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 <아미엘 인생일기>, 은유 <해방의 밤>
나의 독서처방전에 새로운 책이 추가되었다.
읽어야 할 책,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이다. 그 배경은 다음과 같다.
어제 30여 년이 넘은 나의 유일한 친구와 3주간 <엄마의 유산>을 다 읽었다.
이 책은 브런치스토리에서 발견하고 "위대한 시간"이라는 오프라인 모임에 참석하게 되면서 인연이 시작되었다. 내가 먼저 책을 읽고 사춘기에 접어든 고등학교, 중학교 두 딸이 있는 이 친구가 떠올라 선물했다.
우리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스스로도 성장하고 아이들한테도 계승할 가치를 알려주자!
500페이지의 분량이라 친구가 혼자 읽기 버거워할 것 같아서 우리는 매주 화요일 오전에 두 시간 동안 페이스톡 영상전화를 켜 놓고 독서시간을 가졌다. (거리와 시간의 제약으로 그동안은 하고 싶어도 못한다. 아쉽다. 이렇게 생각했는데 내가 요즘 온라인 줌으로 글쓰기 회의를 하거나 강의를 들으며 공간을 초월해 뭔가를 해나갈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고 시작한 일이었다. 이 얼마나 감사한지!!!)
같은 책을 읽고 같은 문장으로 서로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시간은 참으로 좋았다.
이 친구도 나처럼 책을 정말 좋아하는데 그녀는 읽는 걸 좋아하고 나는 모으는걸 더 좋아하는 게 차이점이라면 큰 차이점이다. 간간이 서로에게 책을 선물하긴 했지만 멀리 떨어져서 사는 이유로, 아이들 키우고 각자의 삶의 시련을 견디느라 우리의 연락과 만남은 오래된 도로의 차선처럼 뚝뚝 끊어지고 흐릿했었다.
그런데 "책"을 통해 우리는 서로에게 닿는 비포장 도로를 고속도로로 다시 연결했다.
<엄마의 유산>을 다 읽었으니 책으로의 여행에 새로운 연료가 필요했고 우리는 각자의 책장 속 책을 한 권씩 권했다. 그러다 같은 책이 있다는 것에, 우리가 비슷한 결이라는 것에 기뻐했다. 그 책이 바로 핸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병렬독서 독서초보자답게 나는 초반에 읽다 덮어 둔 <월든>을 그녀와 다시 읽기로 다짐했다.
내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를 처음 알게 된 건 우연히 발견한 <매일 읽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였다.
초록초록한 식물과 꽃이 그려진 양장본에 일차 넋이 나가고 내가 좋아하는 1800년대의 일기 모음이라니 한번 더 넋이 나가고 무엇보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섬세하게 써 내려간 그의 문장에 완전 넋다운이 됐다.
그래서 이 책은 머리맡에 두고 생각날 때마다 그 날짜에 맞는 페이지를 펴서 야금야금 읽었다.
그러다 보면 나는 어느새 170년을 거슬러 어느 한적한 호수의 오두막이 있는 숲 속을 "소로"와 함께 거니는 것 같았다.
<월든>을 펼치기 전에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1853년 3월 18-19일 일기를 읽어 본다. 170여 년 전의 오늘은 어땠을까?
"내 발소리가 방해될까 봐 가만히 걸음을 멈춘다. (중략) 잘 들어 보자! 아까 어떤 새소리가 들린 게 아닌가? 내가 콧김을 뿜어내는 소리였을 수도 있다. 아니, 다시 들린다. 울새다. 겨울은 이미 멀리 가버렸다." (99면)
우리는 어제도 눈이 내려서 봄인지 겨울인지 헷갈렸는데 그곳은 울새가 우는 봄이 오고 있었구나...
우선 "헨리 데이비드 소로"에 대해 알아야 그의 글이 더 깊게 이해될 테니 설명을 먼저 덧붙인다.
대표작 《월든 - 숲 속의 생활》 (Walden,1854년)은 월든 호숫가에 손수 오두막을 짓고 2년 2개월에 걸친 숲에서 혼자 보낸 기록을 정리한 것이며, 그의 일생은 물욕과 인습의 사회 및 국가에 항거해서 자연과 인생의 진실에 관한 파악에 바 쳐진 과감하고 성스러운 실험의 연속이었다.
노예제도와 멕시코 전쟁에 항의하기 위해 홀로 월든의 숲에서 작은 오두막을 짓고 살기도 했으며, 인두세 납부 거부로 투옥도 당했고, 후에는 노예 해방 운동에 헌신하였다. 그의 그 러한 정신은 '시민 불복종'으로 이어진 마하트 마 간디의 인도독립운동과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시민권 운동, 레프 톨스토이 등에 사상적 영향을 주었다.
최근에는 소로가 미니멀리즘의 선구자로 해석되기도 한다. 특히 <월든>에서 '경제적인 삶'부분에서 그의 구체적인 삶의 형태를 예로 든다.
소로는 "인간의 주요 목적은 무엇이고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수단은 무엇인지"(면 14)를 고민한다.
그 고민 속에서 지금 처한 우리의 문제, 현시점을 살고 있는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있는 우리의 문제점을 다시 일깨운다.
마치 불쏘시개로 꺼져가는 불씨를 뒤적이며 잘 마른 나뭇가지 하나를 던져 넣듯이.
우리의 고민을 소멸시키지 말고 다시 불 붙여 나 자신을 다시 타오르게 하라는 듯이.
".... 일자리를 얻으려고, 빗더미에서 빠져나가려 애쓰느라 여러분은 늘 한계점에 다다라 있다. (중략) 여러분은 여전히 이 놋쇠에 (동전)에 묶인 채 살고 죽고 묻힌다. 항상 갚겠다고, 내일 갚겠다고, 약속하지만 끝내 갚지 못한 채 오늘 죽어 가는 것이다. " (면 12,13)
"여러분은 병들 때에 대비하여 무언가를 저축해 두기 위해, (중략) 무언가를 챙겨두려다가 오히려 몸을 병들게 하고 있다. (중략) 가장 나쁜 것은 자기가 자신의 노예 주인이 되는 경우다." (면 13)
이 말이 어찌나 나의 상황과 같은지 나는 강하게 명치를 얻어맞은 기분이다.
우리 가정의 형편에 맞지 않게 새로 건물을 올려서 턱없이 오른 은행이자를 갚아가는 고단한 삶이라니.
단층짜리 마당 있는 단출한 집을 부수고 허울 좋은 4층 건물 안에 살아가면서 나는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인가?
왜 이리 삶을 버겁게 나를 나 스스로 "노예"로 만들어버린 것일까.
이 모든 것들을 되돌릴 수 있다면 이런 선택은 다시 하지 않겠지.
그래서 아이들에게도 말했다. 인생에 있어서 허울만 좋은 큰 집, 좋은 차만 고집하지 않아도 네 삶은 더 평온하고 충만해질 거라고. 엄마가 겪어보니 알겠다고.
마음 같아서는 다 정리하고 내 바람대로 시골로 내려가 살고 싶지만 경기가 좋지 않으니 집을 정리하기도, 아직 어린 막내의 전학도, 큰 병원 갈 일이 많은 시부모님도 모두 풀지 못한 숙제처럼 남아있어 당분간의 나의 삶은 이렇게 고될 것만 같다.
병들 때를 대비해 저축하다가 오히려 몸을 병들게 하고 있다는 소로의 말은 우리 집의 과도한 보험료를 정리하는데 한 몫했다. 시어머님께서 갑작스러운 큰 사고로 편마비가 되면서 나와 우리 남편은 온 가족의 보험을 보험설계사가 권하는 대로 정말 "보험"이라는 말처럼 빵빵하게 빈틈없이 설계해서 다시 들었다.
그때는 어머님의 사고로 인해 우리의 정신이 거의 반 나가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무조건 대비하자는 마음으로 보험을 다 들었다. 아이넷과 우리 내외, 시부모님의 보험료까지 상상할 수 없는 금액을 5년간 납입했다.
그러다 최근에 원금 따지지 않고 보험을 최소한으로 남기고 전부 해지했다. 심지어 해약금도 없는 보험이 있어서 우리는 보험사만 좋은 일을 시켰다. 보험료를 내기 위해 나와 남편은 얼마나 더 많은 노동을 해야 했던 것일까? 이제라도 다행히 보험사의 "노예"에서 벗어난 것이 다행스럽다. 해지하지 않았으면 나는 남은 20년간 억 단위의 노예 생활을 해야 했을 것이다. 아찔하다.
<아미엘의 인생일기>도 짧게 읽어본다.
아미엘의 일기에서도 “노예”이야기가 나온다. 이게 무슨 일… 소로도 아미엘도 나의 명치를 마구 때리는 새벽.
“모든 순간에 가능한 한 자유로워지려면 질서를 부여하지 안
읍면 자유를 좀먹는다. 질서를 부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무질서가 우리를 노예로 만들고 있다. “
내 삶을 살아가는 질서, 원칙, 가치, 신념이 없다면 어쩔 수 없이 환경에 지배당하고 휘둘려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내 인생이 어쩌면 이런 혼돈, 무질서에서 비롯된 결과가 아닐까 생각한다.
지금이라도 나만의 질서를 정립해야 한다. 그래야 소로의 말처럼, 아미엘의 경고처럼 자기가 자신의 노예 주인이 되는 삶을 벗어날 수 있다.
“혼란스러움은 질질 끄는 것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당장 해야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 뭔가 아직 남은 일이 있는 동안은 아무것도 안 한 것이나 같다. 마무리하는 것이 으뜸이다. “. (면 57)
나의 큰 문제점 중에 하나가 완전하게 해내지 못할 것 같으면 시도하지 않는다 것에 있다. 집안 살림만 하더라도 완벽하게 정리가 되지 않을 것 같으면 그 시작을 계속 미룬다.
‘옷장을 정리하려면 최소한 반나절은 걸릴 거야. 근데 나는 그만큼의 시간이 없어. 시간 나는 날 하자.‘ 결국 그 언젠가로 그 일을 미룬다. 그래서 매번 어지러운 옷장을 보며 한숨짓는다.
뭔가 아직 남은 일이 있다는 찜찜함. 그 기분을 벗어나는 방법은 그 일을 마무리하는 것이겠지. 이제 정말 정신 좀 차리고 내일로 미루는 습관을 버려야겠다.
읽고 싶은 책 은유 작가의 <해방의 밤- 보라색 히비스커스>를 읽었는데 눈물샘 팡 터지는 걸 겨우 틀어 잠갔다.
작가는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의 <보라색 히비스커스>라는 소설을 이야기한다.
소설 속의 주인공 여자아이가 밖에서는 존경받고 집에서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의 학대, 심지어 신체적 훼손에도 저항 못하는 안타까운 모습이 그려진다.
우연히 고모집에 머물며 자신의 집과 전혀 다른 환경 속의 세상을 경험하게 된다. ‘바깥으로의 시선’이 생긴 것이다. 집을 벗어나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내면의 감각을 회복해 가는 주인공 캄빌리.
캄빌리의 오빠가 고모네 정원에서 꽃을 보고 말해요. "보라색 히비스커스가 있는지 몰랐어요." 소설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장으로 저는 꼽습니다. 존재가 눈뜨는 순간이죠. (면 139)
나는 "보라색 히비스커스가 있는지 몰랐어요."라는 이 말이 너무 마음이 아팠다. 소설을 안 읽었는데도 그 마음이 느껴졌다. 나도 내 안의 세상만 보며 살았던 시절이 떠올랐다. 세상이 온통 암흑인줄 알았다. 웅덩이를 피하려고 했는데 늪에 빠졌다. (내 유년시절과 결혼생활이 그랬다. 날 끝도 없이 빠지게 하는 웅덩이와 늪)
허우적거리면서도 필사적으로 빠져나와야겠다는 생각도 못했다.
그렇게 바보같이 살았다.
하지만 지금은, 지금의 나는 늪에서 땅으로 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내가 처음 손 뻗어 잡은 것은 "미움받을 용기"였다. 착한 며느리가 되기를 포기했다.
진정한 나를 찾으라고 "싯다르타"가 내게 손 내밀었다.
고단한 삶 속에서도 살아보라고 헤르만 헤세가 "삶은 견디는 기쁨"을 알려줬다.
극한의 고통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으면 살아갈 수 있노라고, 어떠한 태도를 취할지는 온전히 나의 자유에 달렸다고 빅터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가 알려줬다.
그리고 지금 단순하고 평온한 삶이 얼마나 가치 있고 위대한지 핸디 데이비드 소로가 "월든"으로 내게 알려주려 한다.
나의 변화의 시작은 "책"이었고, 그것은 내가 미처 보지 못한 '보라색 히비스커스'였다.
그런 세상이 있는지 모른 채 40여 년을 넘게 살았다.
지금은 책 속의 단어 하나 문장 하나가 나를 살리고 나를 키운다.
오늘 새벽에 나는 마음속 사전에 "책"의 다른 이름을 "보라색 히비스커스"라고 명명한다.
지금껏 몰랐지만 이제는 마음껏 그 보라색 향을 내 삶에서 느끼라고 말이다.
천천히 음미하고... 음미하는 삶을 살아보자고.
나라는 나약한 존재가 단단해지는 순간, 새벽독서 시간을 갖게됨에 감사하며.
참고> <매일 읽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 니케북스. 2022 1쇄
참고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 열림원 2022. 10쇄
참고> <아미엘 인생일기> 동서문화사 2006. 1쇄
참고> 은유 <해방의 밤> 창비. 2024 2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