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달콤한 마법이 끝나버린 아침 등교시간. 아이는 살짝 상기된 표정으로 양말을 신는다.
양말을 신으면 가방을 메고 학교를 가야 한다는 걸 몸이 안다. 아이의 마음은 침대에 누워있는데 몸만 현관문을 열고 나가는 것 같다.
우리는 서로 어제의 일을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오늘은 부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학교 앞에서 헤어졌다.
담임 선생님께 문자를 남겼다.
윤이가 어제 학교에서 모둠활동 연극할 때 있었던 일로 마음의 상처가 있어 학교 가는 발거음이 무거웠노라고.
담임 선생님이 안 그래도 여러 차례 실수한 윤이가 표정이 많이 어두워서 불러다 괜찮다고 위로했는데 교실에서는 고개를 숙인 채 울음을 꾹 참았다고 했다.
그 모습에 선생님도 마음 아팠다면서 오늘 잘 지켜보겠다고 답을 남겨주셨다.
띡띡띡띡 딱~ 현관 비밀번호 누르는 속도가 빠르다. 아이의 조급함이 느껴진다.
“엄마, 엄마~~~~ 학교에서 꿈끼발표회한다고 자기가 잘하는 거 하나씩 발표하래요. 근데 나 뭐 발표해야 돼요?”
“음… 글쎄 뭐가 좋을까? 다른 친구들은 뭐 한다는데?”
“노래하는 친구도 있고, 줄넘기, 춤, 마술도 하고 피아노도 친대요. “
“우와~ 친구들이 잘하는 게 정말 많네? 윤이도 친구들 앞에서 보여주고 싶은 거 있어?”
“아… 나 달리기 진짜 빠른데. 우리 반에서 제가 2등으로 빠르거든요. 근데 교실에 어떻게 보여주지?” 아이의 아쉬움 섞인 탄식이 나온다.
“그러게. 달리기 진짜 빠르다. 어떻게 그렇게 빨리 달려?”
윤이는 신이 나서 지난번 점심시간에 친구들과 했던 달리기 시합을 나에게 중계해 준다.
내 생각에 달리기 2등은 그냥 2등인데 아이는 이번에 1등과 거의 비슷하게 들어와서 다음에 다리 힘을 더 기르면 자기가 1등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흥분하며 말한다.
그러더니 자기는 그림도 잘 그리고 게임도 잘하고 웃긴 얘기로 친구들 사이에 인기가 많고, 태권도도 잘한다며 들떠서 이야기를 이어간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윤아, 네가 그림을 잘 그린다고? 사람을 졸라맨처럼 그리던데… 색칠을 꼼꼼히 한다는 걸 그림을 잘 그린다고 생각하는 건가…?‘
아이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윤이가 자신에게 주는 점수가 후하다는 걸 알게 됐다. 이점은 다행스러웠다.
“맞지 맞아~ 윤아, 너 태권도 발차기 할 때 정말 멋지던데 그걸 발표하는 건 어때? “
“어, 맞다. 엄마, 나 태권도 학원에서 발차기 진짜 높게 해서 관장님하고 사부님한테 칭찬받았는데 “
싱글벙글한 윤이는 태권도 품새를 하나씩 구호와 함께 더듬어가며 내 앞에서 힘차게 보여준다.
“윤아, 근데 이번에 친구들 꿈끼 발표하는 거 정말 좋은 거 같아. 다른 친구들이 뭘 잘하는지 이번 기회에 자세히 알 수 있잖아. 친구들도 네가 태권도 잘하는 것도 알게 되고. “
나는 꿈끼발표회를 통해서 윤이가 친구들 앞에서 자신감을 충전했으면 싶었다.
”윤아, 엄마는 친구들이 서로서로 잘하는 걸 칭찬해 주고 응원해 주는 거 참 좋은 것 같아. 서로가 잘하는 게 조금씩 다르지만 누구나 잘하는 거 하나씩은 분명히 있으니까. “
“엄마~. OO은 나보다 발차기는 잘 못하거든요? 근데 줄넘기를 정말 잘해요. 얼마나 잘하는지 다른 친구들 다 줄에 걸려 넘어졌는데 혼자서 계속 줄넘기를 한다니까요. OO은 달리기는 못하는데 발표는 우리 반에서 제일 잘해요.”
“그래 맞아. 서툴고 느린 것도 있지만 자세히 보면 다른 사람보다 잘하는 게 하나씩은 다 있어. 그걸 발견하고 칭찬해 주는 게 친구야. 윤이도 지금 글 읽는 게 서툴고 느리지만 분명 이렇게 잘하는 게 있잖아?”
“엄마, 난 달리기랑, 게임도 잘하고 친구들도 잘 웃기고 태권도도 잘하는데… 한글은 너무 어려워요. 근데 그걸로 친구들이 자꾸 놀리는 건 싫은데…”
“윤아, 이번에 꿈끼발표회하고도 친구들이 놀리면 이렇게 말해 봐. 누구나 다 잘하는 것과 조금 못하는 게 있어. 네가 잘하는 것과 내가 잘하는 것이 다른 건 당연한 거야. 그걸로 친구를 놀리는 건 좋지 않아. 나는 책 읽는 게 느리지만 곧 좋아질 거야. 그것 말고도 나는 잘하는 게 많아. 이렇게”
아이는 잠시 골몰하더니 씩씩하게 말했다. “엄마, 나는 글씨는 잘 몰라도 잘하는 게 엄~~청~~ 많으니까 괜찮아요”
나는 아이에게 “오~~ 멋진데~~” 하며 쌍따봉을 힘차게 들어 보였다.
그날 밤 태권도 품새 연습하다 곯아떨어진 윤이의 얼굴을 보며, 네이버 검색창을 열었다.
”1학년 꿈끼발표회 준비 추천“이라는 검색에 나열된 수많은 글 중에 “동시 낭독”이라는 답글에 눈길이 멈췄다.
‘윤이도 내년에는 꿈끼발표회에서 자신이 쓴 동시를 읽는 날이 올까?‘
천천히 가더라도 마음이 급한걸 아이에게 들키지 말아야 한다고 수없이 되새기던 나였지만 지금 이 시점에 너무 큰 꿈인가 싶어서 마음이 조금 아려왔다.
윤이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한 말인 “네가 잘하는 것과 내가 잘하는 것”은 사실 윤이가 다른 또래와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 나한테 들려주는 말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