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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라노 Jul 23. 2019

나의 재능

'마음 잇기' 능력도 재능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나를 찾아가는 글쓰기》 나의 재능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스스로를 "재능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못하는 것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였다. 바쁜 엄마와 다정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은 엄마가 바느질하는 시간밖에 없어서 엄마 옆에서 단추를 달아보거나 천에 바느질을 해보곤 했는데 아무리 연습해도 통 늘지를 않았다. 미술시간에 준비물 주머니를 만드는 과제를 한 적이 있었는데, 미술 선생님이 만든 주머니를 뒤집어 박음질 상태를 보고는 주머니를 나에게 내던지며, "이건 뭐 넝마주이냐?"라고 하기도 했다. 신발끈 묶기, 젓가락질 하기, 줄넘기 2단 뛰기, 뜀틀 넘기 같은 남들이 쉽게 해내는 일들이 나에게는 너무도 어려웠다. 사실 지금도 할 줄 모른다. 신발끈 묶기와 젓가락질 하기는 편법적 방법을 동원해서 대충 하고, 나머지는 어른이 되니 안 해도 되는 일이 되어 그냥 살고 있다. 그뿐인가. 숫자 계산도 느리고, 체력장은 늘 최하등급인 5급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0년이 넘는 시간을 살다 보니 발견하게 된 소소한 재능이 있다.   


바로 '마음 잇기' 재능이다. 


3년 전에 이직을 했다. 새로 이직한 회사에서 본부장님은 나를 좋게 보지 않았다. 처음 인사를 할 때, "뭐, 다른 사람들이 김 변호사가 좋다고 해서 뽑았으니까, 일단 보겠습니다."라는 말로 첫 악수를 청하셨던 것이 기억난다. 본부장님은 사법연수원 출신의 남자 변호사, 그중에서도 국내 법무 경험이 많은 사람을 원했는데, 나는 법학전문대학원 출신에, 여자이고, 해외법무를 주로 해왔으니 본부장님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러셨을만하다. 몇 달 동안 본부장님의 얼굴에 '못마땅'이 새겨져 있었던 것이 기억난다. 그러다가 부동산 투자회사 자문 건에 내가 투입되게 되었는데, 업무를 처음 받았을 때는 정말 막막했다. 해보던 분야도 아니었고, 새로 만난 프로젝트 팀장님도 나를 달가워하지 않으셨다. "아, 담당 변호사님 또 바뀌신 거예요? 그럼 다시 처음부터 설명해야겠네요." 라며 맥 빠진 얼굴을 했다.               


그런데 몇 번 자문의견을 주고받고, 회의도 몇 번 하고, 밥도 몇 번 먹고 난 어느 날, 그 팀장님이 나 몰래 우리 본부장님께 메일을 한 통 써주셨다. 좋은 변호사님 보내주셔서 너무 고맙다고. 처음에는 자꾸 바뀌니까 솔직히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자기 일처럼 해줘서 너무 좋았다고. 특히 급하게 요청해도 어떻게든 빠르게 피드백 주는 점, 그리고 A라는 안이 법령 상 금지되는 경우, 또는 리스크가 너무 큰 경우에는 어떻게 해결하면 되는지, 그 조차 안 된다면 어떻게 대안을 찾아야 하는지에 대해서까지 적어주는 점이 좋았다고. 


사실 잘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어떻게 하면 잘하는 것인지 잘 몰라서 마냥 헤매며 고군분투하던 시기라서 이런 메일을 받은 것이 나에게 정말 큰 힘이 되었다. 가만히 돌이켜보니 그냥, 내 일처럼, 내가 저 팀장님이라면 필요하다고 생각할 일을 챙겨주려고 했던 것이 주효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냥 법률이랑 판례만 찾아주면 전문가가 아니라면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을 테니, 부연설명을 달아보자. 어차피 보고서를 쓰실 테니 기존 보고서 형식에 맞춰서 핵심 키워드 위주로 PPT에 넣어드리자. 미팅에서 바로 결정해야 되는 사항이 있으면, 법무 의견이 바로 필요할 테니 가급적이면 멀더라도 회의장소에 함께 가자, 뭐 이런 마음들로 함께 했던 시간들이 그녀에게도 도움이 되었던 게 아닐까. 사소한 '마음잇기' 능력이 본부장님의 나에 대한 평가를 바꾸는 계기가 되었고, 그 후 여러 가지 일을 믿고 맡겨 주셨다.   


사실 따라다니면서 더 많이 배운 것은 내 쪽이었는데도..


이번에 《나를 찾아가는 글쓰기》참고자료로 일과삶님이 다중지능을 언급하셔서 한번 검사를 해봤다. 결과는 뜻밖에도 1) 인간친화 기능, 2) 자기 이해 지능, 3) 언어지능 순으로 나왔다. 의외였다. 밥도 혼자 먹는 걸 즐기고 사람들과 만나서 술자리를 하고 나면 즐겁기도 하지만 기가 빨리는 느낌도 자주 받았던 내가 인간친화 지능이 가장 높다니! 그런데 세부항목을 보니 일견 납득이 가기도 했다. 다른 사람과 함께 일하는 것에 능숙하고, 다른 사람의 기분에 민감하고, 공감능력이 뛰어나다는 것! 나는 이것이 재능이라고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의외로 훌륭하고, 또 실용적인 재능인 것이 아닐까? 어렸을 때도 엄마의 기분 변화를 민감하게 알아채고 오빠가 혼나기 전에 몰래 숨는 재능이 있었다고 한다. 이것도 인간친화 지능이 발달한 덕분이 아닌가 싶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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