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아서 즐기는 커피 한 잔의 여유
일과 삶 작가님이 리드하시는 "나를 찾아가는 글쓰기" 2기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1) 꾸준히 글은 쓰고 싶었고, (2) 나 스스로에 대해서도 좀 더 깊게 이해해 보고 싶었던지라 마음의 여유가 없음에도 일단 신청하고 말았는데.. 신청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좀 더 나와 깊게 만나는 시간을, 반강제적으로 갖게 되는데 그렇게라도 자신과 마주 앉아 대화할 수 있어서 참 좋았다. 1주차 주제는 <나의 행복한 순간>.
https://brunch.co.kr/@worknlife/262
일과삶님이 첫 번째 과제를 내주시면서 카톡으로 글쓰기 일주일 전부터 행복을 느끼는 순간에 메모를 해보라는 조언을 해주셨다. 소소하지만 분명한 행복의 순간들에 대한 기록이 6개가 쌓였다. 기록해 보고 알았다. 나는 생각보다 더 사소한 일에, 더 자주 행복했다는 것을. 그중 한 순간을 이렇게 나눠보고자 한다.
6/3 월요일 오후 1시, 오전 살림을 예정대로 착착 끝내고 먹는 달달한 커피 한잔
(그 전날 응급실 다녀온 천식환자 중 나만큼 오늘 오전 잘 보낸 주부 없을 걸?)
이번 주 일요일은 힘들었다. 그동안 밤에 잠을 못 자서 쌓였던 피로 때문이었는지, 오랜만의 마트 외출에 기관지가 놀랐던 탓인지 천식이 심해졌다. 숨을 쉴 때마다 쐐액쐐액 쇳소리가 나고 폐와 횡격막이 조여왔다. 응급실에 가서 호흡기 치료를 받고 약을 받아왔다. 의사는 입원을 권했지만, 24개월 된 큰 아들과 신생아인 작은 아들을 혼자 보고 있을 신랑을 생각하면 도저히 그럴 수는 없었다. 저녁 8시에 응급실에 갔는데, 돌아와 보니 밤 10시 30분이었다. 우울함과 부채감, 그리고 다음 날에 대한 걱정을 안고 잠이 들었다. 엇, 그런데 약이 잘 들었던 모양이다. 월요일 새벽에 수유를 하려고 잠에서 깼는데 숨이 자연스럽게 쉬어졌다! 아침 8시에 일어났을 때는 오히려 아프기 전보다 몸이 가벼웠다. 큰 아이 아침밥을 먹이고 어린이집에 보냈다. 오뎅국에 만두에 두부까지 챙겨서. 전날 아팠던 사람 치고, 살림에 서툰 사람 치고, 나 참 잘하잖아? 왠지 으쓱한 기분이다.
이제 오전 살림 두 번째 루틴을 시작한다. 작은 아이가 깨지 않게 조심조심, 큰 가구부터 소파 위로 올리고, 식탁의자는 차곡차곡 포개서 다용도실로 밀어둔다. 무선청소기를 돌린다. 무선청소기가 먼지 청소를 하는 사이, 세탁기에서 어른 빨래를 꺼내고 아이 빨래를 손빨래 모드로 돌려놓는다. 꺼낸 어른 빨래를 갠다. 이때 수건 하나를 개서 엉덩이 밑에 깔아둔다. 그러면 허리가 구부정해지지 않고 정자세를 유지할 수 있다! 둘째 아이 상태를 체크해본다. 오늘은 모처럼 푹 잠들어 있다. 이런 날에는 설거지를 한다. 아이 설거지를 먼저 하고 소독기를 돌려둔다. 그다음은 어른 설거지. 요새는 설거지할 때 그릇을 닦은 후, 싱크대 구석구석의 물때와 기름찌꺼기도 잊지 않고 닦는다. 마지막으로는 과탄산소다와 구연산 등등 뭔가 4가지 성분이 다 들어있다는 표백제에 행주를 담가 놓은 후 뜨거운 물을 부어 조물조물해둔다. 이따 커피 마시고 깨끗이 빨고 짜서 널어둬야지.
잠깐 엉덩이를 붙일 짬이 난다. 어제 인터넷으로 슥(!) 주문해 둔 스타벅스 모카 프라푸치노(병제품)을 꺼낸다. 텀블러에 3/4 쯤 붓는다. 얼려놓은 얼음을 네 조각, 저지방 우유를 반 컵을 더 넣어서 살짝 연하게 만든다. 크으, 이 달고, 적당히 싱겁고, 차가운 맛! 최고다. 식탁의자에 앉아 다이어리를 한 번 더 체크하고, 노트북을 켠다. 나에게 주어진 15분의 휴식시간이다. 보통 15분 이상 되면 둘째가 깨기 때문에 이 꿀 같은 순간을 충분히 누려야 한다.
집안살림 만큼은 정말 하고 싶지 않았다. 열심히 하면 표가 나지 않고, 안 하면 티가 엄청 나는 일이다. 손해보는 장사라고 생각했다. (축구로 따지면 골키퍼 같다. 스트라이커는 골을 넣으면 칭찬 받고, 안 넣어도 그만이지만 골키퍼는 한번 먹히면 욕 먹고 막아도 본전이다.) ‘가정주부는 진짜 하지 말아야지, 돈 많이 벌어서 살림은 최대한 아웃소싱 줘야지.’하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인생이 어디 마음먹은 대로만 되던가. 돈은 사람 쓸 만큼 많이 못 벌었고, 육아휴직 중 집에서 살림 안하고 아이만 본다는 건 불가능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살림을 조금씩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하다 보니, 의외로 할만했고, 재미도 있었다.
‘사람이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수 있나, 하기 싫었던 일도 잘해야 멋진 사람이지.’ 처음엔 이렇게 생각하고 그저 하루하루 버텼는데, 지금은 나름 즐기며 재미있게 하고 있다. 시커멓던 창틀을 하얗게 닦고 나면 지나갈 때마다 뿌듯하다. 청소기 먼지통을 빼서 깨끗이 닦아서 말려놓으면 기분이 좋다. 이런 일들, 예전에는 할 줄도 모르고 낯설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익숙해졌다. 그리고 그 게 참 기분이 좋다. ‘오, 못하던 일이었는데, 나 나름 잘하게 되었잖아? 나 참 괜찮은 사람이네, 쓸만하네!’ 이런 생각이 든다는 사실이. 오늘 나는 내가 참 마음에 든다. 그게 참,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