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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독 10일차] 비극 속에서의 낙관, 시시콜콜한 환대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은유 <해방의 밤>

by 윤서린

어제 한가해진 오후시간에 아르바이트를 조기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니 밤 10:50분이 넘어간다.

주차장에 도착해서도 10분 정도는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이상하다. 꼭 집에 들어가기 전 몇 분 동안은 그저 "혼자"있고 싶다.


최대한 빨리 집안을 둘러보고 초등학교 5학년 막내아들, 넷째의 양치질을 챙긴다.

막내는 내가 유일하게 챙길 우리 집 "미성년"이다. 근데 이 미성년이 11시인데도 안 자고 있다.


"윤아~ 일찍 자야 해. 엄마 4:40분에 일어나려면..."

"엄마 너무 피곤한 거 아니야. 잠을 많이 자야지."

"야~~ 그건 내가 할 소리지. 키 크려면 제발 일찍 자자".


막내는 키가 크려면 일찍 자야 하고, 나는 나를 성장시키려면 일찍 자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방탄소년단, BTS 석진이 예능도 몇 주째 볼 시간이 없어서 밀렸다. 원래 일 끝나고 누워서 영상 보다가 잠드는 게 내 낙이였는데... 미안하다. 석진아, 힘들 때 네 노래들로 많은 위로를 받고, 네 웃음으로 나도 웃었는데... 아줌마가 요즘 책 읽고 글 쓴다고 너를 등한시하고 있네. 그래도 아줌마가 예전에 비해 훨씬 활력이 넘쳤으니 나를 부디 용서해 다오.)


일찍 일어나야 된다는 무의식에 깜빡 자다 깨니 12:40분, 이제 한 시간 지났네.

그럼 나는 4시간의 수면시간이 남았구나. 얼른 다시 자자. 까무룩...

4:41분, "약속을 지키자, 매일 새벽독서 "라는 메시지와 함께 알람이 울린다.

4:42분, "좋은 아침, 새벽독서 5시"

그래 그래. 나와의 약속, 내 글을 읽어주는 분들에 대한 약속을 지키자.

겨우 돌덩이 같은 몸을 일으켜 책상 앞에 앉는다.

벌써 줌에 들어와서 책 읽는 작가님들의 모습이 보인다.

저분들은 정말 강철 체력, 강철 정신력이구나!!!


어느새 나도 새벽독서 10일 차, 나도 질 수 없지!!


나의 이번 달 독서처방전으로 선택된 '읽어야 할 책'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ㅡ 범결정론에 대한 비판, 비극 속에서의 낙관>을 펼친다.


(둘째 고양이 "나나"가 간식 안 주고 책상에 앉았다고 계속 내 옆에서냥냥 거린다. 미안.. 집사 책 좀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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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모든 사건이 원인과 결과로 철저하게 결정되어 있다는 "범결정론"이 위험천만한 가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어떤 조건이든지 그 조전에 대해 자기 태도를 취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을 염두에 두지 않은 인간관을 의미하기 때문이라고. (191면)


인간은 조건 지어지고 결정지어진 것이 아니라 상황에 굴복하든지 아니면 그것에 맞서 싸우든지 양단간에 스스로 어떤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존재이다. 인간은 그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존재할 것인지 그리고 다음 순간에 어떤 일을 할 것인지에 대해 항상 판단을 내리며 살아가는 존재이다. 같은 맥락에서 이야기하자면 인간은 어느 순간에도 변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지고 있다. (191면)


"인간은 어느 순간에도 변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지고 있다" 이 말에 밑줄 빡! 친다.


요즘 이 책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이 책이 내 인생에 조금 더 빨리 와주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다.

물론 그때는 극심한 우울증, 공황장애, 수면장애, 무기력으로 인해 단 몇 줄의 텍스트조차 읽지 못하는 암울한 시기였지만. 그때 누군가에게 이 이야기를 들었더라면 나는 바로 깨달음을 얻었을까?


누군가에게 듣는 이야기로 이 문장을 만났다면 책에서처럼 그 모든 것들을 이겨내고서 어느 순간 '아하'경험-'아하, 그렇구나'의 깨닫는 과정을 지금처럼 내가 제대로 알 수 있었을까?

아마 그렇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어느 정도 인식의 전환을 하는 시발점을 되었을 수도 있지 싶다.

그래서 내가 읽은 이 내용을 누군가에게 자꾸 이야기해주고 싶은 마음도 들고.


(오늘은 그 마음으로 여동생집에 이 책을 들고 왔다. 요즘 여러 문제로 우울함이 빠져있다는 그녀의 전화를 받고 40분 거리를 안갯속을 뚫고 와서 함께 앉아 있는다. 비록 아침 글 발행시간은 늦어졌지만 내가 그녀를 위해 책에서 건진 문장을 살며시 건네줄 수 있다는 게 다행스럽다.)


작가가 말하는 <비극 속에서의 낙관>이라는 게 뭘까?

로코테라피에서 말하는 '고통, 죄, 죽음'이 세 개의 비극적인 요소에도 인간은 현재는 물론, 앞으로도 계속 낙관적일 것이라는 의미를 지닌 말이라고 한다. (199면)


삶이 비극이라 느낄 때 우리는 어떻게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해 '네'라고 대답하는 것', 이 가능할까?


작가는 말한다. 우리 인간은 삶의 부정적인 요소를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것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는 창조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또한 어떤 주어진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그의 말처럼 극한의 상황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나 자신의 태도, 선택에 달렸다는 말임을 어렴풋이나마 이 책을 통해 알았다. 이 깨달음을 내 실생활에 적용시켜 앞으로 펼쳐질 내 삶을 잘 운용해보고 싶다.


내 삶의 주인, 내 삶의 책임감, 내 삶의 변화는 모두 다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믿음을 굳게 가지고서 말이다.


어느새 일곱 장만 더 읽으면 이 책도 끝이 난다.

마저 읽고 싶지만 아이 등교시간 때문에 읽고 싶은 책을 읽을 시간이 없어지기에 내일을 위해 책을 덮는다.


읽고 싶은 책, 은유 <해방의 밤-시시콜콜한 환대>을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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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 작가는 윤이형 작가의 <붕대감기>라는 소설을 통해 소식이 뜸해진 친구를 떠올린다.


책을 현실의 도피처처럼 생각하며 자신이 "엄마"라는 정체성을 비활성화하게 하는 비출산, 비혼 동료들과 어울려 어지러운 세속에서 벗어나 책이야기, 세상이야기에 빠지는 쾌락에 하루가 빠듯했다고.

그래서 여성들끼리의 연대의 중요성을 말하면서도 막상 현실의 관계에서는 미숙하고 소홀했다고 미안함을 고백한다.


먼저 연락을 해서 안부를 묻거나, 약속을 잡는 것, 속사정을 묻고 위로하는 일 같은 것들, 즉 마음을 낸 다정한 행동들과 그 계산 없는 노동이 결국 환대이고 연대였던 것이라고. 그래서 작가는 자신이 친구에게 빚을 졌다고 말한다. "나의 무심함에도 지지치 않은 네 손끝에 빚졌다." (80면)


나도 누군가에게 빚을 졌다.

같이 시간 내서 고흐 전시회를 가자고 말해놓고 바빠서 이번엔 안 되겠다고 말했다.

모임에서 같이 뮤지컬을 보러 가자 했는데 나는 못 갈 것 같다고 말했다.

나의 미안하다는 말에 괜찮다고는 했지만 그는 괜찮지 않았다.

의도하지 않았어도 나의 이런 행동이 무심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조금 서먹해졌다.


인스타그램에 뜬 그녀의 소식, 먼 곳에서 본인을 보러 온 친구와 모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나는 그 게시물에 조용히 하트를 누른다.

나의 무심함을 속죄하는 마음으로.


"좋은 책은 품이 넓더라"라는 문장이 나온다. 곧이어 "우리가 이토록 연약한 존재라서 단단한 관계를 바라는 거겠지."라는 구절도. (76면)


누군가에게 너그러운 마음을 펼 수 있는 품이 넓은 사람이 되어야 할 텐데 나는 아직도 어수룩하고 형편없다.

그 형편없음을 손끝으로 시인하며 오늘도 이렇게 책을 읽어 마음의 평수를 한 페이지 늘려 본다.


품이 넓은 사람이 되기 위해 손끝 찌릿한 성장통을 겪는다.


참고>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청아출판사 9쇄 2024

참고> 은유 <해방의 밤> 창비 2쇄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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