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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독 43일차] 피할 수 없다면, 유난 떨지 않는 것

데일 카네기 <자기 관리론>, 박준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by 윤서린

오늘은 새벽 4:30분 출근이 하나 잡혀서 조금 이른 새벽독서를 시작했다.

데일 카네기 <자기 관리론> 중 제3부 <걱정하는 습관을 버리는 방법> 네 번째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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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하는 습관을 버리는 방법 네 번째, <피할 수 없다면 받아들여라>


어린 시절 다락방에서 놀던 데일 카네기는 창턱에서 뛰어내리다 왼손 손가락 하나를 잘리는 사고를 당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너무 무서웠고, 곧 죽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다행히 치료를 받고 난 뒤로 그런 걱정은 단 한순간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데일 카네기는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나라면 그 순간에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랬다면 그런 사고를 안 당했을 텐데... 하며 손가락을 볼 때마다 후회했을 텐데...


데일 카네기는 "우리는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것이 어떤 상황이든 놀라울 정도로 빨리 받아들이고 적응한다. 그런 뒤에는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조차 잊어버린다."라고 말한다.


"걱정한다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나는 피할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인 것이다." (121면)


데일 카네기는 걱정하는 마음을 버리기 위해 여러 사람들의 말을 인용한다.


그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15세기경의 대성당 유적에서 발견된 비문을 소개한다.

"이미 그렇게 되었으니, 그러지 않을 수 없다."


조지 5세는 버킹엄 궁의 자신의 서재에 다음과 같은 말을 액자에 담아 걸어 두었다.

'달을 따 딸라고 울거나 쏟아진 우유가 아까워 울지 않도록 가르쳐 주소서.'


쇼펜하우어 '인생이라는 여정을 준비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괴롭거나 힘든 일을 받아들일 줄 아는 것이다.'


마음먹기에 따라 우리 마음 안에 천국도 지옥도 있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우리가 걱정을 하며 시간을 보낸 들 이미 벌어진 일이 어찌 되겠는가.

매일 후회와 걱정만 하다 우리의 소중한 삶을 다 허비할지도 모른다.


"저는 절대 미래에 대해 걱정하지 않습니다. 미래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원동력들은 너무나도 많습니다! 아무도 그런 원동력을 유발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고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왜 그런 걱정을 해야 할까요?"- K.T. 켈러


어제 걱정에 대해 이 책을 읽으면서도 깨달았지만 우리가 상상하는 고민의 90% 이상은 실제로 벌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고민으로 감정과 하루를 소비한다면 얼마나 아까운가?

나 스스로도 쓸데없는 걱정은 툭툭 털어버려야 할 필요가 있다.

걱정할 시간에 좀 더 창의적인 상상을 하는 게 인생에 더 도움이 될 것이다.


데일 카네기는 "피할 수 없다면 받아들여라", "피할 수 없다면 협력하라"라고 말한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말처럼 쉽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반복적으로 이렇게 책에서 걱정에 대해 배우고 이해하는 시간을 갖다 보면 나도 "걱정인형"에서 벗어나 좀 편안해지지 않을까.


데일 카네기는 신학대학 응용기독학 교수 라인홀트 니부르 박사가 한 말을 인용한다.

이 기도문은 나도 인스타그램에서 비슷한 글이 떠다니던걸 본 적이 있다.


주여, 제게 허락해 주시옵소서.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정과

바꿀 수 있는 것을 변화시킬 용기를

그리고 이 둘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해 주시옵소서. (135면)

- 라인홀트 니부르 박사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마음,

바꿀 수 있는 것을 변화시킬 용기,

이 둘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가진 사람.


나 또한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이 기도문을 마음 깊이 읊어본다.


읽고 싶은 책, 박준 시집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를 읽어 본다.


내가 생각하기에,

시집은

굳이 처음부터 읽지 않아도 되고

다 읽지 않아도 되고

읽었다가 잊어버려도 된다.


그래야 다시 읽을 때

마음이 한 번 더 쿵하고 내려앉고

괜찮다 괜찮다 하며

한 번 더 쓰린 마음을

쓰다듬어 줄 수 있다. -늘그래


짧은 시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은 박준의 시를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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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년생]

- 박준


아랫집 아주머니가 병원으로 실려 갈 때마다 형 지훈이는

어머니, 어머니 하며 울고 동생 지호는 엄마, 엄마

하고 운다 그런데 그날은 형 지훈이가 엄마, 엄마 울었고

지호는 옆에서 형아, 형아하고 울었다



이게 뭐람...

날 울리는 이 시는... 도대체가...

감당이 되지 않는다.


시인은 단 네 줄 시로 세 사람의 슬픔을 노래한다.


엄마는 매번

아파서 실려가는 것일까,

죽으려다 실려가는 것일까,


형 지훈이는 연년생 지호보다 한 살 많을 뿐인데

어머니, 어머니 부르며 형아 노릇을 한다.

의젓한 큰 아들 역할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형 지훈이가 그만 엄마, 엄마하고 소리 내 운다.

그 순간은 형도 아니고 의젓한 큰 아들도 아니다.

그저 어린 엄마의 아기가 된다.


그런 형아를 보고 지호는 떠난 엄마보다 남겨진 형아를 목놓아 부른다.

형도 엄마처럼 떠날까 형아, 형아하고 운다.


엄마는 아무 말도 없다.




[생활과 예보]


- 박준


비 온다니 꽃 지겠다


진종일 마루에 앉아

라디오를 듣던 아버지가

오늘 처음으로 한 말이었다


박준 시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덤덤한 듯하지만 어느 동네를 지나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그리운 냄새를 맡고 아버지, 아버지 부르며 제 아들 앞에서 우는 사람이다.


오늘도 아버지는 하루 종일 말없이 생각에 잠겨있나 보다.

아들과도 별다른 대화도 없는 듯한 부자사이.

그런데 그런 아버지가 라디 오을 듣다 "비 온다니 꽃 지겠다"라고 첫 입을 뗀다.


계절에, 향긋한 봄에는 관심도 없어 보이던 아버지가 꽃잎이 떨어지는 걱정을 한다.

봄비가 걷어가는 꽃의 유한한 생명력을 아쉬워하는 것인지,

아들과 꽃구경을 못 나가 본 서운함인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아버지도 꽃이 피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꽃이 지는 걸 아쉬워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아들이 알아차린 것이다.


시는 이렇듯 누군가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고, 유난 떨지 않는 것이다.


참고> 데일리 카네기 <자기 관리론>, 더스토리. 초판 1쇄. 2024

참고> 박준 시집 <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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