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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라노 Apr 10. 2022

아들이라 집 한 채 해준다는 말

그럼 태어날 아이가 딸이라면요?

얼마 전 친구가 단체 카톡창에 태아의 성별이 나왔다는 소식을 전했다. 아들이라고 했다. 그 시아버지께서 정말 기뻐하시며 "장하다, 내가 진짜 집 한 채 해줄게."라 하셨단다. 그리고 그런 시아버지의 반응에 친구 또한 기뻐했다. "정말 해주시려나? 뭐, 못해주셔도 그만큼 기쁘셨다는 거 아니겠어?" 하고 친구는 카톡으로 되물었다. 그녀의 카톡에 나는 나도 모르는 새 이맛살을 찌푸렸다. 행복한 남의 집 일상의 한 장면에 이방인(?)이 언짢은 것이 이상하고 적절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기분은 그랬다. 


친구는 둘째를 임신하고 있다. 첫째는 예쁜 딸아이였다. 그 시아버지는 첫 아이가 태어났을 때는 장하다거나, 집을 해주겠다 말씀하지 않으셨다. "둘째, 낳을 거지?" 하셨다고 들었다. 성별을 알았을 때 반응부터 그럴진대 앞으로 큰 손녀와 작은 손자를 똑같이 대접하실까? 살아가면서 손녀는 혹시 서운함을 느낄 만한 순간을 자주 만나게 되지는 않을까. 남의 일이지만 내 일 같았다. 


1980년대에 태어난 나는 (으어 이렇게나 옛날이 되어버렸다니) 초등학교 때부터 "너는 출가외인이 될 몸이니 제사음식이나 날라라."라는 말을 들었다(제사상에 절을 할 권리가 없다던가). "딸이 공부 잘해서 뭐하나. 집안을 짊어질 아들이 공부를 잘해야지." 라던가, "네 동생은 언제부터 돈 번대? 네 동생이 오래 공부할수록 부모님이 너한테 주실 재산만 줄어드는 거 아니냐?"라는 말을 수시로 들어야 했다. 


2020년대에 태어날 아이들은, 당연히 내가 들어왔던 그런 기분 나쁜 소리를 듣지 않고 살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딸은 아들보다는 못한 존재라 여겨지고 있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 속상했다. 그리고 본인도 여자이자 딸이면서, 그러한 전제를 당연히 받아들인 채 기쁜 듯 웃고 있는 친구의 모습도 그렇게 좋게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임신을 축하한다. 더 행복한 가정이 되었으면 한다. 하지만 그것이 둘째가 남자라는 성별로 태어난다는 단순하고 우연한 사실에 기인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남녀의 문제로 치환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 치환될 수도 없는 문제일 것이다. 다만 자신의 선택과 노력과는 1도 상관없이 결정되어버린 것 때문에 누군가 설움을 당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남자라는 성별이든, 여자라는 성별이든, 그 무엇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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