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과 현실 창업의 간극
호되게 깨졌다.
정신 차리라고 혼났다.
2주 전 주말에 벌어진 일인데 이제야 쓴다.
쪽팔려서 이 글을 써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다가 쓰는 이유는 이 쪽팔림에 교훈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지난 토요일 화실 그림수업을 마치고 여동생이 알려준 동네 독립서점을 방문했다.
사실 이곳은 내 여동생이 공방으로 운영하던 곳이었는데 이사를 가면서 그곳에 새롭게 독립서점이 생겼다.
언니라면 좋아할 거라고 추천해 준 마음에 고맙기도 하고 동생이 운영하던 공간이 어떻게 변했을지도 궁금했다.
처음 그곳에 공방을 오픈한다고 했을 때 나는 동생의 실행력에 놀랐다.
나 같은 쫄보는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을 그녀는 척척 해냈다.
손수 공간을 디자인하고 공사발주를 넣고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 잘 운영했다.
남동생과 같이 셋이 엎드려서 바닥공사가 끝난 곳을 기어 다니며 밤늦게까지 청소했던 기억이 생생한 곳.
나의 땀의 지분이 있는 그곳.
그곳이 내가 꿈꾸는 공간으로 변했다니 어찌 흥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역시나 새롭게 주인을 만난 공간은 반짝반짝 빛났다.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의 책이 단정하게 한쪽 책꽂이를 채우고 꼼꼼하게 써 내려간 손글씨로 안내된 이곳 주인장의 마음이 녹아있는 메모들을 읽으니 나도 모르게 내 안의 꿈이 꿈틀거린다.
내가 꿈꿨던, 꿈꾸는 "글쓰기문화예술-공유공간", "독립책방"의 주인이 되어 나는 그곳을 내 공간처럼 둘러봤다.
나라면 이곳에 어떤 책을 배치하고, 나만의 큐레이션이 들어간 선정도서는 가장 햇살 잘 드는 곳에 두어야지하며 위치를 살폈다.
귀여운 주인장의 메모는 나도 이런 따뜻한 손글씨로 사람들을 웃게 해 줘야지...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앙증맞은 소품들을 보며 역시나 책방에는 주인장의 취향이 묻어나는 아기자기함이 있어야지 하며 내가 아끼는 필기류와 책갈피, 작은 인형, 내가 그린 그림들을 하나씩 떠올렸다.
이미 나는 책방의 주인이 되어있었다.
이 책방에는 호러, 과학소설, 몇몇 독립작가들의 에세이가 있었다.
독립서점에 가면 최대한 내가 모르는 책을 사 오자는 게 나의 생각이었는데 확고한 주인장의 취향과 나의 취향차이에 머뭇머뭇거리다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갱지 같은 얇고 뽀얀 표지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사지 않고 버텼던 책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를 집어 들었다.
나는 책의 표지가 구겨지거나 더럽혀지는 게 극도로 싫은 사람이라서 이 책이 재질이 바뀌어서 나오면 그때 사야지하며 참았던 터였다.
나는 소설을 읽지 않음으로 (집중해서 못읽는다는게 맞는 말) 내가 살 수 있는 책의 선택권이 이것뿐이었다.
독서취향이 확실한 건 독립서점의 매력이지만 책판매에 있어서는 어려운 점이 많겠구나.
그래도 그 소신을 지키는 젊은 독립서점 주인장이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멋지게 변한 이 공간에 자주 놀러 와야겠다 생각하고 같이 오고 싶은 몇몇의 사람을 떠올렸다.
그리고 나한테도 이런 나만의 공간이자 우리의 공간이 될 수 있는 곳이 있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우리 동네에 얼마 전 편의점이 사라지고 비어있는 낡은 단층건물이 떠올랐다.
우리 집에서 1분 거리에 있는 그곳.
오며 가며 이곳에 뭐가 새로 들어오려나 생각했던 곳.
그곳. 그곳이 바로 내가 꿈꾸는 공간을 만들 수 있는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번뜩 든 것이다.
신나게 차를 몰고가 비어있는 건물 유리창 안을 들여다본다.
편의점 냉장고와 선반이 사라진 그곳은 생각보다 길고 넓었다.
네이버 부동산에 올라온 상가 임대료를 검색해 본다.
보증금 1000/월세 100, 28평
어... 생각보다 보증금이 싼데?
(이때는 보증금이 생각보다 싸다는 것에 꽂혀서 월세가 비싸다는 생각이 안 드는 바보였음)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여유자금이 있는 시아버님께 슬쩍 상가 이야기를 꺼낸다.
제가 이러이러한 공간을 만들려고 하는데 투자를 해보시는 건 어떠신가요?라는 의도가 다분한 브리핑이 이어진다.
보증금 금액을 듣던 아버님이 싸다고 수긍하신다. "네가 잘 생각해 보고 해" 말하신다.
그 정도는 며느리와 손녀딸에게 투자할 마음이 있으시다는 얘기다.
신이 나서 퇴근하는 둘째 딸을 바로 낚아채서 공간을 보여준다.
직장에서 바로 100미터 떨어진 곳에 창업을 하자는 엄마의 꼬드김에 아이도 상상력을 보탠다.
우리는 바로 책방의 주인이고, 카페와 칵테일 바의 사장이 되었다.
수도시설이 있는 안쪽에 싱크대와 주방을 만들어 빵과 음료를 팔면 되겠군. 생각한다.
나의 상상력이 날개를 달고 집에 있는 책상, 책장, 소품, 그릇들이 이 공간으로 날아들어온다.
벽에 너무 답답하지 않은 높이로 책장을 몇 개 정도 넣을 수 있을지, 주차장에 먼지 쌓인 채 방치된 원목 테이블을 가져다가 놓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여섯 명 정도 앉아 글쓰기나 만들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공간은 어느 쪽에 배치하는 게 좋을지 머릿속으로 도면을 그려본다. 도면은 여동생 전문인데... 부탁해 볼까?
둘째 딸이 제과제빵 자격증이 있고 브런치 카페에서 일하니 언젠가는 작은 가게를 하나 차려서 딸이 운영하고 나는 운영을 보조해 주는 상상을 했었다.
어쩌면 이 상상이 현실이 될 수도 있겠는데 싶어서 가게 이름도 지어본다.
딸과 내가 꿈꾸는 공간에 맞는 이름.
뚝딱 네 글자가 나온다.
이럴 땐 정말 내 머릿속에 영감이 번개처럼 스쳐가는 것 같다.
평소 엉뚱한, 허튼 생각을 많이 한 덕분이랄까.
어떻게 가게를 알차게 운영할지 24시간을 쪼개본다.
새벽 5시에 오픈해서 새벽독서로 나의 하루를 이 공간에서 시작한다.
운이 좋으면 출근길, 등굣길에 몇몇 손님들에게 커피와 빵을 팔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낮에는 내가 북카페와 공유공간의 주인이 되어 근처 어린이집 엄마들과 글쓰기나 독서모임을 한다.
이곳은 동네사랑방 같은 곳이어서 밥 하기 싫은 엄마들과 어르신들을 위해 하루 몇 그릇만 파는 한 그릇 식사를 팔면 괜찮을 것 같다.
위치상으로 어린이집과 노인정이 2분 거리에 있고 이 가게를 중심으로 대형 빵가게와 나름 유명한 브런치 카페가 있다.
삐까 번쩍한 카페들 사이에 끼여 다 쓰러져가는 건물에 카페 겸 공유공간 겸 바(BAR)를 차리려는 당찬 나의 포부!
평일에는 주택가라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을 테지만 주말에는 브런치 카페를 가던 사람들이 우리 가게를 지나가야 하므로 궁금해서 들리는 사람들이 생길 거라는 기대감이 조금 올라간다.
둘째 딸은 주문받은 케이크와 그날 팔만큼의 몇몇의 빵만 만들고 낮에는 쉰다.
낮에는 오로지 내 공간으로 써야지... 햇살 받으며 책냄새 맡으며 노곤하게 책 읽고 글 쓰고...
상상만 해도 너무너무 해피한 것!!
상상력이 또 상상력을 부른다.
출근 전, 등교 전 새벽독서를 하고 싶어 하는 동네 사람들과 새벽독서 모임을 열고, 저녁에는 칵테일 한잔 마시며 책을 읽는 독서모임을 만든다.
삶과 육아에 찌들어 자기가 누군지도 모른 채 살아가는 엄마들과 치유하고 성장하는 글쓰기 모임을 만들 것이다.
손재주 많은 엄마들이 모여 바느질하고 뜨개질해 만든 소품을 판매할 수 있는 공간도 한편에 만든다.
(이때를 위해 나의 똥손은 미리 뜨개질을 배워야만 한다. 뜨개질과 책은 너무 잘 어울려서 항상 내 버킷리스트에 있다)
그림을 배워본 적 없는 사람들 (주부, 학생, 어르신들) 에게 그림을 놀이처럼 할 수 있는 수업과 공간을 만든다.
"자연환경해설사"인 여동생을 초빙해서 엄마와 아이들을 위한 "친환경 공예" 수업을 1주일에 한 번 정도 진행한다.
그림 그리는 큰딸을 꼬셔서 우리 책방과 공간에 어울리는 캐릭터와 소품을 디자인해서 브랜딩을 해보고 싶다.
분명 우리 집 까칠 애교쟁이 고양이 쿠쿠, 나나와 멍충미 강아지 모모가 모델이 되어줄 것이다.
저녁에는 딸의 바람대로 간단한 안주와 칵테일을 파는 동네 아지트가 된다.
가끔 딸은 기타 연주도 할 것이다.
나는 어쩌다 인생을 노래하는 힙합 음악을 크게 틀 것이고,
80년대 노래를 틀고 그곳에 모인 여러 사람들과 각자의 추억을 나눌 것이다.
말랑한 인디음악을 들으며 시와 소설을 쓸 것이고.
보이시한 여성보컬의 팝을 틀어놓고는 보드카를 탄 빨간 오미자 하이볼을 홀짝이며 예술과 술에 취할지도 모른다.
그곳은 나의 놀이터이자 우리의 놀이터가 될 것이고 어쩌면 밤새 불이 꺼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런 나의 기분 좋은 상상을 와장창 깨뜨린 사람은 바로 극현실주의자 여동생이었다
공간운영을 몇 년째 해본 동생에게 조언을 구하고자 전화를 했는데 대뜸 하는 첫마디.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너무 비싸. 하지 마. 꿈깨"였다.
지금 경기가 안 좋아서 있는 가게도 망하는 판에 유동인구와 상권도 없는 동네에 월세 100만 원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했다.
아무리 인테리어를 안 한다고 해도 바닥과 조명 전기공사만 시작해도 몇백은 우습다고 했다.
바닥은 내가 생각해도 해야 하니까 몇백은 추가되겠지 싶었고, 주방공사랑 제빵기계랑, 커피머신이 들어와야 하니까 금방 천만 원이 넘게 들 거라는 것도 생각했다.
보증금 포함 2000만 원~3000만 원 정도면 시작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동생은 초기자금도 문제지만 2년 계약기간 동안 들어갈 월세, 전기요금 등 부가적으로 발생하는 월지출, 나와 딸의 인건비, 재료비 등을 따져보라고 했다. 과연 한 달에 얼마를 벌어야겠냐고!!!
그렇다.
나는 공간을 만들 생각을 했지 현실적으로 운영할 생각까지는 못했다.
뭐라도 하면 월세 100만 원은 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 여러비용과 인건비를 따져보니 한 달에 몇백을 벌어야 유지가 될지 대략 감이 잡혔다.
현실적으로 무리였다.
내 상상 속 책방, 카페, 공유공간이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진다.
엄마라는 사람이 이제 막 사회생활한 딸한테 콧바람만 넣었다고 동생한테 혼났다.
동생 말이 맞았다. 혼나도 쌌다.
나는 그 공간이 탐났고 그런 꿈같은 공간이 내 삶의 도피처가 될 거라 생각했다.
설거지 아르바이트 같은 허드렛일은 얼른 다 때려치우고 책이랑 음악이랑 글쓰기 하는 나로 신분상승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동생말을 듣고 잘 생각해 보니 이제 갓 빵 만들기에 들어간 딸의 케이크를 어느 누가 무슨 수로 알고 주문해서 살 것이며, 이제 막 글쓰기 연습장을 펼치고 끄적이는 나를 찾아와 함께 글을 쓸 사람이 몇이나 될 것인가?
이제 겨우 새벽독서 26일 차인 독서초보자인 내가 누구를 위한 북큐레이션을 할 수 있겠냐는 말이다.
반나절만에 나의 꿈과 상상으로 가득했던 공간이 개업도 못하고 폐업을 선언한다.
가게를 안 차렸는데 이미 한 번 망한 것처럼 기운이 쭉 빠진다.
현실성 없는 엄마 때문에 마음속 사표를 던지고 창업이라는 풍선에 올라탄 둘째 딸을 지상으로 잘 데리고 내려와야 한다.
나는 바짝 엎드려 사과한다.
엄마가 생각이 모자랐다.
너무 마음만 앞섰다.
생각해 보니 너도 나도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
엄마는 이 일로 깨달았다.
오늘 반나절만에 열지도 못하고 문 닫은 창업의 경험이 앞으로의 나와 둘째 딸의 몇 년을 바꿀 것이라 생각한다.
너와 나는 그 공간에 어울리는 사람이 먼저 되어야겠다.
너와 나는 우리와 함께할 사람들에게 믿음을 줘야겠다.
너와 나는 먼 미래가 아니라 지금부터 스스로를 성장시켜야겠다.
그래서 기회가 왔을 때 망설이지지 않고 바로 할 수 있도록 준비가 되어있어야겠다.
가게는 못 차렸어도,
정신은 차렸으니 아주 밑지는 반나절 장사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며칠 후 시아버님이 궁금해하며 물어보시길래 "월세가 너무 비싸서 안된데요"라고 말하고 뒤돌아서며 생각했다.
"정말 그 공간에 어울리는 우리가 되면 그때 시작할게요. 그래도 시작하고 싶다는 말에 해보라고 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아마 당분간 허드레꾼의 삶을 계속 살아야 할 것 같다.
황보람 작가가 해준 말이 문득 떠오른다.
"늘그래 님은 허드레꾼을 가장한 글 쓰는 분이에요. 꼭 <허드레꾼의 허튼 생각> 포기하지 말고 계속 쓰세요."
40대 주부의 우울증 탈출기, 허드렛일 이야기가 과연 글로써 가치가 있을까에 대한 나의 고민을 불식시켜 주는 그 말에 나는 오늘도 힘을 얻는다.
연습장처럼, 뭔가 내 삶의 응어리를 토해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시작한 브런치스토리 글쓰기.
한평 책방에서 "야옹시의 비밀글방"의 리무작가를 만났다. 나의 한 달을 돌아보는 회고록 쓰기에 참여한 게 기회가 되어 첫 글을 쓰고 사람들 앞에서 내 글을 읽고 나누었고 브런치 작가에 도전했다.
황보람 작가의 북토크에 참여해 글쓰기 모임으로 발전한 "쓺"이라는 모임으로 서로의 글을 응원하는 나날들.
브런치 스토리에서 <엄마의 유산> 지담 작가를 만나고 출간프로젝트에 합류하며 많은 브런치 작가들을 글벗으로 만난 행복한 순간들.
2024년 9월 말 첫 도전에 운 좋게 성공해서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글을 쓰며 6개월의 시간을 보낸 나는 그전보다 더 웃고 삶에생기가 오르고 목소리에 자신감이 묻어났다.
사람들이 내가 변했다고 한다.
요즘 늦은 시간까지 아르바이트하는 날에는 4시간 자고 일어나 새벽독서를 한다.
출근 전 아침 3시간 30분을 오롯이 내 시간으로 만들어서 매일 읽고 쓴다.
26일째 하루도 빠지지 않고 <독서처방전과 밑줄프로젝트>라는 글을 써서 연재한다.
새벽독서와 글쓰기 습관을 들이는데 힘을 쏟아서 그간 다른 연재글을 못썼다.
분명 이 <허드레꾼의 허튼 생각>을 기다려준 글벗들도 있을 텐데.
몇몇 글벗들이 <파니파니냥의 영감 없는 영감상점>이 다시 열리길 기다리고 있다고 하니 얼른 부지런을 떨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어제 6개월 만에 구독자 102명이 되었다.
신기하고 감사한 마음과 더불어 책임감도 느껴진다.
엇... 글 쓰다 보니 어느새 새벽독서하라고 알람이 울린다.
꼼짝없이 4시간 넘게 책상에 앉아있었다니. 엉덩이 힘이 많이 늘었다.
근데 어쩌지...
5시부터 새벽독서
6시부터 "글 쓰는 트레이너"작가님의 재능기부로 이루어지는 줌으로 하는 요가체조시간
7시부터 <건율원- 인문학 라이브 강의>
8시부터 10시까지 글 써서 발행하기
일요일 새벽부터 알차다 알차.
까칠이 나나가 내 책상밑에 와서 간식시간인데 뭐 하고 있냐고 야단친다. 얼른 내놓으라고 야옹거린다.
정말이지 그만 쓰고 일어나야지... 오랜만에 쓰고 싶은 이야기 쓰니까 수다가 끊이질 않는다.
주말 꿀잠 자고 있을 사람들이 부럽지만....
줌을 켜고 새벽독서를 시작한다.
글 쓰는 허드레꾼 늘그래야,
네가 원하는 공간에 어울리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오늘도 힘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