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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라노 Nov 13. 2020

미리 써보는 유언장

 유산이 없어서 큰 의미는 없으려나요.

한 번쯤 유언장을 미리 써두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할 일은 많지만, 아무것도 손에 잘 잡히지 않는 오늘 마음을 차분히 하고 유언장을 한번 써본다. 


1. 재산은 우리 신랑이가 애들이랑 다 쓰길. 


아직 모아놓은 재산이 많지 않아서 분배 걱정이 없다. 

내가 일찍 죽는다면 남편이 아가들 기르며 쓰기에도 부족할 테니 

다 우리 남편이 잘 알아서 쓰면 좋겠다. 


워낙 알뜰하고 아이들을 좋아하는 사람이니 크게 걱정되지는 않는다. 

나도 모르는 숨은 돈도 얼마 나올 수도 있는데, 잘 찾아 쓰기를. 아참. 보험금도. 


그리고 아이들, 부모님을 위해서만 돈 쓰지 말고.

자기 옷도 사 입고, 신발도 사신고. 홍삼도 사 먹고 소고기도 구워 먹고 그러기를. 

나 없어도 본인 건강도 잘 챙겼으면 좋겠다.  


2. 장기는 기증해 주세요. 가급적 많이요.


장기기증 의사표시를 어떻게 하는지 몇 번이나 찾아봤는데, 

실행에 못 옮겼다. 

주민등록증에 무슨 딱지를 붙이면 된다고 하던데. 


그것도 하겠지만 이렇게 브런치에도 남겨두면 가족이나 지인들이 

내 의사를 존중해 장기를 기증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고 보니 장기기증을 하려면 내 병력들도 자세히 적어야 하나?

아주 튼실하지는 않지만, 내가 살아있는 동안 

내 마음을 잘 지탱해 주며 열심히 일한 소중한 녀석들이다.

내 숨이 멎으면 흙에 묻히기보다는 다른 사람을 살리는데 쓰이길. 


3. 장례는 간소하게. 수목장이면 좋겠고.


원래 형식적인 걸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관, 장례식장 다 좋을 필요 전혀 없다. 

마지막 인사를 와주는 사람들에 대한 예우를 갖추는 정도로만 해주면 좋겠다. 

(깨끗함은 중요!)

코로나가 끝나 음식은 한술 뜨시고 가실 수 있었으면 좋겠고 

대접하는 음식은 맛있었으면 좋겠다. 


장기 기증하고 남은 내 몸은 화장해서 

가족들이 자주 놀러 가고 싶은 산이나 계곡, 바다 근처의 

어느 나무에 수목장을 해줬으면 좋겠다. 

환경친화적인 방법으로. 


그 나무가 베어지더라도, 

그 지역에 가면 잠깐 나를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 

살면서 못난 모습을 많이 보였지만,

잠깐 기억되는 그 순간에는 주변 사람들을 아끼고 사랑했던 사람으로, 

좋은 아내이자 엄마이자 딸이자 동생, 며느리, 친구로 이렇게 기억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오래 산다면, 그 순간만큼 내 사람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시간이 많기를 

내가 오래 살지 못한다면, 내가 남기고 간 기억이 내 사람들에게 힘이 되기를 

내 부재가 그들에게 너무 힘겹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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