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프레데릭 아미엘 <아미엘 인생일기>, 은유 <해방의 밤>
어제 <요즘 뜨는 브런치북> 순위에 올랐다는 기쁜 소식으로 하루를 들떠서 보냈다. 더 열심히 해야지 마음먹었는데 오늘 새벽기상에 어찌 이리 몸이 찌뿌둥한지. 날이 흐리면 몸이 쑤신다는 어른들의 말처럼 내 몸의 관절도 늙긴 늙었나 보다.
3월 중순인데 창밖에는 흰 눈이 쌓였다. 사실 눈 온지도 몰랐다. 창밖으로 들리는 낙수 소리에 비가 오나 했다.
새벽독서가 끝나고 고개를 돌리니 커튼 틈으로 눈 쌓인 옆집 지붕이 보인다.
눈이야기는 그만하고 집중....!
자 오늘도 얼른 <아미엘의 인생일기>를 같이 훔쳐보자.
어제까지는 비교적 읽어야 할 책으로 선정된 책이지만 재미있었는데 오늘 아미엘의 일기는 너무 철학적이어서 졸렸다. 뭔 소리인지 모르겠으니 같은 문장 계속 읽다가 머릿속 조명이 깜빡깜빡....
그래도 포기하지 말자. 독서초보자, 독린이여... (독서+어린이)
오늘 읽는 첫 부분에 습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바로 밑줄 쫙!
"습관은 살아있는 격언이 본능이 되어 체화된 것이다. 격언을 고치는 것은 아무 소용없는 일이다. 책의 표제만 바꾸는 일이다. 새로운 습관을 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삶의 실체에 파고드는 것이다. 삶은 바로 습관이 짜내는 옷감과 같은 것이다.". (44면)
삶은 습관이 짜내는 옷감이라니... 그렇다면 지금 나는 어떤 습관으로 짜인 옷을 입고 사는 거지? 고민하게 된다.
중요한 일이 아니면 뒤로 미루고 누워만 있으려 했다. 일하고 오면 몸도 마음도 지쳐서 그저 누워서 방전된 내 체력을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기장판을 충전기 삼아 나를 충전하며 살았다. 휴대폰을 내 보조배터리처럼 손에 달고 살았다. 그랬더니 내 삶이 고루하고 비참했다. 재미도 의미도 없었다.
시아버님의 과도한 관심, 과도한 요구, 과도한 감정표현으로 20년간 깊어진 나의 우울증의 끝은 그저 하루하루 눈뜨면 어서 밤이 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연명하는 삶이었다. 암막커튼을 치고 방안에만 있었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어느 날 각자의 방에서 나오지 않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의 우울이 전염되는 것 같아 덜컥 무서웠다.
사고로 거동이 불편한 시어머님을 케어하기 위해 취득한 요양보호사 자격증들 던져버리고 나는 대신 설거지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집을 뛰쳐나왔다. 못된 며느리라고 손가락질받을까 겁났다. 하지만 나는 며느리가 아닌 나로 살고 싶었다.
낮에 정기적으로 밖으로 나가는 습관을 들였다. 눕지 않고 걷기. 그러다 발견한 동네책방. 그곳에서 알게 된 황보람 작가님과 글쓰기 모임. 그러다 1월 브런치스토리에서 <엄마의 유산>을 알게 되어 매일 글 쓰는 나로 변화된 지금. 불과 1년 전의 나와는... 특히 석 달 전의 나와는 많은 게 변했다.
매일 새벽독서를 하는 다른 작가들을 보면서 그저 부럽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이넷 키우고 주말에 시부모님 챙기고, 오전 오후 아르바이트하며 사는 것도 고단한데 새벽독서라니 언감생심이었다.
하지만 새벽에 독서를 하고 출근한다는 너나들이 작가의 말이 내 귀에, 마음에 꽂혔다.
새벽독서, 같이하면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시작된 새벽 5시 독서시간. 다행히 작심삼일이 지나 어느덧 15일 차에 접어들었다.
사실 수면시간을 두 시간 넘게 줄인다는 건 고통스럽다.
아미엘의 말처럼 새로운 습관 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나를 살리는 새로운 습관.
나는 그것을 매일 새벽 읽고 글을 쓰는 것으로 정했다.
지금 나한테 주어진 환경 속에서 나를 성장시킬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 경제적, 공간적 제한 없이 시도할 수 있는, 나만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나를 키울 수 있는 시간. 그것이 새벽독서와 글쓰기라는 판단이었다.
그저 내 시간, 의지, 끈기만 있으면 시작할 수 있다.
내가 나를 성장시키는 습관, 그 습관으로 한 올 한 올 짜인 실을 가지고 땅에서 기던 거미가 건너편의 나무로 줄을 던져 날아오르듯. 그렇게 나의 이지(理智)의 영토, 영혼의 영토를 넓히려 한다.
아미엘도 새벽시간에 대한 찬양을 한다.
"하루하루의 새벽은 생활과의 새로운 계약에 서명한다. 아침 공기는 혈관과 골수 속에 새로운 밝은 기운을 불어넣는다. 그날그날은 인생의 현미경적 반복이다.(중략) 아침은 모든 것이 유년시절처럼 상쾌하고 편안하며 가볍다. 대기와 마찬가지로 정신적 진리도 한결 더 투명해진다." (면 50)
"새벽은 계획, 의지, 태어나고 있는 행동의 시각이다. 자연을 키우는 액즙이 정신 속에 퍼져 그것을 살리는 것처럼, 침묵과 '창공의 쓸쓸한 적막'은 정신을 안으로 집중시킨다.(중략) 시인이여, 노래하라. 자연은 이미 부활의 노래를 부르고 있지 않은가!" (면 51)
새벽시간의 충만함을 공감하며 아미엘이 말한 "사유"에 대해 되돌아가 이야기해 본다.
"너의 사유를 수첩과 펜 속에만 가둬두지 말고, 몸에 지니고 표현하며 걸어 다녀라. 너의 말을 문자로 옮기지 말고 말로 바꾸어라." (46면)
책을 읽으며 우리는 좋은 문장, 그것에서 떠오르는 영감이나 사유를 찾을 때가 있다. 그럴 땐 이렇게 문장에 줄을 치고 내 생각을 덧대어 적는다. 때론 누구는 문장을 베껴 쓰는 필사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밑줄 친 문장이나 휴대폰에 저장해 둔 문장이 내 삶으로 스며들어 나를 변화시키는 일은 극히 드물다.
나 역시 휴대폰에 저장해 둔 명언, 문장 등이 수백 장이지만 그걸 시간 내서 다시 들여다보지는 않는 것 같다. 그저 모았다. 그렇게 좋은 글과 문장을 모으면 그것이 내 것이 되는 줄 알았다. 그럼에도 내 삶이 종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은 그 사유를 내 것으로 체화하지 못했다는 말일 것이다.
아미엘은 170년 전에 쓰인 자신의 일기로 내게 이 말을 건넨다.
너의 사유를 네 것으로 만들어가서 지금 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라고. 그저 밑줄 긋고 쓰는 것에 끝내지 말고 내 행동으로 바꾸라고. 그래서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이 되라고 말이다.
읽어야 할 책 <아미엘의 인생일기>에서 사유에 그칠 것이 아니라 행동이 변해야 내 삶이 변한다는 진리 속의 진리를 다시 되새긴다.
이제 읽고 싶은 책, 은유 <해방의 밤-레지스탕스의 글쓰기>를 읽어본다.
어제까지는 밑줄 친 부분을 독서 도중에 사진으로 찍고 그것 위주로 떠오르는 대로 글을 썼는데 오늘부터는 메모지에 키워드를 적고 추려서 써보기로 한다.
"레지스탕스" (La Résistance)는 "저항"이라는 뜻을 가진 프랑스어. 과연 은유 작가가 말하는 레지스탕스의 글쓰기는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은유 작가는 산후우울증이 생긴 글 쓰는 지인을 위해 '위로의 사절단'을 파견한다.
바로 열여섯 명의 여성 작가가 엄마 됨에 관해 쓴 글을 모은 <분노와 애정>이라는 책이다.
그 책에는 고립된 육아 환경에서 오는 '말에 대한 갈증' '아이와 유배된 일상' ' 삶이 망가지는 기분' '제정신이 아닌 비참하고 화난 여자' '속 좁은 괴물' 같은 모성애라는 명목으로 숨겨야 했던 진짜 엄마의 속마음이 극사실주의 증언처럼 쓰여있다고 한다.
작가는 육아서 어디에도 없던, 아니 쉬쉬하고 덮어두려던 이런 감정을 언어, 글이라는 출구로 배출시킨 그녀들처럼 지인에게 레지스탕스 글쓰기를 하라고 말한다. 그래서 <분노와 애정>을 그녀의 "인식의 베개"로 삼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작가는 제인 라자르 작가의 말을 인용한다.
"'애들을 위해서라면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아. (...) 하지만 애는 내 삶을 망가뜨려.'(...) 이 두문장이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일관성이 있었다. 우리가 양가성을 더욱 잘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양가성을 받아들이는 능력, 그것이 바로 모성애가 아닐까?" (126면)
은유 작가는 글을 쓰는 여성에게 좋은 엄마와 쓰는 엄마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며 공존 가능하다고 말해주고 싶어 한다. 에이드리엔 리치 작가의 첫째 아이가 그녀에게 했다는 이 말을 인용하며.
"엄마는 늘 우리를 사랑해야 한다고 느끼셨던 것 같아요. 하지만 한시도 빠짐없이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관계란 없어요." (129면).
(은유 작가의 책 본문에 "없어요" 이 부분이 실제 진한 볼드체로 인쇄되어 있다. 그만큼 강조하고 싶었던 이야기인 것 같다. 그러니 미안한 마음은 털어내라고)
새벽 5시에서 8시 30분까지 나는 온전히 내 시간을 갖기 위해 노력한다.
8시쯤 잠에서 깬 아이는 혼자 옷을 입고 영어 숙제를 한다.
챙겨주지 못하는 미안함이 나라고 왜 없겠는가. 하지만 12살 아이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혼자 잘해나간다.
글 마무리를 위해 물통에 얼른 물을 채워주고 책상에 다시 앉는데 막내는 조급해하지 않고 나를 기다려준다.
엄마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기특하다.
아이는 엄마가 잠을 줄이고 책상에 앉아있는 마음을 며칠 전 대화를 통해 알고 있다.
"엄마, 잠을 너무 조금 자는 거 아니에요? 피곤하지 않아요?"
"응, 맞아. 피곤해. 엄청 피곤한데 엄~청~ 재미있어. 하루의 시작부터 뭔가 해냈다는 느낌이 좋아"
새벽독서 15일 차.
나는 오늘도 해냈다.
새벽독서 습관으로 짜낸 한 올의 실을 내 삶에 따뜻하게 걸쳤다.
참고> 앙리 프레데릭 아미엘 <아미엘 인생일기>. 동서문화사 2006. 1쇄
참고> 은유 <해방의 밤> 2024 2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