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는 것, 그 위대함에 대하여

《노인과 바다》서평

by 티라노


창조주를 원망해 본 적 없는가? 아니면 나를 이렇게 낳아 준, 이런 환경에 태어나게 한 부모님을 원망해 본 적은 없는가? 때때로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과제들에 힘들어한다. 하지만 왜 나를 이렇게 태어나게 했는지, 이런 환경에 처하게 했는지에 대해 누군가를 원망해 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원망하며 주저앉거나 아니면 나에게 지금 주어진 것을, 내 앞의 과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묵묵히, 치열하게 해내는 것이다.


《노인과 바다》의 산티아고 노인은 늙었다. 배는 작고 낡았다. 그에게는 같이 배를 타 줄 동료도 없었고, 심지어 운마저 없었다. 장장 84일 동안 고기 한 마리 낚지 못한 그를 주변 사람들은 ‘살라오’(가장 운이 없는 사람)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는 희망과 자신감을 잃지 않고 다시 배를 타고 바다로 나선다. 상황은 여전히 좋지 않다. 왼손에는 쥐가 나서 계속 마사지를 해서 풀어주어야 했다. 생각보다 멀리 나오는 바람에 식량도 넉넉하지 않다. 그렇게 점점 먼 바다로 나아가던 중, 드디어 고기가 미끼를 물었다.


돛은 여기저기 밀가루 부대 조각으로 기워져 있어서 돛대를 높이 펼쳐 올리면 마치 영원한 패배를 상징하는 깃발처럼 보였다. (...) 두 눈을 제외하면 노인의 것은 하나같이 노쇠해 있었다. 오직 두 눈만은 바다와 똑같은 빛깔을 띄었으며 기운차고 지칠 줄 몰랐다.


84일간의 불운은 이제 끝난 것일까? 태어나서 봤던 고기 중 가장 큰 고기가 미끼를 물었다. 하지만 나이가 든 노인에게 타고 간 배(5.5미터)보다도 60센티나 더 긴 물고기를 낚는 것은 지난한 일이다. 낚싯줄을 멘 등은 마비가 될 정도였고, 쥐가 나 오그라들었던 왼손은 물론 오른손도 해파리에, 낚싯줄의 수난을 당하며 피를 흘리고 있었다. 제대로 한 숨 자지도 못한 채 3일을 버틴 노인은 가물가물해져 가는 정신을 다잡으며, 물고기에게 작살을 박아 넣는다. "모든 고통과 마지막 남아있는 힘, 오래전에 사라진 자부심을 총동원해" 고기와 사투를 벌이고 마침내 고기를 잡아낸다.


노인은 모든 고통과 마지막 남아있는 힘, 그리고 오래전에 사라진 자부심을 총동원해 고기의 마지막 고통과 맞섰다.


하지만 삶이란 얼마나 얄궂은 것인지. 노인에게 오랜만에 찾아온 행운을, 그것도 고군분투해서 가까스로 얻어낸 노인의 전리품을, 노인이 만끽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낚싯줄을 풀어주며 때를 기다린 탓에 바다로 너무 멀리 들어와 버렸기 때문일까. 작살로 잡을 수밖에 없어 피 냄새가 너무 멀리 퍼져버린 탓일까. 고기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의 냄새를 맡은 상어들이 차례차례로 습격해왔다.


이미 3일간 고기를 끌고 다니느라 기진맥진해 있고, 고기와 전투를 벌인 탓에 싸울 도구도 변변히 남아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노인은 남은 작살로, 노 두 개로, 키 손잡이로,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동원해 상어들과 다시 사력을 다해 싸운다. 노인은 가까스로 살아남았지만, 그가 목숨을 걸고 잡은 아름답고, 고귀하고, 큰 고기의 생살은 모조리 상어에게 뜯기고 말았다.


잠깐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니 가로등 불빛에 고기의 커다란 꼬리가 조각배의 고물 뒤쪽에 꼿꼿이 서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허옇게 드러난 등뼈의 선과 뾰족한 주둥이가 달린 시커먼 머리통, 그리고 그 사이가 모조리 앙상하게 텅 비어 있는 것이 보였다.


삶은 살아가는 이에게 버거운 과제를 계속 던져준다. 때론 온몸이 쑤시는 상황에서 승산 없는 싸움을 해야 하는 상황과 마주하기도 하고, 사력을 다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도 그 노력의 과실을 얻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때론,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걸 그랬다는 패배감, 절망감도 몰려든다. 극기의 인내심을 보여준 산티아고 노인조차 ‘애초에 바다에 나가지 않았으면 좋았을 걸’, ‘그 고기를 낚지 않았으면 좋았을 걸’하고 후회하는 순간들이 있지 않던가.


승산 없어 보이는 처절한 전투를 목전에 두었을 때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포기하고 패배를 인정할 것인가. 아니면 승리하기 어려운 지금의 상황을 수용하면서도 일말의 가능성을 바라보고 해야 할 일을 치열하게 해낼 것인가. 두 번째 선택지가 언뜻 합리적이고 현명해 보인다. 하지만 해내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 세상 탓도, 남 탓도 하지 않은 채 인생의 무게를 어깨에 묵묵히 걸어야 하는 일이기에. 자기 몫의 인생을 변명 없이, 온몸을 다해 감당하는 사람의 모습은 감동적이다. 노인은 낡은 조각배를 타고,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서, 큰 청새치를 낚고, 그 고기를 지키기 위해 상어들과 여러 차례 힘든 교전을 하면서도 인생에 변명하지 않는다. 그것은 어쩌면 위대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노인의 이번 힘든 항해의 끝에는 어떤 금전적 보상도 없다. 하지만 그 물고기의 주둥이와 뼈는 참 커다랗고 근사했다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안타까웠다는 말과 함께.


고전은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발견하게 하는 힘이 있다고 한다. 노인의 이번 항해를 지켜보는 나에게 《노인과 바다》는 물어왔다. 나는 지금 사투를 벌이며 살아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변명을 하며 포기해 버리고 있는지.



덧. 원작의 매력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 서평이라고 생각해서 고이 서랍에 넣어두었는데, 카페에서 서평을 읽으신 글벗님 중 한 분께서 '너무 좋았다'라고 해주셔서 브런치에도 수줍게 공개해 봅니다. 누군가가 읽어준다는 것, 좋았다고 해주는 것은 이렇게 기분 좋은 일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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