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엘 인생일기>, 은유 <해방의 밤>
어제는 새벽 독서 후, 바로 이어서 글쓰기 줌 회의, 그림 그리러 화실 갔다가 시부모님 저녁 챙겨드리고 나니 자정 2분 남겨놓고 겨우 [새독 12일차] 연재를 마무리해서 올릴 수 있었다.
모처럼 마감 어길까 마음이 쫄깃했다.
써야 할 글도 몇 편 있는데 오늘 얼마나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매일 독서기록에 대한 연재를 하다 보니 나머지 글에 대한 연재 요일을 변경해야 하는 시점이 되었다.
새벽독서의 좋은 점 중에 하나는 나를 성장시킨다는 큰 의미도 있지만 매일 쓸 이야기가 쏟아진다는 것이 가장 큰 재미다.
그냥 문장을 읽다가 물음표나 느낌표를 던져주는 단어, 문장을 주워서 글을 쓰면 된다.
너무 신나는 나의 놀이시간!!
오늘 새벽에는 5시부터 새롭게 읽기 시작한 '앙리 프레데릭 아미엘'의 <아미엘 인생일기>을 읽는다.
제목처럼 남의 일기를 들춰보는 기분인데 이렇게까지 밑줄치고 싶은 일기라니!
아미엘이 말하는 고통, 슬픔에 대한 문장을 읽어보자.
"자신의 정신적인 고통을 '이해'하는 것은 그것을 반쯤 치유한 것과 같다".
"슬픔은 두더지가 햇빛을 피하듯이 은밀함을 좋아한다. 빛이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가면 슬픔은 힘을 잃는다."(35면)
이 두 문장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 의식의 중요성 "깨달음"과 "행동"으로 변화되는 과정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나의 고통이 무엇인지 깊은 고뇌를 하며 이해했다는 것만으로도 절반의 치유가 이루어진 것과 다름없다는 작가의 말은 나에게 "괜찮아. 너 지금 잘 이겨내고 있어"라는 힘이 담긴 소리 없는 응원처럼 따뜻하게 느껴진다.
슬픔은 두더지 같은 거구나... 빛이 있는 곳으로 데려가면 힘을 잃고 도망가는...
요즘 유행하는 "슬픔은 수용성이다"라는 말이랑 일맥상통하는 것일까?
슬플때 우울할 때 샤워를 하면 그 슬픔과 우울이 씻겨나간다는…
슬플 땐 빛 속으로, 물속으로 나를 데려가야겠다.
햇빛으로 축축한 영혼을 말리고, 물줄기로 때 묵은 감정을 뽀득하게 씻어야지.
그렇게 내가 나를 챙겨야지. 뽀송한 나를 만들어야지!
아미엘의 일기 내용 중에 자기반성도 많은 것 같다. 일기를 쓰면서 마른 자기 생각을 가지치기한다. 자기라는 나무가 잘 뿌리내리도록 사유의 비료도 알알이 뿌린다. 좀 차원이 깊은 자기반성, 철학적 고민이 글에 가득하다.
"행동을 성실하게, 즉 단순해져라." (면 27)라는 말은 요즘 새벽독서를 하는 나에게 눈앞에 펼쳐진 해답지처럼 명확한 답을 준다.
복잡하게 이것저것 재지 않고 시작하는 행동이 필요하다. 이왕 시작된 행동은 성실해야 한다, 단순함으로 군더더기를 덜어내 극적 효율성을 끌어낼 것. 지지부진 미루지 말고 빨리 해야 할 일을 할 것!
그러니 어제의 너 자신 반성해라! 발행시간이 너무 늦었어. 마감 2분 전은 말도 안 되는 거야.
최대한 출근 전에 맞춰서 독서글 발행하고 글쓰기 회의가 연속으로 이어지는 날에는 6시 안에 발행한다는 원칙을 세우자. 어쩔 수 없이 스케줄이 겹치는 주말에는 최대의 효율성으로 움직이자! 다짐한다.
고민과 체념의 술잔을 비우는 방법은 뭘까?
"싫증 내지 말 것, 냉정해지지 않을 것, 어떤 일에 기쁨을 느낄 것, 부족함을 걱정하지 말 것, 관대하고 인내하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고 호의를 가질 것. 꽃이 피고 마음이 열리는 것을 놓치지 않을 것. 언제나 희망을 가질 것, 신처럼. 항상 사랑을 지닐 것, 그것이 의무이다" (면 27)
이대로 살아가는 것이 나의, 우리의 의무라면, 그렇게 노력하다 보면 고민도 체념도 비어진 술잔처럼 덜 쓸까?
작가는 "직업"에 대한 이야기도 한다.
이 일기가 1848년에 쓰였으니까 무려 176년 전에 이런 생각을 했고, 지금 2025년도에도 인간은 여전히 아미엘처럼 보편적인 이 주제에 대해 고민하고 답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만큼 어려운 질문이고 우리들은 수백 년이 지나도 이 주제를 고민하고 있을 것 같다.
나조차 오랜 시간 동안 찾지 못한 답.
나는 이 문장을 통해 무수히 많은 물음표를 던져놓은 내 삶에 새로운 좌표를 찍을 수 있길 바란다.
"일, 그것을 매일의 사색의 대상으로 삼아라. 해가 있을 때 일하라. 너는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중략) 네가 선택해야 할 직업은 무엇인가? 네가 가장 너다울 수 있는 직업, 또한 가장 잘할 수 있는 직업은? 통일의 학문, 철학, 인생철학." (면 28)
나는 무엇을 잘하는 사람일까?
엉뚱한 상상, 내 생각 끄적이기, 한 문장 곱씹어 삼키기, 거친 붓터치의 그림 그리기(시도를 잘한다는 것이지 그림 실력이 뛰어나다는 이야기는 아니니 오해 주의!)
그 외에는 잘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
노래, 기타, 흐느끼는 춤선, 뜨개질, 예쁜 손글씨의 기록, 자전거 타기, 감각 있는 사진 찍기
상상만 해도 즐겁네.
나는 이런 일을 하면서 살고 싶구나.
"가장 나다울 수 있는 일" 그게 나의 직업이 되면 좋겠다.
바로
"쓰고 그리는 사람"
이제 읽고 싶은 3월의 독서모임 책, 은유 <해방의 밤-쓰지 않음의 윤리>를 읽는다.
날마다 야금야금 읽으니 어느새 90페이지에 접어든 은유 작가의 에세이.
하지만 마지막 토요일 1:1 독서모임까지 조금은 속도를 내야 할 필요도 있다.
"어떻게 쉼 없이 쓰겠어요, 우리가 글 쓰는 기계도 아닌데요."
"쓰는 고통이 있다면 안 쓰는 불안이 있네요." (93면)
은유 작가는 동료에게 "글쓰기 슬럼프"에 대한 질문에 자문자담하는 심정으로 답했다 고백한다.
작가는 부커상을 받은 인도작가 <아룬다티 로이>의 세계화를 비판한 에세이 <작은 것들의 신>을 소환해 이야기한다.
이룬다티 로이는 '시장의 심장부'에 펜을 겨누면서도 그곳으로부터 부를 쌓는 자기모순에 빠지지 않기 위해 20년간 소설을 쓰지 않았다는 일화를 들려준다.
이룬다티 로이는 '소설공장'처럼 본인이 취급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물 들어올 때 사정없이 노를 저으라는 지금 우리 사회의 흐름과는 동떨어진 이야기 같기도 하다.
작가는 이같이 쓰지 않음에 대한 윤리 이야기를 화두로 던진다.
또한 우리가 쓰는 글이 자신의 삶과 얼마나 맞닿아 있는 것인지 고민한다.
글과 삶을 일치시키려는 염결성"(주 1)을 잃지 않기 위해 '인간이기에 때문에' 관여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가야 할 곳에 가야 후회가 남지 않을 것 같아서 "싸우는 현장"으로 향한다고 한다.
작가들은 본인이 쓰는 글에 자신의 모습을 비춘다.
하지만 그것이 보여주기 위한 거치래에 불과하다면, 삶과 전혀 일치되지 않는 시체 같은 글이라면 어떨까?
그 거울 속의 모습은 또렷한 형체 없이 울렁거리게 될 것이다. 그 울렁임은 자신을, 자신을 바라보는 독자를 멀미 나게 할 것이다.
글이 가짜 거울행세를 한다. 거울인척 하는 플라스틱 조각이 나를 흐릿하게 만든다.
그런 생각이 드니 겁이 난다.
글을 쓰면서 생각한다.
나는 거짓 없이, 보탬 없이 나를 있는 그대로 글에 비추고 있나.
그 모습은 진짜 나인지, 내가 내 얼굴을 들여다봤을 때 부끄럽지 않은지.
그 거울이 물때와 먼지로 뿌옇게 가려져 진짜 내 모습을 비추지 못하는 건 아닌지.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염결 한 내가 맞는지.
나는 기어 다니는 거미가 아니라 바람으로 날아오르는 거미가 되고 싶다.
내 삶과 글을 잘 연결하는 "염결 한" 한 마리의 거미.
부디 책을 통한 "사유"라는 첫 도약의 거미줄이 13일의 새벽마다 잘 뽑아졌길 바란다.
13일 동안 얼기설기 엮은 거미줄이 누군가의 무심함으로 끊어지지 않길 바란다.
오늘도 새벽부터 나는 생각의 실을 하나하나 뽑는다.
매일 새벽 5시, 하나의 거미가 또 하나의 세계를 짓는다.
주 1> 염결성 : 청렴하고 결백한 성질 (네이버 국어사전)
참고> 앙리 프레데릭 아미엘 <아미엘 인생일기> 동서문화사 2006 1쇄
참고> 은유 <해방의 밤> 창비 2024 2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