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 한다"의 또 다른 의미

[읽고 쓰는 삶 232일 차] 잉그리드 고돈, 톤 텔레헨 <해야 한다>

by 윤서린

어른들은 자신을 위해 그림책을 읽어야 할까? 요즘은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 시장이 커지는 것 같다.

삶에 지쳐 긴 문장을 읽어 내기 어렵다면 짧은 글과 그림으로 숨 고르기 하듯 책장을 넘겨보는 것도 좋다.


우연히 온라인 서점에서 장바구니에 책을 담다가 연관 추천으로 뜬 책이다.

책 제목의 강렬함에 무슨 책인지 내용도 보지도 않고 주문했었다. (가끔 이런 우연성으로 내 손에 들어오는 책을 만나는 게 요즘 하나의 즐거움이다. 평소 내가 읽지 않을 것 같은 책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기쁨이랄까)


아침에 택배를 열어보니 몇 권의 책 아래 다소곳이 깔려있는 커다란 책이 보인다.

순간 그림책(?), 맞다. 여간한 책 두권 합친 크기에 글과 그림이 있다.

휘리릭 넘겨본다. 얼핏 몇 문장만 읽어봐도 어린이 전용 그림책은 아니다. 어른을 위한 그림책이다.

그림도, 글도 왠지 심오하다.

후반에 제발 미소 짓는 표정이 하나라도 나왔으면 싶은 쓸쓸한 그림체다.


잉그리드 고돈 그림, 톤 텔레헨 글, <해야 한다>


책은 "해야 한다"가 주 내용이고 가끔 "말아야 한다"가 등장한다.

첫 장부터 게으른 완벽(?) 주의자인 나를 겨냥한 글이 나온다.




해야 한다. 나는 이제 시작해야 한다.

내 맞은편 벽에 걸린 액자에는 굵은 글씨로 이렇게 쓰여있다.

시작해! 지금!

나는 나에게 자주 그렇게 요구하고, 명령하고, 그래도 하지 않으면

'제발 부탁인데 시작해 줘'하고 매달린다. 내가 절대로 안 하려는

일을 나 자신이 할 수 있도록 설득하듯, 사람들은 다 시작했는데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내가 마치 고집쟁이라도 된 것처럼.

보통은 내가 결국 포기를 하고 이렇게 생각한다.

'알았어. 하지 마! 알아서 해. 나는 손 뗄 거야.'

그런데 갑자기, 전혀 생각하지 않았을 때 내가 시작한다.

드디어 내 저항이 무너진 것이다.


늘 해야 한다고 다짐하지만 미루게 되는 것들이 있다.

나에게는 집안 정리가 그렇다.

밖에서 일할 때는 모든 것이 제자리에 열 맞춰 정돈되어 있어야 직성이 풀린다.

그런데 집에서는 온갖 잡다한 것들이 쌓여서 넘친다.

내 책상만 봐도 도둑이 들어서 다 뒤집어 놓고 간 것 같다.


나름 내 기준에 따라 어지러 놓은 거라서 나는 큰 불편이 없다.

찾을 때 시간이 좀 걸릴 뿐.

하지만 내 책상을 보는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고, 그런 그들을 신경 쓰느라 나도 스트레스를 은근히 받는다.

내가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어질러진 내 책상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이다.

그래서일까 일종의 반항심으로 책상을 치우지 않고 내버려 둔다.

그러다 드디어 어제 책상을 치워야겠다는 마음을 실행으로 옮겼다.

내 안의 고집쟁이가 드디어 항복한 것이다.


마음은 한 달 전에 먹었는데 이제야 시작한다.

책기둥을 무너뜨리겠다고 글에 선언한 뒤 내 마음이 작동한 것일까?

아니면 드디어 "내 저항이 무너진 것"일까?




해야 한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주저한다. 둘 다 선택하면 안 되나?

이것을 하긴 하는데 동시에 안 하겠다고?

아니면 아예 열 가지 선택을 : 이걸 하고, 즉시 하고,

그리고 바로 하고, 그리고 조만간 하고,

다음번에 하고, 시간이 있을 때 하고,

그리고 기회가 생기면 하고, 어떻게든 하고,

그리고 분명히 하고, 그리고...

나는 지금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결국 안 한다.


아이쿠 이런, 그림책으로 뼈를 맞으니 더 아프다.

나의 문제점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

시작하기에 앞서 오만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하고 미루고 미루다 "결국 안 한다"가 되어버린 나.

이 책이 지금 나한테 온 이유가 이것일까.

이제 정신 좀 차리라고.




나는 또 뭘 해야 한다.

또 나는 또 나는, 지긋지긋한 나...

내가 없는 세상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써있는 세상이 있다면 :

태초에 내가 있었다.

그리고 그 후에는 영영 사라졌다.


그리고 온순한 말벌이 있는 세상이 있으면 좋겠다.

여름이면 손바닥에 앉아 아주 조심스레

내 손가락에서 딸기잼을 핥아먹는 말벌이.

아니, 쏘지 않아요.

쏠 줄도 몰라요...

마음 놓아요.

하지만 온순한 말벌은 없다.

그리고 나는,

나는 또 뭘 해야 한다.


책을 넘기다 "해야 한다"라는 말의 두 가지 의미를 알아가게 된다.

그림책은 이 둘을 나란히 줄 세우고 읽는 이에게 질문을 던진다.

정말 '해야 하는 것'과 '해야 하기에 해야 하는 것'.

당신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고 어떻게 살고 싶냐고 묻는다.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들 중에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일도 있다.

하지 말라고 하는 것들을 하고 싶어지는 마음도 든다.



해야 한다. 나는 변해야 한다. 더 착하고,

상냥하고, 자유롭고, 진지하고, 균형 잡히고,

정직하고, 솔직하고, 엄격하고, 지혜롭고,

침착하고, 인내심 있고, 주의 깊고...


이상하다. 온갖 좋은 말을 다 쓰여있는데.

나는 그렇게 하기 싫다는 마음이 꿈틀거린다.

그냥 나는 나이면 안되는 걸까?

모든 면에서 더 나은 내가 되어야 하는 걸까?

작가는 "해야 한다"라고 말속에 '과연 해야 할까'라는 물음표를 숨겨 놓은 것 같다.



나는 나 자신이어야 한다.

거울을 들여다볼 때 나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거기 너!"가 아니라

"여기 나."라고.


기다리던 문장이 나온다. "나는 나 자신이어야 한다"

작가는 그림책 중간을 넘어가면서 이 문장을 드디어 내 앞에 내어준다.




해야 한다. 나는 침묵해야 한다. 배우들과 무용수들과

무대 장치와 조명 담당이 리허설을 하고 있다.

"무슨 작품이에요?"

"죽음이에요."

"원작 그대로인가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제 조용히 해주세요."

나는 문을 닫고 나온다.

점점 커지는 탄식 소리가 들리고,

깊은 한숨 소리와 가뿐 숨소리도 벌 갈아 들린다.

3막이다.

나는 귀를 문에 대고 엿듣는다. 이제 그들은 함께 의논을 한다.

연출이 그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 감독은 당황한다.

그들은 감독을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들은 흥분한 얼굴로 밖으로 나온다.

"이젠 안 되겠어." 그들이 말한다.

이제 그들은 '삶'을 공연하기로 한다.

배우가 한 명뿐인 짧은 단막극이다.

그리고 나에게 그 배역을 맡을지 묻는다.


이 책은 그림책의 형식이지만 그 안의 내용은 삶과 자신에 대한 고찰이다.

나는 이 글에서처럼 짧은 단막극의 주인공이다.

어떤 식으로 자신의 삶을 연출하고 감독하고 연기할지 내가 선택한다.

"해야 한다"의 숨은 의미를 스스로 묻고 찾아가며 오늘도 삶이라는 연극의 새로운 장면을 연출해 본다.

평점 별 다섯 개짜리 연극이 아니더라도 꾸준히 막을 올리자.

그렇게 평범하게 이어지는 이야기들이 바로 우리의 삶이니까.

빈칸의 별들을 하나씩 나만의 빛으로 색칠해 본다.

이 완연한 가을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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