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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독 11일차] 두 번째 인생, 뒤처진 새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은유 <해방의 밤>

by 윤서린

위기가 왔다. 새벽독서 11일 차를 맞이하는 새벽 4시 41분 알람이 울렸다.

글쓰기 숙제 수정 때문에 골몰하다 20분 전에야 겨우 잠자리에 누워 눈을 감았는데...

물론 잠이 들지는 않았다. 잠들면 못 일어날까 봐.

4시 42분 알람이 다시 울리는데 몸이 안 움직인다.

그냥 자고 싶어서. 극도로 피곤해서.


휴대폰 속 시리를 부른다.

"10분 후에 알람 맞춰줘..."

이러다 잠들어버리면 새벽독서 약속이 11일 차 만에 실패로 돌아갈 위기다.


띠리링 땅~

알람 소리에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나 욕실로 간다. 따뜻한 물이 나올 새도 없이 샤워기를 머리에 댄다.

졸려서 정신 나간 내 영혼을 빡빡 빨아서 말린다.


줌을 켜고 자리에 앉으니 역시나 새벽 5시에 벌써 모인 여러 작가님들...

이 분들은 모두 초인인가? 새삼 대단하다.

그 모습을 보니 나도 일어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어제까지만 해도 제목에 새벽독서를 인증하는 [새 독 00000000000차] 이렇게 머리말을 다는 상상을 했다.

훗날 꼬부랑 할머니가 돼서 글을 쓸 때, 제목 쓸 공간이 부족해지면 어쩌지 하는 조금은 황당한 상상을 했었다.

결코 몇 년간의 새벽독서는 아무나 할 수 없다는 것을 느낀다.


글 쓰는 속도를 내야 한다.

졸음이 몰려와서 내가 뭘 읽었는지도 가물거린다. 하필 결말 부분이라 조금 딱딱한 몇 페이지를 읽으니 병든 닭이 모이 쪼듯 문장 사이로 고개가 꼬꾸라졌다.


'정신 차려 늘그래, 너 그러다 오늘 기껏 쪼아 모아둔 좋은 문장 다 놓친다!'


드디어. 마지막 장을 펼친다. 220페이지의 끝이 보인다.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비극 속에서의 낙관> 부분을 마저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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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결론 부분이기에 중요한 핵심 문장들이 다시 반복되어 나온다.

특히 나보고 지금 읽으라고 펼쳐놓은 것 같은 문장에 밑줄을 긋는다.


"두 번째 인생을 사는 것처럼 살아라. 그리고 당신이 지금 막 하려고 하는 행동이 첫 번째 인생에서 그릇되게 했던 바로 그 행동이라고 생각하라." (215면)


프랭클 님, 프랭클 님 어찌 아셨나요?

저 지금 책 덮고 잘까?

책만 읽고 독서기록은 저녁때 쓸까?

이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인생 1회 차에서 했던 그릇된 행동이 바로 이거였던가요? 글쓰기 미루기?!!!

(이 문장을 쓰면서도 졸고 있는 나란 사람이여...)


이 문장은 살면서 뭔가 포기하거나 미루고 싶을 때 꺼내보면 좋을 것 같은 문장이다.

이 문장 덕분에 미루지 않고 이 글을 쓸 수 있었다.


새벽독서 덕에 220페이지의 책을 11일일 동안 천천히 나눠 읽을 수 있었다.

소설처럼 휘리릭 넘기며 읽을 수 있는 게 아니어서 하루 40분 정도 읽어도 영 진도가 나가지 않아 후반부에는 지루하기도 했다.

이해가 어려운 부분 다시 읽고 다시 읽고. 중요한 문장 색색깔 형광펜으로 칠하고 내 의식을 깨워주는 곳에는 인덱스를 차곡차곡 붙이며 읽었다.


뭔가 책표지 밖으로 삐져나온 인덱스가 새로운 바다를 향해 나가는 내 배의 색색 깃발이 되어 펄럭이는 게 느껴진다.

이번 항해는 마지막에 졸려서 제일 힘들었지만 그래도 오늘 하루도 해냈다는 게 나를 뿌듯하게 만들어준다.

덜 졸았으면 더 뿌듯했겠지만...


사실 오늘은 읽고 싶은 책, 은유 <해방의 밤>을 먼저 읽었다.

원래 읽어야 할 책을 읽기 위한 나의 독서처방전에 따르면 읽어야 할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먼저 읽어야 하지만 아침 루틴이 바뀌어 급하게 해우소로 달려야 했기에 자투리 시간에 한 장 펼쳐 읽고자 들고 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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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부분에는 독일 시인 "라이너 쿤체"라는 시인의 시가 소개 된다.

<뒤처진 새> 제목마저 한 줄의 시인 것 만 같다.



[뒤처진 새]. - 라이너 쿤체
철새 떼가, 남쪽에서
날아오며
도나우강을 건널 때면, 나는 기다린다
뒤처진 새를

그게 어떤 건지, 내가 안다
남들과 발맞출 수 없다는 것

어릴 적부터 내가 안다

뒤처진 새가 머리 위로 날아 떠나면
나는 그에게 내 힘을 보낸다


오... 이런...

내가 좋아하는 간결하고도 아름답고 다정한 시 한 편을 오늘 새벽에 만나게 됐다. 너무 좋....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책 속의 또 다른 책이나 작가를 소개받는 걸 좋아한다.

이 책에서는 시인 "라이너 쿤체"와 <뒤처진 새>라는 귀한 선물을 받았다.


작가가 편지 말미에 말한 쓰기 위해 준비하는 사람이 아닌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며 책장을 덮는다. 그 '쓰는 사람' 안에는 시, 동화, 그림책, 에세이, 단편소설을 쓰는 늘그래도 살고있다.

아직은 쑥스러워서 내 뒤에 숨어있기 일쑤지만.


오늘의 글은 <죽음의 수용소에서>에서 마지막으로 건진 문장으로 맺음 하려 한다.

스피노자의 "모든 위대한 것은 그것을 발견하는 것만큼이나 실현시키는 것도 힘들다" (220면)


나는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을 40대 후반에 제. 대.로 발견했다. 그동안은 막연히였다.

앞으로도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매일 읽고 쓰기로 다짐한다.


비록 오늘처럼 위기가 오더라도.

내 글의 부족함에 상심해 밤잠을 못 자더라도.

꾸벅꾸벅 졸면서라도.


지금처럼 쓴다.

포기하지 않고.



참고>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청아출판사 2024. 9쇄

참고> 은유 <해방의 밤> 창비 2024. 2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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