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독 69일차]"나의 세계"란?,대등한 존재 "친구"

김주환 <내면소통>, 야스토미 아유무 <단단한 삶>

by 윤서린

김주환 <내면소통>을 읽는다.

오늘은 [인간 존재의 세 가지 범주와 마음근력] 편을 읽는다.


작가는 우리가 살면서 마주하는 문제는 크게 세 가지 범주로 나뉜다고 말한다.


<우리가 살면서 마주하는 문제의 범주>

첫째, 나 자신

둘째, 다른 사람들

셋째, 사물 혹은 사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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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기호학자이자 철학자인 찰스 샌더스 퍼스에 따르면(...) 일차적인 '나'(I)는 추상적인 세계로 신학의 영역이다. 이차적인 '너'(Thou)는 정신의 세계를 나타내며 심리학과 신경학의 대상이다. 그리고 삼차적인 '그것'(It)은 감각적인 물질의 세계를 가리키며 우주론의 궁극적인 대상이다." (071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려면 세 가지 범주의 존재를 각기 잘 다룰 수 있어야 한다. 강한 마음근력을 지닌다는 것은 세 가지 범주와 각각 좋은 관계를 맺고 잘 다스릴 수 있다는 뜻미여,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여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071면)


나와 계속 커뮤니케이션하는 존재들이 곧 나의 세계다.
내가 관심을 기울이며 들여다보는 것이 나의 세계다.
내가 배려하는 대상이 나의 세계다.
이 세상은 나의 관심과 소통의 결과인 것이다. (073면)


지금 나의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내가 소통하는 사람들, 관심 있게 들여다보는 것, 배려하는 대상에 대해 잠시 떠올려 본다.

지금 내가 만들어 놓은 나의 세계는 진정 내가 원하는 나의 세계과 얼마나 일치하는지...


야스토미 아유무 <단단한 삶>-"나답게, 자립하고 성장하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를 읽는다.

우선 작가가 "자립"에 대해 말한 명제를 다시 복기하고 간다.


자립은 의존하는 것이다.
의존하는 대상이 늘어날 때 사람은 더욱 자립한다.
의존할 대상이 감소할 때 사람은 더욱 종속된다.
"도와주세요"라고 말할 수 있을 때 당신은 '자립'한 것이다. (23면~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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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자신이 알고 있는 주수뷔라는 인물의 사례를 예로 들어 자립을 위한 의존이 무엇인지 설명한다.

그는 중국에서 녹화 활동에 50년 이상 공헌한 식림기사인데 임업연구소를 퇴직하고 녹화 활동을 하면서 그에 대한 보수를 받는 것을 거부했다고 한다.

얼마 되지 않는 연금을 받고 있어 생계는 유지했지만 생활이 빈곤했다고...


그는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작가는 그와 몇 년 정도 만나면서 그의 그런 삶의 방식이 "매우 중요한 전략"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돈을 받지 않고 식목에 몰두하는' 그의 삶의 방식 때문에 많은 사람이 주 씨를 깊이 존경하고 있었습니다. (...) 주 씨가 병에 걸리면 이 일은 정말 중대하기 때문에 모두 급하게 달려와서 그를 치료하기 위해 도움을 줍니다. 이러한 도움을 그는 거절하지 않습니다. 곧 돈을 받지 않음으로써 그는 많은 사람에게서 무상의 원조를 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는 '뭔가 곤란한 일이 생기면 누군가가 도와준다'라고 확신했고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32면)


사례가 좀 극단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가 말하고 싶어 하는 건 이런 이야기다.

"자립한 사람은 혼자서 무엇인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가 곤란하면 언제든지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고 그러한 인간관계를 잘 관리하는 사람을 가리킨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33면)


다른 사람들에게 믿음과 존경을 받는 사람, 그런 존재가 된다는 건 어떤 것일까?

나는 과연 누군가에게 믿을 주는 사람인가?

또는 존경받을 만한 삶을 살고 있나?


진정한 "나다운 자립"을 한다는 건 무엇일까? 그게 가능할까?

성인이 되어 부모 곁을 떠나 "자립"한다는 갓과 "나다운 자립"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처럼 멀고도 어렵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마흔 후반, 이 책을 만나서 다행이다.


작가는 "친구"에 대한 명제를 세운다.


친구는 인간으로서 서로 존중하는 관계의 사람을 가리킨다.

서로 인간으로서 존중한다는 말은
서로의 진짜 모습을 늘 탐구하고
자기가 만든 상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43면)


작가가 말하는"존중"의 의미와 "대등한 친구"란 이런 것이다.

"아무리 입장이 달라도 상대의 진짜 모습, 진짜 생각, 진짜 감각을 탐구하는 것이 서로 존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으로서 대등하다는 말의 의미입니다." (43면)


작가의 "친구"의 정의를 보면서 "자기가 만든 상을 강요하지 않는다" 이 부분이 마음에 걸린다.


친구와 만나서 이야기 나눌 때 일상적인 대화 말고 글쓰기나 독서, 음악, 그림, 자연 이야기를 같이 나눌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늘 아쉬워할 때가 많았다.

나는 왜 그런 마음 잘 맞고 이야기 잘 통하는 친구가 없을까... 고민했다.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친구의 기준으로 그 사람을 바라보니 늘 아쉬웠던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친구의 진짜 생각, 진짜 모습, 진짜 감각에는 정작 무관심했던 것 같다.


이제 친구를 만나면 그가 하는 이야기 속에서 그의 세계를 이루고 있는 진짜 그 친구의 모습, 사유, 고민, 행복함 등을 찬찬히 찾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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