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독 86일차]변화시킬 수 있는 존재, 마법의 문

[새벽독서] 김주환 <내면소통>, 김창완 <이제야 보이네>

by 윤서린

김주환 교수의 <내면소통>을 읽는다.

오늘은 드디어 제4장 [내가 나를 변화시킨다는 것]을 읽었다.

그중에 "내가 나를 변화시키는 것이 가능한 이유"를 정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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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내가 나를 변화시킨다'라고 했을 때, 주어의 '나'와 목적어로서의 '나'는 동일한 존재인가? 다른 존재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할 수 있어야 왜 '내면소통' 훈련이 필요한지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나는 나 자신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왜냐하면 '나'는 자기 동일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즉'나'라는 존재는 하나의 실체가 아니며 여러 구성요소로 이뤄진 복합체다. (...) '나'는 하나의 실체가 아니라 여러 다양한 실체의 복합물이다. 게다가 이러한 여러 실체가 끊임없이 상호작용 하며 살아 움직이는 존재다". (156면)


'자아'는 '지속적인 스토리텔링 그 자체'다. (156면)


"삶의 본질은 이야기로 이루어지는 일화기억 그 자체다. 자아(self)라는 것 자체가 이야기를 통해 자기 자신을 스스로 구성한다. (...) 강렬한 감정이 일어나는 배경에는 대게 극적인 이야기가 있기 마련이다. 의식은 다양한 경험들을 하나의 플롯으로 만들어서 의미 있는 사건으로 구성해 낸다. 의식의 본질은 이러한 '플롯 만들기(emplotment)'에 있다. ". (157면)


'나'라는 실체는 주어로서의 나(I)와 객체로서의 나(me, self) 사이의 끊임없는 소통 과정 그 자체이므로 나는 나와의 내면소통의 방식과 내용을 바꿈으로써 얼마든지 '나'를 변화시킬 수 있다. 주어로서의 나(I)는 객체로서의 나(self)를 변화시킬 수 있다."



김창완 산문 <이제야 보이네>를 읽는다.


잠깐잠깐 들었던 라디오 속의 김창완 아저씨의 노곤하고 따뜻하고 뭔지 모를 무기력한듯한 초월, 해탈(?)의 감성을 이 산문집을 통해 조금씩 더 알아가는 느낌이다.


오늘은 [그 초라한 청춘의 시계]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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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는 금붕어처럼 기억이 나쁘다고 한다.

30년이 다 되는 연예 활동도 그저 희미한 기억들뿐이라고.


"한밤중에 산길을 돌아가는 자동차 불빛처럼 기억은 잠시 빛이 닿는 곳만 환하게 드러나다 그나마 불빛이 지고 나면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46면)


아저씨는 자신의 이러한 기억력 때문에 '나의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문이 없다고 한다.

자신을 '추억이 없는 사람'이라고까지 말한다.


대학 졸업 후 취업이 어려웠던 청년 김창완은 세 평 남짓한 골방에서 지낸다.

대문을 열고 나갈 때는 '희망'이었지만 집에 돌아와 빗장을 잠글 때는 '절망'이었다는 아저씨의 청춘.


"나는 얼마나 무력한 인간인가"

(47면)


"아직은 대낮. 마당에 있는 화장실 문에 달린 유리창에서 반사된 태양 빛이 조롱당하는 희망처럼 내 어두운 방 벽에 거울 놀이를 하고 았었다. (...) 나는 작은 손거울을 들고 마당에 나가 내 방에 빛을 비춰 보았다. 내가 나에게 보낸 희망의 빛이었다. 그 작은 거울은 해시계가 돼주었다.". (47면)


아저씨가 보낸 희망의 빛은 암실 같았던 아저씨 방 전체를 시계로 변화시킨다.

그 초라한 청춘의 시계는 아직도 선명하게 "비밀의 방"에 각인되어있다고 한다.

아저씨는 힘들고 어려울 때, 작은 손거울을 통해 만들었던 희망의 빛이 아른거리는 청춘의 한 때를 떠올려본다고 한다.


누군가의 산문을 읽는다는 건 이래서 좋다.

그저 뿌옇게 보였던 어떤 사람의 형체가 안개가 걷히듯... 그 실루엣이 점점 선명해져 내 안에 들어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쓸쓸한 감성을 가진 이들의 글을 읽으면 내 어린 시절이 떠올라 잠시 과거의 나로 돌아가본다.


오늘은 수업시간에 몰래 필통 속 거울을 교실 천장에 비춰보던 학창 시절로 돌아가 본다.

그때의 나는 반사된 거울 속 빛이 나를 또 다른 세계로 데려다줄 마법의 문처럼 느껴졌다.

엘리스가 토끼굴에 떨어져 새로운 모험을 하듯이, 지긋하고 무료한 나의 어린 시절을 판타지동화 속으로 데려가줬으면 하던 기대감.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나는 선생님 몰래, 아이들 몰래 교실 천장과 벽, 때론 친구의 등에 마법의 문을 만들었다.

그리고 잠시 멀리멀리 나만의 여행을 떠났다 돌아왔다.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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