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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라노 Jul 08. 2018

#일상의 편린들

"간직하고 싶은 너의 생각들" 

나보다 어리다고 해서 그 사람이 나의 어제를 사는 게 아니더라. 
같은 오늘을 그저 다른 나이로 살아갈 뿐.
- 하상욱 시인, SNS (2017. 11. 5.)



얼마 전 친한 과외선생님을 만나 어떤 학생 A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A는 총명하고, 재주가 많은 아이고, 어른인 본인이 보기엔 마냥 예쁜데, 친구들 사이에서는 인기가 별로 없다고 한다. '잘난척 한다'는 이유에서다. 유복한 인텔리 집안의 외동아들인 그는 공부하면서도 자주 음악을 듣고 가끔 따라부르기까지 한다. 외로움을 달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본인에게 설명까지 해서 제지하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요새 원하는 고등학교에 진학할 기회를 잡지 못하게 되어 매우 상심해 있던 터였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이 공부하던 학생 B는 A가 공부하면서 부르는 노래를 몰래 핸드폰으로 녹음했는데(아마 A를 따돌리는 다른 애들과 돌려 들으며 A를 놀릴 요량이었던 것 같다), A가 그 사실을 알고는 불 같이 화를 내며, '네가 그러니까 이따위로밖에 못사는 거야' 등등 인신공격에 가까운 말들을 쏟아냈다는 것이다. 그 선생님은 저 귀여운 아이 속에 어쩜 저런 뜨거운 분노가 숨어 있었는지 한편으로는 너무 놀라고, 한편으로는 너무 안타까웠다고 했다.

 



내가 좋은 독자였다면, 'A가 억누르고 있는게 많았나봐요' 등등 그 선생님의 느낌을 공감해 주는 것에서 시작했을텐데, 이상하게 나는 'B라는 녀석은 뭐야'라며 분노를 해버렸다. 나도 모르게 A에게 감정이입을 했던 것 같다. 나도 너무 힘든 중3 시절을 보냈고, 당시 주변 친구들에게서 외로움을 느꼈으며(나는 혼자 있을 각오가 없어서 잘난 척을 하지 않았고, 피상적이고 허울 뿐인 관계들은 유지했지만, 나에게도 그들에게도 큰 의미가 없는 '붙어있음'이었다), 중학교 시절 애들이 돌려가며 누군가를 따돌리면서 따돌림에 적극적으로 참가하거나 방조하도록 둘 중 하나의 선택지를 주는 상황도 너무 싫었다. 별 것도 아닌 약점을 잡아 계속 놀렸던 것도 분노할 만한 거리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진절머리 나게 싫었었다. 


동시에 A를 응원하고 싶었다. 그 아이는 날 알리 없지만, 또 내가 생각한 모습이, 내가 생각한 성격의 아이가 아닐 수도 있지만 그래도 응원하고 싶었다. 아마 어려운 중학교 3학년 시절을 보냈던 나를 응원하고 싶었던 걸까? 공부를 잘하는 것만으로도 무슨 말만 하면 잘난 척으로 치부해 버리고, 같이 친하게 지내다가도 다음 날이면 누군가를 표적으로 잡아 따돌리던 당시 클래스메이트들이 떠올랐다. 연예인 얘기나 친구들, 선생님 험담이 아니면 함께 할 수 있는 대화거리도 없었던 시절,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나는 친구들이랑 대화하는게 마치 보고서 작성하는 것처럼 부담스러웠던 날들이 있었다. 나는 그 상황을 타개하고 싶어 고등학교 만큼은 다른 곳으로 가겠다고 굳은 각오를 했었더랬다. 나를 알아봐 줄 수 있는 친구들을 만나서 보다 수준 높고, 교양 있는 대화를 할 수 있는 곳, 가르침에 의욕이 있고, 학생의 질문을 두려워하지 않는 선생님들이 계신 곳으로 가겠다고. 그리고 다행히 내가 원하는 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고, 지금까지 십수년간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소중한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아이는 그 기회를 눈 앞에서 놓쳐 버린 것이다. 


응원하고 싶다, 적어도 '나도 그 시절 정말 힘들었다, 얼마나 힘든 줄 다 안다고는 말 못하겠지만, 그래도 네가 잘 버텨내길 원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던 와중 하상욱 시인님이 그런 내 마음에 마치 일침이라도 가하듯, 저 글을 게시했다. 허허. 맞아. 같은 오늘을 살아가는 늙고 젊은 동지일 뿐.. 내가 '그 시절에는 그랬다' 등의 이야기를 해주는게 하등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 그냥 나이 든 사람이 으레 젊은 사람에게 의미 있으려니 하고 해주는 흘러가는 말에 불과할지도. 어쩌면 그냥 꼰대처럼 보일수도! 


근데 그래도, 내가 더 잘 안다고 생각해서 하는 말은 아니고, 지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그런 마음 하나 없이 그냥 응원하는 마음을 보내는건 괜찮지 않을까?


A군, 응원해. 멋진 인생을 살자. 그런 외로움이나, 그런 굴욕에 지지 말고. 좋은 인생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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