 그런데 계속 죽다 보면 — 죽음이 Committed 되지 않는다. 이번 죽음도, 저번 죽음도, 타임스탬프가 없다. 죽음이 루프 안에서 반복되면서 오히려 그 무게를 잃는다. 도르마무에게 타임스탬프를 강제하기 위해, 스트레인지는 자신의 죽음에서 타임스탬프를 제거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죽음을 Committed 불가 상태로 만든 것.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 스트레인지가 이미 한 번 모든 것을 잃어봤기 때문이다. 손을, 정체성을, 미래를. 그리고 그 잃음이 결국 Committed 됐다. 잃는 것에 대한 공포가 재조정된 것이다.


결말에서 도르마무는 소멸하지 않는다. 다크 디멘션에 여전히 있다. 달라진 것은 하나다. 이 우주에 대한 실행 시도를 멈췄다는 것. 과거시제가 됐다는 것. 그것이 Committed의 모습이다.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연기한 것

이 영화에서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보여주는 것이 있다.


오만함이 아니다. 오만함 안에 있는 취약함이다. 그리고 그 취약함을 오만함으로 덮어두려는 것.


사고 이후 재활을 받는 장면에서 그는 거의 울지 않는다. 크게 분노하지 않는다. 그런데 무언가가 계속 표면을 미는 것이 보인다. 치료사에게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것, 크리스틴을 밀어내는 것, 카마르-타지로 향하는 것 — 이 모든 것이 보류 큐가 실행 기질을 찾는 과정이다. 폭발이 아니라 압력이다.


카마르-타지에서의 성장 장면들도 그 맥락에서 다르게 읽힌다. 스트레인지는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앵커 노드가 새 도메인을 찾아서 미친 듯이 달리고 있는 것. 외과 의사였을 때도 그랬던 것처럼.


오펜하이머에서 킬리언 머피가 표면 아래의 압력을 보여줬다면, 컴버배치가 여기서 보여준 것은 압력이 방향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폭발 직전의 상태가 아니라 — 방향을 바꾸는 중인 상태. 그 미묘한 차이가 이 영화의 스트레인지를 단순한 오만한 천재 이상으로 만든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왜 포크를 거부했는가

일곱 장면을 거치면서 하나의 패턴이 보인다.


스트레인지는 한 번도 더 강해서 이긴 적이 없다. 케실리어스에게도 밀렸다. 도르마무 앞에서는 반복해서 죽었다. 그런데 매번 계산으로 국면을 바꿨다. 상대방이 작동하는 구조를 읽고, 그 구조 안에서 자신이 설계할 수 있는 조건을 찾았다.


이것이 이 시리즈의 첫 번째 답이다.


처리 불가능한 것 앞에서 스트레인지가 선택한 것은 — 포크가 아니었다. 다른 현실을 만들지 않았다. 다른 자아를 생성하지 않았다. 일어난 것을 없었던 것으로 만들려 하지 않았다.


그는 기존 앵커 노드가 무너지는 것을 결국 받아들였다. 손이 예전 같지 않을 것이라는 것. 최고 외과 의사의 정체성이 과거가 됐다는 것. 그 Committed가 일어났기 때문에, 새 앵커 노드가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케실리어스와의 차이가 여기서 나온다. 케실리어스는 Committed를 거부했다. 일어난 것이 일어나지 않기를 원했다. 그 거부가 도르마무를 향하게 했다. 스트레인지는 — 더디게, 저항하면서도 — 결국 Committed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위에서 새 구조를 만들었다.


역설적이게도, Ancient One이 스트레인지의 알고리즘을 강제로 해체한 것이 — 그가 더 건강한 방향으로 재구성되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기존 알고리즘이 온전히 남아있었다면, 포크를 생성하려는 시도가 일어났을 수도 있다. 이미 한번 해체된 알고리즘 위에서는 — 포크를 띄울 기반 자체가 흔들려 있었다.


이것이 포크의 거부가 의지의 결과가 아닌 이유다. 스트레인지가 포크를 거부한 것이 아니라, 포크를 생성할 조건이 제거됐던 것이다. Ancient One이 그것을 알고 그렇게 했는지는 이 영화에서 답하지 않는다.


같은 영화 안에서 세 가지 경로가 모두 그려졌다. Ancient One의 방식 — 알고리즘 해체를 통한 재구성. 케실리어스의 방식 — 보류 큐의 외부 위탁. 스트레인지의 방식 — 느린 Committed와 앵커 노드의 재배치.


다음 편에서는 반대의 경우를 다룬다.


완다 맥시모프는 포크를 거부하지 않는다. 포크를 외부로 투사한다. 그리고 그 투사의 도구가 Darkhold다. Darkhold는 보류 큐를 만들지 않는다. 이미 있는 보류 큐의 컨센서스 알고리즘 제동 장치를 제거한다. 그것이 대혼돈이다.




이 글은 브런치 "개발자식 전환" 브런치북의 무의식 편과 연결됩니다.

무의식 1부: 어둠 속에서 증식하는 보류 트랜잭션들

무의식 2부: 트랜잭션 처리 완료라는 것에 대하여




참고 문헌

[1] Hebb, D.O. (1949). The Organization of Behavior. — "함께 발화하는 뉴런은 함께 연결된다"는 헤비안 학습 원칙의 원전. 기존 신경 연결의 재조정을 통한 새 패턴 학습의 메커니즘

[2] Nader, K., Schafe, G.E., & LeDoux, J.E. (2000). Fear memories require protein synthesis in the amygdala for reconsolidation after retrieval. Nature, 406, 722–726. — 기억이 인출될 때마다 불안정 상태가 되어 재편집 가능해진다는 기억 재공고화 연구의 핵심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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