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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라노 Mar 23. 2022

엄마표 OO, 나만 이 표현이 기분 나쁜가?

엄마도 바쁘거든요?

얼마 전 남편이 6살 준서를 위해 스마트 학습지를 신청했다. (요즘 스마트 학습지라는 걸 신청하면 귀여운 디자인의 컴퓨터도 주고, 학습 프로그램도 그 안에 넣어준다. 세상이 바뀌긴 바뀌었다 싶다.) 준서가 집에서 너무 놀기만 하는 것 같다며, 학습지를 해보게 하겠다고 결정한 것도, 특정 회사의 특정 프로그램을 고른 것도 남편이었다. 체험기간인 2주가 끝나던 날, 신랑에게 전화가 왔다. 핸드폰 수화기 너머로 상담하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안녕하세요. 그동안 OO 좀 해보셨나요? 체험기간이 끝나가서 말씀드려요. 

- 아, 네, 애가 재미있어하더라고요.

- (남자의 목소리에 다소 황했는지) 아버님, 바쁘실 텐데 어머님 연락처를 알려주시면, 어머님께 연락을 드릴까요?

- 아니에요. 말씀하셔도 돼요.

- 네, 그럼 체험 기간 끝나면, 유료 프로그램에 가입하셔야 하는데요.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시면 되는데요. 선생님이랑 온라인 수업을 예약해서 하실 수도 있고, 아니면 엄마표로 집에서 어머님이 같이 아이 학습 도와주셔도 되고요. 가격은 아무래도 엄마표가 조금 더 저렴하고요.

- 아, 네, 선생님 시간 맞춰 예약하는 것도 일이어서 저희는 엄마표로 할게요.


신랑이 평화롭게 전화를 끊는데 기분이 좋지 않았다.


첫 번째. "아버님"은 바쁘신 분이고, "어머님"은 한가한가? 남편이 상담전화를 받겠다고 본인의 전화번호를 등록했는데, 굳이 엄마 전화번호를 다시 묻는 저의가 뭐지? 선생님도 여자이고, 여자인 엄마가 더 대화하기 편하기 때문에? 보통 엄마가 아이들의 학습을 봐주니까 아이의 학습현황에 대해 잘 알거라 생각해서? 어느 쪽이든 "아버님"보다 바쁜 "어머님"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한 물음이 아닌가. 굳이 재확인을 하겠다면 "아이 학습과 관련해서 주로 봐주시는 분과 상담하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아버님이 평소에 아이들 공부를 많이 봐주실까요?" 정도로 물어봐도 되는 것 아닌가.  


두 번째. "엄마표"로 하겠다니? 학습지에서는 선생님의 수업시간을 제공해 줄지, 제공해 주지 않을지만 선택할 수 있다. 엄마가 학습에 참여할지 말지에 대해서는.. 엄마랑 상의를 한 것도 아니고, 학습지 회사에서 엄마한테 돈을 줄 것도 아니면서, '엄마표'를 프로그램 명에 붙이는 것이 불편했다. '가정 주도형 학습' 정도로 붙여도 되잖아. 요새 할머니, 할아버지, 아빠, 이모님이 봐주시는 경우도 얼마든지 많은데.


엄마가 아이 교육에 있어서 가장 많이 신경을 써야 한다는 어떤 보이지 않는 압력, 그러한 문화적 전제가 아직도 남아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그걸 학습지 회사에서, 마치 본인들이 제공하는 프로그램인양, 프로그램 중 하나로 네이밍해서 소개하는 것은 꽤나 불편하다. 마치 엄마표 수업을 해주지 않는 엄마는 나쁜 엄마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표현이 때로는 열심히 아이를 일선에서 보살펴 주고 있는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님에게 서운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한다.


아무튼 스마트 학습지 OO. 상담하고 그 회사에 대한 호감도가 떨어졌다. 두고 보라고! 엄마표 OO이라는 건, 엄마 본인이 쓸 수 있는 표현이지, 회사에서 그렇게 갖다 쓸 수 있는 표현은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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