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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라노 Jan 30. 2022

명절 직후, 변호사 사무실은 붐빈다

이혼상담이 2, 3배로 늘어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지난주 목요일이었다. 퇴근을 하려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어떤 여자분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에효, 이번 명절은 대체 왜 이렇게 긴 거야?"

"그러게요, 결혼하니까 명절이 긴 게 그렇게 싫어요."


공감하며 맞장구치던 그녀의 일행의 말을 들으며, 결혼 전 명절의 기억들을 떠올렸다. 


아, 맞다. 결혼 전에는 명절이 길면 참 좋았지. 모처럼 긴 휴일을 이용해 해외여행을 갈 수도 있었고, 그동안 못 봤던 미드나 책, 영화 시리즈를 볼 수도 있었다. 대단한 걸 할 여력이 안 된다고 하더라도 대충 빈둥빈둥거리다가 심부름 좀 하고, 엄마가 만들어주시던 맛있는 거 먹으면서 보내는, 힐링 기간이었다. 


결혼을 하고 나니, 명절은 좀 불편한 기간이다. 몸이 불편하던지, 마음이 불편하던지 택일을 해야 한다. 몸과 마음이 둘 다 불편한 기간이 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시댁은 일단 가야 하는데 언제 가서 언제 올라오는지는 명절 직전까지 명확하게 정해지지 않는다(그래서 연휴를 통으로 일단 비워놓아야 한다). 시댁, 친정에 잠깐 인사드리고 밥 한 끼만 먹어도 된다고 정해지면 참 좋을 텐데. 남는 시간들도 규모 있게 쓸 수 있을 터였다. 


결혼하고 처음 몇 해는 시댁이 아닌 큰 시댁에 갔었다. 당일 아침에 큰 시댁에 도착하면 나보다 나이가 열몇 살은 많으신 큰 형님, 작은 형님이 명절 음식을 정리하고 계셨다. 어제부터 오셔서 전 수백 개를 부치고, 큰 들통 가득히 탕국에 찌개를 끓여놓으셨다. 아침에도 조기를 굽고, 육전을 만드시느라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고, 관자놀이에서는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부엌에 들어가며 인사를 드리자 "왔어?"하고 말씀하시며 힘없이 웃어 보이셨다. 남자들은 마루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제기를 닦고 지방을 썼다. 


살림을 잘 못하는 내 역할은 뻔했다. 과일을 씻고, 하나씩 윗부분의 과일 껍질을 돌려 깎아내고, 상에 올릴 음식을 담아내면 되었다. 상차림을 거들고, 산더미 같은 설거지를 반쯤 하면 그날 크게 흠 잡히지는 않을 수 있었다. 조용히 눈치를 보다가, 남편 옆구리를 찔러 친정으로 향하면 되었다.  


가장 고생한 큰 형님이 아침상에 자리가 없어서 부엌에서 식사를 하시는 모습을 보는 것, 남편이 윷놀이를 하는 동안 나만 설거지를 하는 것, 부모님의 허락이 있기까지는 먼저 친정에 가겠다며 말을 꺼내기 힘든 것. 어찌 보면 사소하다고 할 수도 있는 것들이었다. 그냥 눈 감고 그러려니 넘길 수도 있는 것들이었다. 그럼에도 친정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기분은 어딘지 껄끄럽고 어색했다. 언젠가부터 명절 직후에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가 이혼상담이라도 한 번 받아보는 사람들의 마음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명절은 평소 잊고 살았던 결혼제도의 불편함을 한꺼번에 느끼게 해주는 시간이다. 며느리를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의 마음과 요즘 현대 여성인 며느리의 마음이 첨예하게 부딪히는 시간. 


"어쩌다 하루 이틀, 일 년에 두세 번이잖아. 그 정도는 그냥 좀 해주면 안 돼?"

"아니 시댁 먼저 들렀다가 친정 가는 게 그렇게까지 억울할 일이야?"

"옛날엔 훨씬 더 고되고 힘들었어."

"그럼 명절 음식 엄마 혼자 다 만들라고?"


"며느리는 당연히 일해야 한다는 그 전제가 싫은 거야."

"그게 그렇게 별 일 아니면 때론 친정 먼저 가도 되는 것 아니야?"

"지금은 옛날이 아니잖아."

"그냥 차례 지내지 말고 부모님 모시고 외식하면 안 돼? 우리 부부가 대접하는 걸로. 명절의 의미가 그런 거 아니야? 존경하는 부모님 찾아뵙고, 인사드리는 거!"


몇 년간 경험하고 지켜본 바에 의하면, 며느리의 말이 나름 이치에 맞다 해도 상황은 며느리의 바람대로 흘러가 주지 않는다. 아들/며느리 내외를 기다리는 시댁 부모님의 마음은 간절하고, 차례나 제사를 없애자는 자식이나 며느리의 말은 받아들이기 어려우며, 일단 만나려고 보면 음식이든 설거지든 가사노동은 두배 세배로 늘어나고, 아들이 설거지며 음식 하는 걸 보는 게 여전히 힘든 시부모님들이 아직 많이 계시니까. 다만 '우리 부모님의 귀한 딸'로 자란, '배울 만큼 다 배운', '사회에서 한몫 톡톡하게 해내고 있는' 현대의 기혼여성들이 명절의 시댁에서 부엌데기가 되는 건 생각보다 충격적이고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걸 며느리의 주변 사람들도 알아주면 좋겠다. 


"당연히 그 정도는 해야지.""예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이런 말이 아니라, "고생했어, 고마워" "다음 명절은 더 기분 좋게 보낼 수 있도록 노력할게" 같은 따뜻한 말 한마디가 오가는 명절이었으면 한다. 


며느리들에게 희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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