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는 교육청에서 지원해 주는 바우처 카드로 아동발달센터에서 한글의 기본 구조와 발음에 대해 배웠다.
한껏 긴장한 상태로 학교 생활을 하고 하교 후 숨 돌릴 틈 없이 아동발달센터로 이동해야 하는 날에는 윤이의 표정이 한층 더 굳어있었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 지난번 배웠던 자음과 모음을 소리 내 읽어보는 게 우리의 루틴이었다.
목구멍 속으로 기어들어가는 윤이의 자신 없는 목소리를 들을 때면 나는 윤이가 글자를 통으로 외워서 하는 건지 정말 소리를 배운 건지 늘 알쏭달쏭했다.
오늘은 그 궁금증을 못 참고 “윤아, 이거 무슨 글자인지 알아? 어떻게 소리 내는 건지 기억나?” 재차 물었다.
“엄마, 알아…. 안다고요…” 아이는 짜증 섞인 말 한마디를 던지고 내 얼굴을 피해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어… 미안…”. 차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싸늘해지고 나는 내 주책맞은 입을 원망하며 입을 꾹 다물었다.
아이가 수업하는 동안 나는 꼼짝없이 작은 의자에 앉아 대기한다. 뭐가 그리 생각이 많은지 손에 책은 들고 있는데 눈에 글자가 들어오지 않는다.
괜한 휴대폰만 만지작 거리며 눈으로는 교실 문을 힐긋거리다 문이 열리는 기미가 보이면 잽싸게 그 앞으로 달려간다. 마치 이곳에서 너를 응원하며 망부석처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사실 마음은 늘 그랬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거라곤 그저 믿고 기다려주는 일뿐)
나는 아이를 살포시 안아준 후 머리를 쓰다듬으며 “오늘 어땠어? 어렵진 않았어? “ 묻고는 얼른 아이의 표정과 눈빛을 살핀다.
누구보다 글씨를 빨리 배우고 싶은 건 아이라는 걸 알기에 다그치지 않으려 애쓴다. 윤이에게 조급함을 들키지 않으려 날마다 최선을 다한다.
어려웠던 한글 수업이 끝나면 바로 인지수업과 미술수업이 있고 다른 날은 미술 대신 체육 수업이 있다.
윤이는 이 날만 기다린다. 체육시간에 남자 선생님과 힘차게 뛰놀다 보면 늘 이마의 머리카락은 흠뻑 젖어있고 얼굴을 볼연지를 그린 것처럼 발그레하다.
나는 그 모습이 참 좋다. 윤이가 근심이나 긴장 없이 가장 어린이다운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인 것 같다.
바우처 지원이 끝나고 우리는 집 근처의 소아과병원과 함께 있는 아동발달센터에 다니게 됐다. 학교 엄마가 윤이의 상태를 듣더니 이곳에서 체계적으로 배우면 더 좋아질 거라고 알려준 덕분이다. 본인 아이도 그곳에서 사회성에 대해서 배우고 있고 실비보험이 있으면 치료비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도 알려주었다.
요즘 여러 가지 이유로 학습과 사회성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 많이 있어서 부모들이 조기에 발견해 빨리 치료받는 추세니 전혀 숨길 일이 아니라는 것도 내게 말해줬다.
하지만 나는 윤이가 본인을 “난독증”이라는 프레임에 가두는 게 싫어서 그 단어는 일부러 알려주지 않았다.
그저 남들보다 한글 읽는 게 조금 느릴 뿐이라고. 누군가는 달리기가 느리지만 넌 한글이 느린 거라고. 그렇게만 말해줬다.
달리기 연습하듯 한글도 연습하면 곧 읽게 될 거라고. 사실 그때까지 윤이가 난독증을 극복할 거라는 확신은 나조차 없었다.
이렇게 시간이 흘러서 고학년이 되면 수업을 못 따라가다 결국 특수반에 가야 되는 건 아닐까 두렵고 겁이 났다. 아이의 삶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지는 그야말로 엄청난 재난 같았다. 하지만 난 나의 이런 불안을 아이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부모의 눈빛이 흔들리는걸 아이는 쉽게 눈치챌 것이기에 늘 씩씩해야 했고 당당해야 했다.
일주일에 세 번 학습치료를 받고, 그중 하루는 학습지 선생님과의 한글을 하고 나면 아이는 이미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그래서 나는 따로 시간을 내 한글 공부를 시키지 않았다. 그냥 하루에 한 번 정도로만 전날 배웠던 학습지 단어를 소리 내 읽어보게 하는 게 다였다.
그 대신 윤이가 좋아하는 그림책 한 권을 매일 반복해서 아이가 원하는 만큼 몇 번씩 읽어주었다.
초등학교 1학년 수준에는 너무 간결하고 유치한 스토리의 유아용 그림책이었지만 괜히 초등 1학년 권장도서를 읽어주는 욕심 같은 건 부리지 않았다.
아이가 그림만 봐도 그 내용이 뭔지 떠오를 만큼 우리는 같은 책을 지루하다시피 반복해서 읽었고 그 결과는 몇 달 만에 빛을 발했다.
윤이가 내가 읽는 문장의 다음 대사를 더듬거리며 읽으려 했다. “고… 공.. 아, 거기 서..” 이 짧은 한 문장을 읽는 데에도 주춤거리는 윤이의 입술과 눈동자를 보며 대견하기도 하고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나는 “우아~ 윤이 대단하다. 윤이가 혼자 엄마 도움 없이 글자를 읽었네. 맞아 맞아. ‘공아, 거기서…’ 이렇게 쓰여있는 거야. “
나는 책을 반복해서 읽을 때 일부러 윤이가 읽었던 문장은 바로 읽지 않고 한 템포 쉬었다. 그러면 윤이는 스스로 더듬더듬 그 문장을 소리 냈다.
우리는 연극배우가 대본 리딩하듯 책에 나오는 대사 부분을 서로 주거니 받거니 읽었다.
윤이는 날이 갈수록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고 자신감을 얻었다.
그렇게 한 두 달이 더 흐르니 아이는 긴 문장도 더듬거리며 읽어보려 했고 짧은 문장을 늘어진 테이프처럼 읽어갔다.
중간중간 단어를 다르게 읽거나 조사를 빼먹고 읽거나 서술어를 마음대로 바꿔 읽었지만 아이는 글을 스스로 읽고 있었다.
그때 아이가 잘못 읽은 단어를 그게 아니라고 틀렸다고 바로바로 잡아주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누르는 게 쉽지 않았다.
아이가 단어를 틀렸을 때 바로 지적하니 더 이상 읽기를 멈추고 입을 닫아버리는 성향이라는 걸 파악한 뒤에는 틀려도 시간이 오래 걸려도 끝까지 들어주는데 주력했다.
윤이가 문장을 다 읽으면 “어, 잘 읽었어. 이제 엄마가 한 번 더 읽어볼게. 엄마가 맞나 틀리나 윤이가 눈으로 따라 읽으면서 체크해 줘. 만약 엄마가 틀리게 읽는 거 있으면 윤이가 알려 줘.”. 이렇게 말하며 문장을 읽어 나갔다.
나는 일부러 윤이가 틀린 부분을 더 강조해서 천천히 다시 읽어주었고 아이는 눈으로 그 글자를 다시 머리에 새겼다.
가끔은 내가 일부러 조금 다르게 읽고 윤이가 바로 잡아주는 선생님 역할을 하게 했다.
아이는 내가 틀리길 기다렸다는 듯이, “엄마, 그거 그렇게 읽는 거 아닌데.”. “동그라미가 가득했지요가 아니고 가득했…어… 요. 이게 맞아요. 엄마가 글자 하나를 잘못 읽었어요. 자세히 봐요~” “아… 이런… 정말이네. 나는 그냥 ‘가득했…’까지만 읽고 그 뒤에는 그냥 ‘했지요’가 쓰여있을 줄 알았는데. 앞으로 끝까지 단어를 잘 읽어야겠다. 알려줘서 고마워~”
우리의 책 한 권 독파하기는 그 후로도 한참을 더 이어져 겨울이 다가올 때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어느 날 윤이는 학교에서 “친구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라는 모둠 활동에서 우리가 함께 읽었던 “동그라미 꿈”이라는 책을 소개했다고 했다.
윤이 손에 들려진 종이 접기로 만든 작은 책자에 앙증맞게 그려진 보름달을 껴안은 강아지와 비뚤게 쓰인 “동그라미 꿈”이라는 단어는 나를 벅차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아이는 어느새 혼자 책 제목을 선생님께 묻지 않고도 쓸 수 있게 됐다.
그걸로 됐다.
책 줄거리를 아무것도 못 썼어도, 추천이유를 문장으로 쓰지 못한 채 빈칸으로 비워뒀어도 나는 그걸로도 충분히 감사했다.
이게 시작이라는 걸 믿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