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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라노 Jan 07. 2022

사소한 가정폭력의 피해자입니다.

남들은 듣고 싶어 하지 않으나, 나는 말하고 싶다.

고등학교 3학년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부엌 테이블에 앉아 엄마가 만들어 준 간식을 먹으며 엄마와 소소한 대화를 나누던 평화로운 오후의 어느 날이었다. 방학이었는지, 시험이 끝난 때였는지 평소보다 내 마음도 어딘지 여유로웠던. 


그런데 쿵쿵, 오빠의 일부러 함부로 걷는 듯한 무거운 발소리가 부엌을 울렸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꼭 저렇게 걷곤 했다. 오빠가 오자 나와 엄마는 입을 다물었다. 오빠는 부엌 수납장을 거칠게 열며 컵라면을 찾았다. 


"신라면 없어?"


위협적인 어조로 오빠가 묻자, 엄마가 기어가는 말투로 대답했다.


"어제 마트 갔었는데 다 떨어졌더라고... 그래서 오징어 짬뽕 사놨는데..."

"아 씨, 나 평소에 신라면만 먹는 거 몰라?"


오빠는 쾅, 수납장을 닫으며 엄마에게 신경질을 냈다. 마치 죄인처럼 주눅 들어 있는 엄마의 모습에 짜증이 났다. 나도 모르게 말이 나갔다. 


"오빠, 엄마 요새 일도 많고, 살림도 하고, 잠도 제대로 못 주무시는데 왜 오빠까지 그래. 오빠가 지금 나가서 사 오면 되짆아." 


오빠가 날 쳐다봤던 것 같은데 그 시선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오빠가 들고 있던 컵라면이 날아와 내 관자놀이에 부딪혔다. 눈이 번쩍 뜨였다. 크게 다친 것은 아니었지만 무서웠다. (나중에 보니 1cm 정도 긁힌 흉터가 생겼다.)


오빠가 의자에 앉은 날 끌어내려 주먹질과 발길질을 했다. 일단 평소 하던 대로 팔을 올려 머리부터 감쌌고, 배, 가슴 어깨, 그 외 옆구리 정도를 얻어맞았다. 엄마의 그만하라는 말이 들렸지만, 오빠는 분이 풀릴 때까지는 멈추지 않았다. 


"옛날에는 내가 그냥 분노가 조절이 안돼서 널 때렸는데. 지금은 너한테 인성교육이 필요해서 때리는 거야. 어디다 대고 말대꾸야. XXX가."


'집안 살림에 과외수업까지 하느라, 눈에는 핏발이 선 엄마에게. 불면증에 시달리면서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엄마에게 컵라면 사놓으라고 소리를 지르는 오빠가, 인성교육을 논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생각했지만, 말로 꺼내지 않았다. 어차피 오빠는 들어주지 않을 테고, 말해봤자 매만 한 대 더 벌뿐일 테니까. 엄마가 제발 그만하라고, 격앙된 소리를 지르자 오빠가 잠시 멈칫했다. 그 순간을 틈타 문을 닫고 나와버렸다. 자주 있었던 일이라, 어느 타이밍에 빠져나올 수 있는지는 몸이 알고 있었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머리가 알고 있었다. (나는 그럴 때마다 만화방에 자주 갔다. PC방도 가끔 갔고.)


4시간쯤 지나 집에 조용히 기어들어갔다. 하루가 넘어가면 안 된다. 외박을 하면 일이 커지니까. 

집에 돌아오니 오빠는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행동했다. 엄마는 나를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냥 넘어가자. 괜히 오후에 있었던 일을 얘기해서 새로 싸움을 만들지 말자. 

엄마의 눈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한 10년 동안 자주 맞았다. 집에 갈 때 오늘은 과연 맞을 일이 없을까 생각해야 하는 순간이 싫었다. 그럼에도 집안에 둘만 남아있는 그 긴긴 시간들이 두려웠다. 때론 뺨에 멍이 들고, 때론 두피에 피딱지가 앉았다. 하지만 피가 철철 난 적도 뼈가 부러진 적도 없는 사소한 상처들이었기 때문에 경찰이 온다거나, 오빠가 부모님께 심각한 제재조치를 받은 적도 없었다. 그리고 그일 이후로 약 20년이 흐르는 동안 오빠가 때려서 미안하다고 진심 어린 사과의 말을 하는 일도 없었다. 가장 무서웠던 건, 이것이 우리 집에서 "허용되는 일"이었기에 제대로 된 처벌도, 사과도 없이 계속 되풀이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더 이상 그 일로 오빠를 미워하지 않는다. 진심 어린 사과를 받아서가 아니라, 또는 앞으로 그런 일이 절대 없을 것이라고 믿어서가 아니라 너무 오래 오빠에 대한 미움을 간직한 채로 사는 게 너무 힘들었고, 스스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게 도와준 많은 분들이 계셨다)


그럼에도 죽기 전에 한 번은 오빠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받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엄마한테도 말하고 싶다. 


엄마, 오빠가 감정조절이 좀 안 되는 사람이라 그렇다고 했잖아. 좀 더 분별 있는 내가 참아야 한다고. 근데 나 오빠가 감정조절이 안 되는 사람이라는 거, 안 믿는다? 오빠가 감정조절이 안된다고 마동석을 패겠어? 이부진을 패겠어. 오빠는 내가 패도 되는 사람이라서 팬 거야. 내가 약해서. 나를 패도 별로 본인에게 큰 불이익이 생기지 않는다는 걸 학습해서. 


엄마가 날 사랑과 헌신으로 길러준 거 알아. 내가 아무리 엄마한테 잘해도 다 갚지 못할 만큼 많은 걸 받았다는 것도 알아. 하지만 엄마 마음속에 딸은 아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좀 맞아도 참아야 되는 존재였다는 거. 내가 항상 엄마의 덜 아픈 손가락이었다는 거. 그건 좀 슬펐어.   



이 글을 쓰기까지 좀 오래 걸렸는데. 내 마음 한편에는 오빠한테 오며 가며 좀 맞은 게 뭐 가정폭력이야. 다 그러고 살아. 너만 그런 거 아닌데 유난 떨지 마. 그런 자기 검열의 목소리가 꽤 컸다. 그럼에도 이렇게 기록하는 건 쓰고 털어버리고 치유하고 싶어서다. 피가 철철 나지 않아도 폭력이었어. 실제로 겪어보지 않은 누구도 나에게 그것은 사소했다, 굳이 지나간 일을 이제 와서 끄집어내지 마라, 이야기할 권리는 없어. 그렇게 말하고 싶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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