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그대들을 기억하겠습니다.
지난 10월에는 설리가, 그리고 어제인 11월 24일에는 구하라가 유명을 달리했다. 아직 원인은 조사 중이라고 한다. 하지만 타살의 정황을 찾기 어려워 자살에 방점이 찍히고 있다. 만약 자살이라면, 그들이 왜 죽음을 선택했는지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그리고 어쩌면 섣불리 '악플 때문에' '예전 남자친구가 성관계 동영상을 가지고 협박했기 때문에' 등등의 이유라고 미루어 짐작하는 것 또한 그들에 대한 결례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설리와 구하라의 사망 소식을 들으며 괜히 마음이 먹먹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하고 생각이 밀려들었다. 악플도, 전 남자친구와의 법정 공방도, 그동안 감내해야 했던 성적 대상화의 수많은 순간도 한 사람의 인간에게 참아내기 힘든 고통을 주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들을 죽음에 이르게 할 결정적인 이유는 알지 못한다. 지레 짐작해본 것과는 전혀 다른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에 지속적인 상흔을 남겨오고 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구하라. 뽀얀 피부와 아무로 나미에를 닮은 오목조목한 이목구비가 인상적이었던 그녀는, <카라>가 해체하고 활동을 중단한 이후에는 뉴스 헤드라인에서 모습을 감췄다. 그러던 어느 날, 폭행 사건의 가해자로 갑자기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녀의 전 남자친구인 최종범이 여기저기 긁힌 팔이며 얼굴 사진을 올리며 '구하라가 자신을 폭행해 상해를 입혔고 고소하겠다'고 기사를 냈다. 구하라가 가엾었다. 뛰어난 미모에, 운동신경에, 끼에, 털털한 성격까지 갖추고도 저렇게 못난 남자를 만나다니.
그런데 이어진 기사는 더욱 충격적이었다. 전 남자친구가 성관계 동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했고, 구하라는 그러지 말아달라며 무릎 꿇고 사정을 했다는 것, 그러던 중 몸싸움이 벌어져 쌍방 폭행이 되었고 구하라도, 남자친구도 상해를 입었다는 것이 그 내용이었다. 정확한 사실관계, 전후 사정까지 끼워 맞출 정성은 없었지만, 참 안타까웠다. 남자는 영상을 유포해도 잃는 것이 거의 없으리라. 하지만 구하라는…. 유명인이고, 그에 앞서 여자이기에 성관계 동영상이 유포된다는 것은 치명적일 것이다.
기사가 나온 후 사람들은 호기심에서, 관음증적인 시선으로 '구하라 동영상'을 검색했다. 구하라는 폭행 혐의에 대해 기소 유예를 받았고, 전 남자친구인 최종범은 불구속 기소되어(구속되지 않았다) 재판을 받았다. 1심 재판부는 상해, 협박, 재물 손괴, 강요죄를 유죄로 인정하여 징역 1년 6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최종범 측은 불복하여 항소했다.
재판부를 욕하고 싶지는 않다. 법원은 입법기관에 의해 입법되어 '주어지는' 법령, 판례, 양형기준의 범위 안에서 판단해야 하니까. 그리고 성폭력 범죄에 대해서 범죄의 무게에 걸맞은 처벌이 이루어진 전례조차도 별로 없으니까. (제대로 정비되어 있지 않은 법령의 문제이기도 하고, 그동안 주로 남성으로 이루어졌던 사법부, 경찰 조직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은 탓이기도 할 것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동영상을 동의 없이 촬영하고, 유포하겠다고 협박하고도 집행유예를 받는다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구하라 또한 별다른 죄값을 받지 않고 풀려나는 최종범을 보며 절망했을지 모른다.
협박을 받으며, 조사를 받으며, 구하라는 괜찮았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최종범은 구하라를 신고했다. 하지만 구하라는 최종범을 먼저 신고할 수 없었을 것이다. 먼저 신고하면, 왜 싸웠는지를 이야기해야 할 것이고, 그러다 보면 동영상에 대한 언급이 나올 것이고, 수사기관에 남자친구가 있었던 사실, 성관계를 가졌던 사실부터 온갖 내밀하고 알리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해야 할 것이다. 오히려 별다른 소득 없이 유포 가능성만 올라갈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구하라는 참았고, 최종범은 참지 않고 고소를 했다. 그리고 언론과 인터뷰까지 했다. 그리고 풀려났다.
구하라는 외롭고, 무서웠을 것이다. 수위를 더해 쏟아질 악플과 성적 비하 발언, 그리고 연예인으로서의 커리어에 가해질 치명타가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재판 과정 또한 힘들었을 것이다. "영상을 찍는다는 사실은 알았나요?" "제지하지 않은 이유가 있나요? 암묵적인 동의로 볼 수 있지 않나요?" 등등. 상처를 헤집는 증거조사가 이어졌을 것이고, 봉합하는 과정은 별도로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설리.
'천상 연예인'이란 그녀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잡티 하나 없는 깨끗한 피부, 복숭아 빛깔의 맑은 혈색, 늘씬하게 큰 키에 조막만 한 얼굴. 스타일링에 따라 그녀는 한없이 청순하기도, 관능적이기도 했다. 지적인 모습도, 발랄한 모습도 위화감 없이 소화했다. 화보나 직접 찍은 사진이나 별 차이가 없었고, 화장을 하지 않아도 빛이 났다. 따로 검색하지 않아도 설리의 사진은 항상 포털 사이트를 통해 연예란을 잘 읽지 않는 나에게까지 전달 되었다. 사진 속의 설리는 늘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다만 언젠가부터 노출되었던 기사 중 상당수가 부정적이고 불편한 내용이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노브라 논란'이라든가, 로리타 콘셉트의 사진이라든가, 태도 논란이라든가 등등의…. 그런 기사들을 읽으면 불편했다. 브래지어를 착용할지 말지는 본인의 선택 문제인 것이고, 개인 SNS에 올린 사진은 기자들이 퍼나르지 않으면 될 일이었고, 태도 논란은 같이 일하지 않는 사람들이 왈가왈부할 문제는 아니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부정적인 시선의 밑바탕에는, '너는 성적 '대상'이 되어야 할 존재이지, 네가 먼저 나서서 성을 어필해도 되는 존재가 아니야'라는 다소 폭력적인 시선이 깔려 있는 것만 같아서 불편했다. 그러나 나서서 댓글을 달 지는 않았다. 설리는 참 과감하군, 강철멘탈이군, 독특한 사람이네, 하고 생각하고 지나갔다.
무엇이 설리를 힘들게 했는지, 치명상을 가했는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여자로서, 사람으로서 힘들지 않았을까, 짐작만 해 본다. 생각 없이 쓴 글 하나, 무심코 내뱉은 말 하나도 꼬투리 잡혀 악플의 대상이 되는 것. 공유하고 싶지 않은 일상의 단면이 낱낱이 공개되는 것, 오해의 대상이 되는 것. 그리고 속옷을 입지 않았다는 그 사소한 선택에 쏟아지는 시선과 비난이.
두 사람의 안타까운 죽음을 마주하고 계속 마음이 무겁다. 왜 이들의 죽음이 계속 머리를 맴도는 건지, 왜 이렇게 먹먹한 기분이 드는 것인지 생각해 본다. 아마도 내 짧은 생각에는 그들이 여자로서, 연예인으로서 감내해야 했을 수많은 상처와 외로움이 느껴져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그들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기억하겠다고 다짐해 본다. 그리고 그들의 이름이 '동영상' '브래지어' '로리타' 등등의 단어와 함께 기억되지 않기를 소망해 본다. 성폭력, 악플 등의 행위를 하는 사람에게 경종을 울리는 것은 아마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유사한 사건을 다루는 수사기관, 사법부에 메시지를 던지는 것도 중요한 일일 것이다. (논란으로 소비되기 보다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으로서, 연예인으로서, 구하라와 설리의 이름이 논란과 함께 기억되기보다는 그들의 재능과 노래와 작품을 통해 기억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