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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라노 Jan 21. 2022

S사 상무님께 배운 업무의 기술

사소하지만 중요한 것


H상무님은 그야말로 드라마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분이셨다. 근사한 외모. 젠틀한 말투. 출중한 외국어 실력, 그리고 실무자들의 말을 경청하는 태도까지 지닌 분이셨다. S사의 임원이란, 이런 것이다, 그런 환상을 충족시켜 주는 분이라고나 할까. 내 직속 상사는 아니었지만, 자주 업무연락을 주고받았던 가까운 유관부서 조직장이었다. 당시 대리급이었던 나에게도 참 친절하게 대해주셨다. 언젠가 회식 자리에서 전무님이 H상무님을 칭찬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H상무는 태도가 참 좋아. 일단 메일을 보내면 바로 답을 하더라고. '알았다. 언제까지 회신드리겠다.' 이렇게."


"아, 그게 전무님 보시기에도 큰 장점인가요?"


"사람이 메일을 보내면 뭐라고 답장을 해야 할거 아냐. 아무 말도 없으면 읽긴 했는지, 그래서 이해는 했는지, 답변은 줄 건지 모르니까 불안하지. 일 잘하는 사람은 사소한 데서 티가 나. H상무처럼 회신을 주면 일이 제대로 돌아가잖아."


전무님의 말씀을 들은 후, 나도 H 상무님처럼 메일을 받으면 바로 답장을 썼다. 즉시 답변이 가능한 간단한 메일에는 바로 의견까지 적어서 보냈고, 만약 검토나 취합, 조율이 필요한 건이어도 답장을 보냈다.


"보내주신 메일 잘 받아 보았습니다. OO 한 건이어서, 추가 검토 후, 내일 오전까지 답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일정 조율이 필요하면 알려 주십시오."  뭐 요렇게.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이 사소한 습관이 근 9년 회사생활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두 번째 회사를 퇴사할 때는 옆 부서 임원이 따로 불러 선물과 편지를 주시면서 아쉬움을 표하기도 하셨다.


"내가 회사생활 20년 넘게 해 봤지만, 티라노 변호사처럼 메일에 바로 반응해 주는 사람이 별로 없었어. 급한 일, 이슈가 터진 일도 많은데 그때그때 접수했다, 하고 있다, 이렇게 알려주니까 안심이 되더라고."


하하. 법률서면을 기갈나게 써서가 아니라, 리서치 능력이 특출 나서가 아니라, 남다른 통찰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메일에 답장을 바로 하는 사소한 업무습관 하나로 큰 칭찬을 받았더랬다.



얼마 전 몇 년 만에 H 상무님을 뵈었다. 내 사수님, 그때 같이 업무 했던 부장님(상무님으로 진급하셨다)과 함께 간단히 저녁을 먹는 자리였다. 여전히 매너가 좋으셨고, 상대방의 마음을 잘 읽어주셨다.


"나는 우리 라노가 열심히 하는 기특한 후배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뿐이 아니었더라. 라노가 퇴사하고 체결한 계약에서 큰 이슈들이 빵빵 터지는 것을 보고, 라노가 얼마나 업무를 꼼꼼히 잘 챙겼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어." 


내 빈자리를 아쉬워해주고, 내 능력을 인정해 주는 상사. 누구라도 이런 분 밑에서라면 더 열심히 일하고 싶지 않을까. 가슴 한쪽이 뜨거워졌더랬다.


"상무님, 저야말로 상무님께 많이 배워서 다른 회사에 가서도 칭찬 많이 받으면서 다녔어요. 특히 상무님이 매번 메일 받으실 때마다 바로 답장을 해주셨잖아요. 저도 배워서 했는데, 다들 좋아해 주시더라고요."


"그렇지. 메일을 받으면 바로 영수증을 줘야지. 그게 상대방을 안심시켜 주는 방법이거든."


"저 상무님 이메일 앞자리 아직도 기억하잖아요. 맨날 영수증 주셨던 거 기억나서."


상무님이 큭큭 웃더니, 덧붙이셨다.


"근데 내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다 그렇게 영수증을 줬는데. 다 영수증을 주는 법을 배워가진 않았거든. 내가 가르쳐 준 게 아니라, 라노가 배워간 거야. 그건 네 거야."


상무님은 그렇게 후배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시고는 소고기를 사주시고 유유히 돌아가셨다.


아,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받은 메일에 어떤 방식으로든 영수증을 주는 것은 참 좋은 기술인 것 같다.

어떤 이에게는 신속하다는 인상을, 어떤 이에게는 책임감이 있다는 인상을 주더라. 그렇게 어려운 방법이 아니니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당신, 한 번 배워서 써보셔도 좋을 것 같다.


**이상 브런치의 알림에 쪼인 작가의 '뭐라도 써보자' 글이었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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