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프레데릭 아미엘 <아미엘 인생일기>, 은유 <해방의 밤>
읽고 싶은 책만 읽는 나를 위해 나 스스로 내린 "독서처방전"에 따라 새벽독서를 한다.
한 시간 넘게 읽어야 할 책을 먼저 읽는다. 그러면 내게 주는 상으로 20-30분 정도 읽고 싶은 책을 읽는다.
그렇게 읽고 나면 아침 글 <독서처방과 밑줄프로젝트> 글을 쓰고 초등 5학년 막내의 등교준비에 허덕여야 했다. 출근 전 주차장에서 맞춤법 검사를 허겁지겁하고 최종퇴고를 못해 어이없는 오타도 생기니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시간이 버거워서 독서로 충만했던 영혼에 금이 가는 게 느껴졌다. 결국 이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며칠 전부터 6시 독서를 5시 독서로 바꿨다. 잠을 줄였다. 졸면서라도 읽는다. 그저 이 시간이 좋아서....
작가이자 철학 교수였던 앙리 프레데릭 아미엘의 <아미엘 인생일기>를 읽는다.
<아미엘의 인생일기>는 그의 철학적 사고를 은밀히 들여다보는 시간이다.
그 안에 그의 문학적 시심(詩心)이 툭하니 던져져 있는 마지막 문장이 오늘 아침 나를 흔든다.
"나는 속이는 것을 싫어하고, 속는 것도 증오한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이 두 가지의 버릇없는 하인, 이 두 가지의 냉혹한 파수꾼을 상대로 사랑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단 말인가! 또한 연민과 방심으로 얼마나 많은 불꽃이 사그라지고, 얼마나 많은 불똥이 사라졌던가! 어쩔 수 없다. 죽을 만큼 울적하다. 나는 그만 입을 다물어버린다."
나는 왜 마지막 이 문장이 시처럼 다가올까?
"나는 그만 입을 다물어 버린다". "나는 그만 입을 다물어 버린다" 내 입술로 아미엘을 읊는 새벽.
내 마음이 일렁인다.
작가의 고뇌가 입술에 봉인되는 순간과 결연히 펜을 내려놓은 풍경이 흑백 영화의 필름처럼 내 눈앞에 그려진다.
워... 워... 감성을 추스르고 이제 "이성", "이지"로 넘어간다.
"뭔가 하려면 자신을 한정해야 한다. 활동을 추진하려면 자신을 특수화해야 한다. 권위를 얻으려면 형태를 띠어야 한다. 자신이 기울어 있는 쪽에
이지(理智)의 추를 던지는 것이 좋지 않을까?"
(42면)
이 문장은 말한다. 뭔가 하기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기에 자신을 한정해야 한다고. 특정한 방향성을 가지고 자신을 특수화해야 한다고. 그래야 뚜렷한 정체성과 입장을 가진 "권위"가 되는 것이라고. 그러기 위해 자신이 기울어 있는 쪽에 이지(理智-이성과 지혜)의 추를 던져야 한다고!
지금 나의 삶은 어느 쪽으로 기울어있는지 생각해 본다. 내가 이루려는 것, 내가 간절히 원하는 것.
그것을 위해 나는 충분히 선택과 집중을 하고 있는지. 나 자신을 한정해 그것에 몰입하고 있는지.
글을 쓰는 사람, 그리는 사람,
삶의 시련을 삶의 수련으로 만드는 시간을 열어주는 사람,
현실의 장벽에 발목 잡히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하는 그런 사람들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나. 그런 내가 되기 위한 준비를, 첫발을 제대로 내딛고 있는지 스스로 묻는다.
그 공간에 어울리는 사람.
그 문화에 어울리는 사람.
그 소명에 어울리는 사람.
작가가 되고, 공유공간&독립서점의 안내자가 되는 나의 꿈!!!
은유 <해방의 밤-100년 동안 쓸 마음>을 보며 한껏 마음이 들떴다. 그 이유는 내가 너무 사랑하는 한정원 작가의 <시와 산책>이라는 책이 나와서다.
이 책은 내가 독립서점 책장 한 칸을 빌려서 처음으로 추천해서 판매해 본 책중에 하나다. 그만큼 애정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선물하는 책이다.
나중에 나만의 공간이 생긴다면 당연 그 1순위에 이 책이 있을 것이다.
어찌나 아끼는 책인지 때 탈까 봐 책표지도 싸뒀던 터다.
은유 작가와 내가 밑줄 친 부분이 같다.
은유 작가와 한정원 작가와 내가 한 문장 안에서 만난다. 쓸쓸한 문장이지만 행복한 순간이다.
"삶을 꺾이게 하는 것은 그보다는 '사건(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주로 나쁜 사건을 겪는 순간이라고. 그래서일까. 나는 덜 늙고서도 늙었다고 느낄 때가 있다. 보내지 않으려고 아무것도 들이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고. 몸의 관절이 오래 쓰여 닳듯, 마음도 닳는다. 그러니 '100세 인생'은 무참한 말일뿐이다. 사람에게는 100년 동안이나 쓸 마음이 없다". (121면/<시의 산책 67면>)
우리는 참 많이 마음을 쓰고 산다.
그 마음이 때론 어긋나 서로를 상처 입히기도 하고 나 스스로를 상처 입히기도 한다.
그런데 100년 동안 쓸 마음이라니...
그 마음 없이 헛헛함으로 수십 년을 살아가야 할지도 모르는 우리의 노년을 생각하니 쓸쓸하다.
말라버린 밀랍처럼, 발끝에 밟히며 스스로의 존재를 상기시키는 겨울 낙엽처럼 내 마음이 바스락거린다.
오늘은 "100년 동안 쓸 마음"에 대해서 생각하며 다섯 시간 동안 설거지를 하게 될 것 같다.
이럴 때는 내가 단순한 허드렛일을 하는 게 참 좋다.
손은 일하고 머리는 생각하고 마음은 깊어진다.
삶이 뽀득해진다.
참고> 앙리 프레데릭 아미엘 <아미엘 인생일기>. 동서문화사 2006. 1쇄
참고> 은유 <해방의 밤> 2024 2쇄
참고> 한정원 <시와산책>
(앗... 방금 다른 작가님들이 제 글 <독서처방과 밑줄프로젝트>가 "요즘 뜨는 브런치북" 순위에 올랐다고 알려주셨어요. 아... 뭐죠... 뭐죠... 저 너무 두근거려요. 그저 읽고 쓴 것뿐인데 14일 만에 이런 기적이 생겼네요. 잠을 줄여가면서 돌덩이 같은 몸을 일으키면서도 제 자신과의 약속, 그리고 제 글을 기다렸다 읽어주시는 40여 명의 글벗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오늘도 그저 읽고 썼을 뿐인데... 감사합니다. 더 열심히 더 성실히 성장하는 모습 보여드릴게요! 뭔가 제 꿈을 이야기하는 글을 쓰다 이 소식을 들으니 꿈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가는 것 같아서 벅차요. 여러분이 그 증거가 되어주는 것 같아서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