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쓰는 삶 298일 차] 안규철 <사물의 뒷모습>
새로움이라는 말이 더 이상 새로움을 지칭하지 못할 때 우리는 그 죽은 말을 버리고 다시 그것을 대체할 새 단어를 찾아야 한다. 실현되지 않는 텅 빈 구호로 소모되다가 버려지는 무수한 말들의 폐허 속에서, 예술은 오히려 말을 아끼는 법을, 차라리 침묵하는 법을 배워야 할지 모른다. 말과 말 사이의 여백, 침묵은 아직 훼손되지 않은 유일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_ 안규철 <사물의 뒷모습> 중 “말들의 폐허에서”
사람들이 ‘사랑’이라는 단어를 고귀하게 여기면서도 그 말의 무게에 짓눌리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바로 ‘사랑’이라는 단어와 ‘영원하다’는 단어를 한 묶음으로 이해하는 세상의 공식에 자신의 감정을 끼워 맞추기가 어려워서가 아닐까.
‘사랑 = 영원’, 이 명백한 세상의 공식에 나는 의문이 든다.
그 이유는 내 마음속 어느 구석에 ‘영원한 건 없다’라는 명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나는 누군가에게 ‘사랑’이라는 단어를 선뜻 내놓기가 힘들다. 그 말을 뱉는 순간, ’영원히‘라는 단어로 그 ‘사랑’을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할 것 같아서. 그렇다면 사랑이라는 단어 뒤에 ‘순간’이라는 단어를 붙여보는 건 어떨까.
‘사랑 = 순간’, 이제야 좀 숨통이 트이는 것 같다.
지금 이 순간에 드는 ‘사랑’이라는 감정, 그것에 오롯이 집중하는 것, 어쩌면 내게 사랑의 공식은 자유롭게 변주되는 악기들의 연주다. 매우 즉흥적인 상황 속에서 내 감정을 쏟아내면서도 다른 사람들의 감정과 합을 맞춰가는 재즈연주 같은 것.
‘사랑’의 사전적 의미 중 두 번째에 주목해 본다.
사랑이란 ‘다른 사람을 아끼며 위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 또는 그런 마음을 베푸는 일’. 이 뜻대로라면 나는 이 겨울, 기꺼이 기존의 사랑의 공식이 써진 악보를 던져버리고 그 누구와도 새로운 ‘사랑’의 합주곡을 연주할 준비가 되어있다.
‘사랑 = 순간’이라는 공식에 ’순간‘과 ’순간‘이 쌓여 ’ 영원‘이된다는 공식을 추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