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가기 싫은 날

by 윤서린

윤이를 깨우는 아침에는 살짝의 실랑이가 있다.

학교 끝나고 태권도에 다녀와도 윤이의 넘쳐나는 에너지는 밤 11시 넘어까지 이어진다.

그러니 아침에 깨우면 늘 더 자고 싶은 마음에 투정 섞인 표정을 짓는데 오늘은 유독 짜증이 심했다.

누나들과 형이 함께 등교해야 하기에 더 늦장을 부리다가는 모두 지각이었다.

온몸으로 투정 부리는 아이를 간신히 채비해서 차에 태워 학교에 보냈다.


아침에 그러고 보낸 터라 마음이 좋지 않아서 태권도 하원 차량에서 내리는 아이를 마중 나갔다. 윤이의 표정이 굳어 있었다.

아침에 투정 부릴 때 내 언성이 높아진 걸로 아직 마음이 상해있나 싶게 나도 아이도 서로 어색한 인사를 했다.

윤이한테 책가방을 넘겨받아 내 어깨에 걸치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서로의 어색한 공기 속에 4층 집으로 올라가는 짧은 몇 초의 시간이 긴 터널을 통과하는 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윤아, 책가방 제 자리에 정리하고 간식 먹어”

이렇게 어색한 순간에는 달달하게 들어가는 음식이 아이의 기분을 풀어줄 가능성이 있기에 남겨뒀던 초콜릿케이크 한 조각을 내밀었다.

내 예상과는 달리 아이가 선뜻 포크를 들지 않는다.

“왜? 별로 안 먹고 싶어? 너 케이크 좋아하잖아. 우유랑 같이 먹을래?” 아이가 답이 없다.

나는 냉장고에서 흰 우유를 투명한 유리잔에 한잔 가득 따라 내밀며 말했다. “역시~ 우유는 유리컵에 마셔야 제 맛인 것 같아. 흰 우유가 유리잔에 보이면 입도 눈도 즐겁잖아. 그렇지? “ 보통 내가 우유를 주면서 이 멘트를 던지면 윤이도 맞장구를 쳐주는데 윤이는 내게 눈도 안 마주치고 케이크 접시만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다.


“윤아~ 아침에 엄마가 지각한다고 서두르라고 해서 기분 나빠서 그래? 그러니까 오늘은 좀 일찍 자면 내일 학교 갈 때 기분 좋게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

“엄마, 나… 내일…. 학.. 교 안 가면 안 돼요? “

“응? 학교를 안 가? 학생이 학교를 안 가면…. 왜? 무슨 일 있었어?”


케이크 접시에 꽂혀있던 아이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윤이의 눈이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듯한 강둑처럼 아슬해지더니 곧 눈물샘이 터져버렸다.

나는 아이를 곧장 안아주었다. 너무 슬픈 건 아이가 소리 없이 눈물만 흘린다는 것. 나는 그 소리 없이 집어삼키는 울음의 무게를 알고 있다.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드디어 내가 걱정하던 일이 생긴 걸까?


내 품에 안겨우는 아이의 입술 사이로 집어삼키던 한숨이 힘없이 새어 나오며 서러운 흐느낌이 되는 순간.

나는 껴안고 있는 아이의 등을 말없이 손바닥으로 쓸어주었다. 아이의 서러움이 쓸려 나가길 바라면서.


아이는 한참 품에 안겨있더니 어느 정도 서러움이 가셨는지 날 감싸 안았던 두 팔을 풀었다.

“엄마, 나 학교 안 갈래. 안 가면 안 돼요?”

“왜? 무슨 일 있었어? 그래서 그래?”

아이는 오늘 학교 수업시간에 있었던 모둠활동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짧은 역할극을 하는 수업이었는데 윤이가 자꾸 자기 순서를 틀렸다고 했다.

윤이가 맡은 역할은 대사가 한 줄씩이라 선생님이 알려줘서 외우는 건 크게 어렵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역할끼리 대화하는 식이라 언제가 자기 순서인지를 대본을 보고 대사를 치고 나와야 했는데 글을 읽지 못하는 윤이가 자기 순서를 몰라 자꾸 멀뚱하게 있거나 엉뚱한 곳에서 대사를 해서 아이들이 화를 냈다고 했다.

“엄마, 나… 내 대사는 잘 외웠거든요. 근데 내가 언제 말해야 하는지는 안 외워져서 틀린 건데. 친구들이 대본 보고하는 건데 왜 자꾸 순서 틀리냐고… 자기들끼리 나보고 바보냐고…. 나 바…보 아닌데… 자꾸 바보라고… 엄마, 나…. 바보 아니지? “

윤이는 ‘바보’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낼 때마다 가슴속에 삼켜뒀던 설움까지 밖으로 내보내는 듯 울먹였다.


”바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이 세상에 이렇게 똑똑한 바보가 어디 있어? 너 네 대사 다 외웠다면서. 대본 보고 하는 것보다 대사 외워서 하는 거 훨씬 더 어려운 거야. 연극배우들이 손에 대본 들고 하는 것 봤어? 다 외워서 하는 건데. 엄청 똑똑하고 대단한 거야. 절대 바보 아니야. “

“윤아, 바보라고 놀린 친구들 엄마가 찾아가서 아니라고 말해줄까? 친구들이 너무했네. 틀릴 수도 있고 실수할 수도 있는 건데. 엄마가 아무래도 학교에 가서..

“ ”아니야 엄마, 학교 찾아가지 마. 그 친구들 원래 나쁜 애들 아니야. 나랑 친해. 근데 내가 자꾸 틀려서 모둠활동 점수 좋게 못 받아서…. “ 아이는 그 순간이 다시 떠올랐는지 말끝을 흐렸다.


“윤아, 너 그거 알아? 피곤할 때나 슬플 때는 달콤한 음식을 먹으면 입안의 초콜릿이 녹듯이 그런 기분이 스르르~ 녹아내리는 마법이 일어나거든? 어디, 엄마 말 진짜인지 한번 실험해 볼래? “

나는 아이의 손에 포크를 건네며 초콜릿케이크 접시를 앞쪽으로 밀어줬다.

아이는 방금까지의 눈물이 민망해서인지 머릿속에서 울리는 “바보”라는 단어 때문인지 평소처럼 케이크를 크게 뜨지 않고 포크 끝에만 묻혀 맛을 본다.


서럽게 떨렸던 입술이 달달한 초콜릿을 만나 오물거리는 모습을 보니 한편 안심이 되면서도 앞으로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마음 한편이 무거웠다.

내가 느끼는 압박감이 이 정도인데 아이는 이 걸 오롯이 혼자 학교 생활을 하면서 견뎌야 한다니. 8살 아이에게 너무 가혹한 현실 아닌가 싶었다.

내가 투명인간이라도 돼서 아이 옆에 붙어서 학교를 따라다닐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모르는 글씨도 살짝 알려주고 연극할 때 옆에서 다음 순서도 알려주고… 바보라고 놀리는 아이들도 놀래켜주고…

근데 아이의 학교 생활을 옆에서 지켜보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투명인간이 울면 눈물도 투명이려나? 그러면 윤이에게 내가 우는 건 안 들킬 수 있겠지? ’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 싹싹 비운 케이크 접시가 눈에 들어온다.


“엄마, 엄마 말이 진짠 가봐요. 케이크가 정말 맛있어요. 오늘은 케이크 열 조각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 하며 웃는다.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윤아, 케이크 열 조각으로 오늘 너의 서러움과 슬픔이 녹아내린다면 엄마는 얼마든지 새로운 케이크를 준비할 수 있을 것 같아. 하지만 윤이가 이 마법을 찾는 날이 살면서 아주 가끔, 아주 아주 가끔이었으면 좋겠어.‘


“자, 오늘 기분이다. 냉동실에 레인보우 샤베트 아이스크림 꺼내. 우리 같이 먹자”

밥 숟가락으로 커다랗게 떠올린 아이스크림을 입에 넣자 찬 기운에 머리가 띵해서 우리는 둘은 이마를 두드리며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었다. 그 모습이 웃겨서 우리는 살짝 웃었다.

나는 다시 한 번 크게 한숟가락 아이스크림을 떠서 입안에 넣었다.


오늘은 나도 달콤한 마법이 절실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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