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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라노 Jun 01. 2022

영어유치원을 보내지 않습니다.

보내지 못하는 것도 맞습니다. 

얼마 전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났다. 아이들을 남편에게 맡겨놓고 우리끼리 만난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만났을 때는 본의 아니게 뚝뚝 끊어지던 대화가, 이번에는 퍽 길게 이어졌다. 요즘 어떻게 살았는지, 직장은 어떤지, 건강은 어떤지, 아이들은 잘 지내는지. 주로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그러다가 대화 내용이 점점 [앞으로 아이들 교육은 어떻게]라는 질문으로 수렴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A는 놀이학교, 영어유치원, 사립초등학교 루트를 밟고 있다. 다소 무리해서라도 아이들 교육에 신경을 쓰는 것이 맞다. 그것이 그녀의 견해였다. 우리 때도 부모님이 신경 쓰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는 달랐다. 예전에도 경쟁이 심했지만 지금은 더욱 심하다. 한번 벌어진 학력 격차는 따라잡을 수 없다. 그녀는 동네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보내고, 국공립초등학교(?) 배정되는 곳을 보내겠다는 나를 걱정했다. 나중에 아이한테 원망 들으면 어떻게 할 거냐고. 지금은 너에게 선택의 여지라도 있지만, 시기가 지나면 자신의 아이들이 밟고 있는 루트에 우리 아이들은 들어올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녀는 진심으로 나를 위해서 그렇게 말했다. 어쩌면 그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초등학교에 가서 적응하지 못할지 모른다는 이유로도, 아이들을 영어유치원으로 많이 보내고는 하니까. 하지만 나는 두 가지 이유에서 우리 아이들을 영어유치원이나 사립초등학교로 보낼 생각이 없다. 


첫 번째. 여력이 안 된다. 

우리 부부가 어느 정도 기초자산을 다 마련하고, 노후대비를 한 상태라면 '남는 돈'으로 아이들 교육에 더 투자하면 좋을 것이다. 그 돈이 영어유치원의 형태일지, 다른 형태일지는 모르겠으나 우선 기초자산 마련도 채 되어있지 않은 상태다. 이럴 때 아이들 교육에 전재산을 투자한다면, 우리는 아이들에게 노후의 우리를 부양해야 한다는 부담을 지울지도 모른다. 난 아이에게 성공하라는 압박을 하고 싶지도, 성공하도록 내가 도와주었으니 날 부양하라는 말을 하고 싶지도 않다. 그래서 그냥 아주 담백하게 영어유치원이라는 선택지를 지웠다. 


두 번째. 스펙이 성공과 행복을 담보해 주는 시기는 지났다. 

서울대. 네이티브급 영어. 이 두 가지만 해도 '만들어 주기'가 녹록지 않다. 우리 아이가 그걸 원할지, 운과 능력이 따라줄지도 알 수 없다. 그런데 설령 이런 스펙 달성하기에 성공했다 한들, 그것이 삶의 행복과 부유함을 보장해 주는 수단은 아니다. 그렇게 된 지 이미 오래되었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로 행복하게 일하는 #앤드류 같은 사람들로 자라나기를 바란다. 원하는 일은 할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하되, 내가 먼저 이 아이들이 가야 할 길을, 종목별 합격선을 정해두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는 아이들과 그냥 놀면서 잘 지내고 싶다. 어떤 성향의 아이들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떻게 자라고 싶은지 같이 고민하고 찾아보면서 시간을 함께 보내려 한다. 그다음에 어떤 길로 갈 것인지는, 그 인생의 주인인 아이들 스스로 결정하게 해주고 싶다. (다들 이러다가 땅을 치고 후회한다고 하기는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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