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티라노 Sep 27. 2021

둘째는 서럽다

그걸 아는 엄마도 이러고 있다.


 <나는 엄마다> 174화/순두부 작가님




아이를 낳아봐야 엄마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말,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정말이었다. 나는 엄마가 오빠를 나보다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최우선순위는 오빠고, 다음이 나라고. 그래서 상처도 많이 받았다.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어. 그 말이 위로가 되지 않았다. 나는 늘 엄마에게 '덜 아픈 손가락'이었으니까. 

나와 오빠의 입학식, 졸업식이 겹치면 엄마는 오빠의 행사에 갔다. 비가 오는 날이면, 오빠에게 먼저 우산을 전해주러 갔다. 반찬은 편식이 심한 오빠에 맞춰 정해졌다. 채널 결정권한은 아빠도 아닌 오빠에게 있었다(프로야구와 포청천주구장창 봐야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서러움이 계속 내 안에 머물러 있었던 건, 엄마의 애정의 순위에 오빠가 더 높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생각이 반박의 여지 없는 진실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둘째를 낳아서, 길러보기 전까진. 


그런데 내가 아이 둘을 낳아보니, 그게 아니었던 것 같다. 사랑함의 크기 차이가 아니라, 애정의 순번표가 아니라, 긴급함의 우선순위였던 것이다. 첫 아이와 함께 하는 모든 것들은 엄마에게 '긴장'으로 다가온다. 첫 출산, 첫 모유수유, 첫 뒤집기부터 처음 킥보드 태우기까지. 이렇게 하는 것이 맞는지, 행여 잘못되지는 않을지. 그래서 사실 잘 웃어주지 못한다. 괜찮다고 말하지 못한다. 왜냐면 엄마도 그게 웃어넘길 일인 줄 모르니까. 괜찮은 일이라는 걸 경험적으로는 알지 못하니까. 


하지만 둘째 아이와 함께 하는 모든 것들은 엄마에게 '누림'이다. 첫째 때 왜 이 예쁜 모습을 충분히 누리면서 바라봐 주지 못했을까. 그런 마음을 안고, 둘째의 처음을 통해 지나가버린 첫째의 처음을 아쉬워하고, 둘째의 처음을 만끽하며 바라본다. 그래서 둘째가 마냥 더 귀엽다. 둘째가 귀여운 특성들을 갖고 있고 첫째가 그렇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귀여움을 엄마가 바라볼 여유가 있어서 그렇다. 


각설하고, 엄마가 되면 둘째를 서럽게 하지 않겠다는 굳은 각오를 지녔던 나도, 큰 아이의 말에 먼저 반응한다. 둘째보다 첫째가 더 중요해서가 아니라, 더 사랑해서가 아니라, 첫째와 함께 하는 것들이 나에게는 엄마로서의 처음이고, 긴장이 되어서다. 어른들 사랑을 독차지 하던 녀석이 사랑을 나누어 받아야 한다는 것이 서러울까봐 그러는 측면도 있긴 하다. 


둘다 예쁘다. 우리 집 두 남자아이는 생김새도, 성격도 달라서 형제라고 말하지 않으면 형제인 줄 모른다. 첫째는 세심하고, 언어를 잘 활용하고, 조심성이 많다. 둘째는 대담하고, 애교가 많고, 눈치가 빠르다. 예쁜 구석도, 장점도 다르고, 내가 첫째와 둘째를 대하는 마음도 어딘지 다르지만, 그 크기를 비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참, 현명하게 표현하기가 어렵다. 나중에 큰 애는 큰 애대로, 작은애는 작은 애 대로, 서러웠다, 차별 받았다, 엄마 밉다, 할 것 같다. 높은 확률로. 그것이 아이들이 엄마에게 가지는 일종의 원망할 권리겠지. 나에게 우는 소리를 한다면 그 건 괜찮은데, 그 것 때문에 마음 어렵고, 자존감이 낮아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엄마는 둘 다 엄청 많이, (온갖 형용사) 사랑해. 엄마가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면, 미안해. 


현명하게, 또 넉넉하게 사랑을 표현하는 지혜를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시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원하는 삶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